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녜스 Nov 15. 2022

 걷혀가는 안개를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대지 위에 안개가 자욱하다.

곧게 뻗은 나무들이 뭉개지고,

시야를 벗어난 모든 길이 자취를 감췄다.

안갯속으로 사라진 세상이 고요하다.

가라앉은 침묵 속으로 빠져드는 순간.


축축한 공기를 품은 차가운 바람이

숲을 흔들고 대지를 깨운다.

안개를 뚫은 희미한 불빛이 섬광처럼 지나간다.

언가슴 녹이듯 걷혀가는 안개 사이로

서서히 드러나는 실루엣.

한줄기 햇살이 뿌연 장막을 밀어내면, 

창밖의 분주한 것들이 살아난다.

새들이 날아오르고,  

사방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리무중에 갇혔던 하늘과 나무,

사물들이 다시 제 빛을 발산한다.

전혀 신경을 쓸 일이 아니었던 것처럼.

빛바랜 빈 들녘엔 솜뭉치 같은 볏짚더미가 나란히 서있고,

그 너머 사잇길을 달리는 장난감 같은 자동차의 행렬이 촘촘하게 일상을 엮는다.

억지스러움이라곤 없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흐르는 시간만 있을 뿐이다.

기온이 오르니 안개가 물러가고 느긋한 햇빛이 자리를 차지한다. 

안개에 젖은 아침나절이 이렇게 지난다.

서두를 것이 없는데도 갈수록 하루 해 다.


문득, 떠밀려왔다 떠밀려가는 파도의 부서짐처럼

아련하게 멀어지는 가을 허무해진다.

계절의 오고 감이 자연의 순리 건만 아련하면 어떻고 또 아닌 들 어떠랴만.

가을 같은 겨울 품은 맑은 공기가 서늘하고 차갑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꺼이 서울을 벗어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