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맆소녀(본주,극단 생존자 프로젝트,2025)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by 세민
맆소녀 포스터.jpg

2024년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 수상자 본주가 연출한 연극 <맆소녀(The Silent One)>가 2025년 9월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극단 생존자프로젝트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으로 재연됐다. 극단 생존자프로젝트는 지난 수년간 위계폭력, 젠더폭력, 가정폭력 등 몸에 새겨진 폭력의 계보를 연극의 방법으로 탐색해 왔다. 이번 연극 <맆소녀>는 그 연장선에서 ‘생존’과 ‘연대’를 키워드로 사회적 무관심을 드러내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윤리적 태도를 묻는다.


침묵으로 채워진 무대

NGO 단체 의료 활동을 자원한 연영은 개발도상국 현지에서 또래보다 몸집이 큰 소녀를 발견한다. 불법 아동 노동 농장에서 담뱃잎을 수확하는 소녀 ‘까이’다. 까이는 노동법 위반으로 체포된 엄마 ‘시마’의 부재로 단체의 보호를 받는다. 연영은 까이가 시마의 반대로 그녀를 적극적으로 돕지 못한다. 파견 내내 환청에 시달리던 연영은 까이가 듣던 들개의 발소리에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한다. 어느 날, 마을에서 수간 당한 소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폭동이 일어나고, 소의 죽음과 함께 까이가 실종된다.


연극 <맆소녀>에는 대사 없이 배우의 몸짓으로만 구성된 장면이 다수 배치되어 있다. 까이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설명하는 것도 말을 통해서가 아니며, 연영 역시 현지인 코디네이터 명무에 의한 까이의 피해 과정을 마주하는 것 역시 침묵 속 목격으로만 재현된다. 난청으로 구어 소통이 어려운 까이 외에도 연극 <맆소녀> 속 아이들은 말이 없다. 담배 농장에서 일하거나 구호단체의 도움을 받을 때의 아이들은 해맑은 개구쟁이 같은 표정과 몸짓만을 이어갈 뿐 대사가 없다. 이들이 말을 할 때는 오직 ‘그림자 아이들’로서 신화의 내용을 읊을 때만이다. 즉, 서사 바깥으로 나갈 때만 이들에게는 대리의 언어가 허용된다. 주인공인 까이는 아예 난청이 있어, 엄마인 시마 혹은 연영과 소통할 때는 손짓과 발짓을 사용한다. 관객 역시 10분 넘게 이어지는 침묵의 무대를 볼 때 까이의 손끝에 온 집중을 해야 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맆 커튼콜.jpg

아동 노동과 학대를 주제로 하는 연극 <맆소녀>에서 아이들은 의도적으로 침묵의 대상으로 설정되었다. 입으로 하는 말은 현실에서 가장 강력한 소통 체계이다. 인물에게서 연극의 대사에 해당하는 말을 배제한 설정은 어떤 의도와 효과를 갖는가.


첫째, 구조를 강조하여 보여주기 위한 연출적 선택이 있었다. 우리는 주체성이 있다고 하지만, 그 말은 자주 우리를 무력화한다. 인생의 많은 부분이 이미 ‘어쩔 수 없는’조건으로 채워져 있다. 예를 들어 사마가 아동 노동 범죄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이것이 사마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플랜테이션 농업이라는 서구 열강의 계획은 여전히 다수의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의 경제 구조를 구성하고 있다. 현지 관리자 수준이었던 사마는 얼굴도 모르는 농장 주인 대신 법적 책임을 지게 되었다. 한편 선진국의 NGO 단체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현지 부모에게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보다 당장 담배 농장의 일손을 돕게 하는 것이 더 급한 일로 사고된다. 혹은 타국 사람들의 도움을 굳이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연극<맆소녀>가 보여주고자 했던 폭력의 상황에서 아이들이 선택한 바는 없다. 거인증 진단을 받고도 신의 뜻이라며 치료를 거부하는 부모를 만난 것, 조혼을 강제당하는 것, 나와 평생 함께할 가족과 잠시 들린 NGO 관계자의 친절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 그 모든 것은 아이들의 선택이 아니다. 이러한 선택할 수 없는 상태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아이들에게서 말을 앗아간 것 아닐까.


둘째, 연극 <맆소녀>는 한국인 의사인 연영 입장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폭력에 대한 연극인 <맆소녀>는 개발도상국(아마도 인도의 빈민가)을 가정한 무대이지만, 연극이 오르는 곳은 한국이다. 이 국가와 한국의 관계는 NGO 단체를 통해 연결된다. 그렇기에 연극<맆소녀>는 내밀한 이야기를 외부자 입장에서 서술하게 된다. 연영은 까이에게 유독 마음을 쓴다. 그렇지만 연영은 정해진 NGO 활동 기간을 채운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연영은 정기후원을 신청하지만 어쩐지 까이와 연영의 작별은 지나치게 깔끔하다. 내가 네가 될 수는 없다. 그것만이 함께 하는 방법일 수는 없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침묵으로 직조된 무대가 남긴 것이 무언가에 대한 변명이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7554

매거진의 이전글[연극] 엔드 월(End wall)(하수민,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