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DRAGX남장신사 (드랙킹콘테스트, 2025)

국립정동극장 세실 창작ing, 삼연으로 돌아온 연극 <드랙남장신사>

by 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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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DRAGX남장신사>가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2021년 초연 이후 세 번째 공연을 맞이했다. 연극 <DRAGX남장신사>는 퀴어 7인의 삶을 버베이텀 방식(실제 인물들의 인터뷰나 기록된 말, 행동, 경험을 글자 그대로 옮겨와 연극, 다큐멘터리, 퍼포먼스 등으로 재현하는 기법)을 통해 그려낸 다큐멘터리극이다. 토막으로 구성된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해당 장의 주인공이 등장하여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립싱크 공연을 진행한다. 2025년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진행된 연극 <DRAGX남장신사>는 2021년 오리지널 버전에서 3명의 인물이 추가되었다.


무대로 역사 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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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DRAGX남장신사>는 드랙킹 콘테스트로 시작한다. 콘테스트에 앞서 사회자는 다음과 같이 삼연의 감회를 소개한다. ‘여러분의 성화가 없었더라면 이런 젠더교란극이 삼연까지 오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사회자의 소개말-젠더교란극 드랙쇼-은 이 연극에 대한 가장 짧고 적확한 요약이 될 것이다.


드랙쇼는 드랙 아티스트가 립싱크·노래·춤으로 과장된 성별 표현을 선보이는 공연이다. 부당하고 과감하게 요약해 보자면 여자가 ‘남자처럼’ 행동하고, 남자가 ‘여자처럼’ 행동하는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자가 남자가 되고, 남자가 여자가 되면 그 자체로 ‘남자’ 혹은 ‘여자’로 인식되지 않음 역시 알 수 있다. 그것은 공연이 전제하는 과잉의 태도 때문이기도, 우리가 인식하는 젠더라는 개념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것에 질문하게 된다. 몸에 딱 붙는 치마와 화장-눈을 확장하고 눈썹을 그리고 볼과 입술을 붉게 하는 것 등- 사근사근한 태도, 남자 좋아하기를 여성이 수행한다고 하더라고 그것이 과장되면 사람들은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괴기스러움과 부담스러움을 먼저 느낀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적정함이다. 그 적정함에 대해 누구도 답할 수 없음에도. 드랙쇼는 여기에 더하여 새로운 하나의 인격체를 창조하는 일이기도 하다. 기존의 나라고 여겨지는 것에서 거리를 둠으로써 인물은 좀 더 과감해질 수 있다.



존엄한 삶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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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두 존엄하다고’ 한다. 그렇구나, 강 건너 불구경하듯 그 말을 듣는다. 존엄은 ‘범할 수 없게 높고 엄숙한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낮은 곳에서, 대체로 경박하게 살며, 언제든 범해져도 이상하지 않다. 인간 존엄을 외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미 존엄함을 상실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상실의 모습들을 통해 존엄함의 구성 요건의 퍼즐 맞춰본다. 이성애 하는 것이 존엄, 동성애는 존엄하지 않음. 돈이 있는 것이 존엄, 돈이 없는 것은 존엄하지 않음. 제대로 된 집이 있는 것이 존엄, 집이 없는 것은 존엄하지 않음.

존엄의 촘촘한 조건을 살갗을 페이며 낙오된 이들은 역설적으로 인간 존엄의 증언자가 되었다.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은 존엄함의 보편성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모두가 가질 수 없는 존엄은 여전히 존엄한가.


내가 살아간다면

누군갈 웃게 할 수 있을까

내 주변에 날 사랑해 줄 사람이 있을까

너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연극 <DRAGX남장신사>의 커튼콜에서 모든 배우는 손을 잡고 무대에 서서 ‘내가 살아간다면~’을 합창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관객은 어느 순간부터 멈추지 못한 눈물을 커튼콜에서 마저 쏟아낸다. 이 가사가 존엄의 대부분을 설명해 준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일단 태어났기에 살아간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를 웃게 해주어야 하고, 또 내 주변에는 사를 사랑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나는 타인의 불행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어려운 일들이어서 배우들의 합창은 하나의 선언으로도 들린다. 우리는 자주 이것들을 해내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살아감은 지속되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도 못한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러나 하나만은 확신한다. 존엄의 고고한 기준보다, 부치에 대한 온갖 퀴어 농담을 주고받으며 질문을 멈추지 않고 무대 위에서 ‘나야 나’를 부르고, ‘아모르파티’에 맞추어 기차놀이를 하는 것이 존엄이라고. 동시에 무대 위 인물들의 역할놀이 혹은 역할 수행은 단지 존엄 따위를 목표로 하지 않기에 관객들은 웃으며 무대를 바라볼 수 있다. 이들은 그저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를 웃게 하고 사랑받으며, 당신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 모든 성실한 노력을 마음에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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