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안산, 황금용 (연출 최치언, 2025)

작 롤란트 쉼멜페니히<황금용> / 제작 창작집단 상상두목

by 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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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산, 황금용> (작 롤란트 쉼멜페니히/ 윤색 연출 최치언/ 제작 창작집단 상상두목)이 12월 12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씨어터 쿰에서 관객을 만난다. 연극 <안산, 황금용>은 롤란트 쉼멜페니히의 <황금용>을 한국의 도시 안산을 배경으로 윤색한 작품이다.


그것은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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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안산, 황금용>은 7개의 에피소드가 4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장면은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각 장은 서로 연루되어 있으나 연결되어 있지 않고, 단지 관객이 이를 종합하기를 요청하고 있다. 배역 역시 파편화되어 있다. 연극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배우는 요리사, 승무원, 노인, 개미와 배짱이 등 17개의 역을 교차하여 연기한다. 이때 주목할 것은 각 역할의 젠더와 나이가 이를 연기하는 배우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연극은 배우와 배역을 악을 쓰고 떼어내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여성과 남성으로 이루어진 커플 연기에서 중년 남성 기장 역할을 젊은 여성이, 젊은 여성 승무원 역할을 젊지 않은 남성이 맡는 식이다.


이처럼 연극 <안산, 황금용>은 원작과 동일하게 포스트 서사극의 형식을 취한다. 포스트 서사극은 드라마의 기반 위에 브레히트의 서사극 기법과 포스트 드라마적 특징을 동시에 수용한 극적 형식이다. 즉, 연극의 재현성을 인정하되 브레히트의 서사극 기법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양식이다. 서사극은 관객이 극 속에 이입하는 것을 경계하여 이야기를 서술하듯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객은 연극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연극 <안산, 황금용>에서 배우들은 배역이 되기보다 배역과 거리를 두며, 마치 해설하듯 상황을 그려나간다.


그곳은 여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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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산, 황금용>은 자신의 한국적 배경을 안산이라는 도시로 선택했다. 실재로 안산은 반월국가산업단지와 시화국가산업단지를 배경으로 10만 명에 달하는 이주민이 거주하는 도시다. 그리고 황금용은 타이 차이나-베트남 식당의 이름으로 소개된다. 식당 황금용의 음식은 소위 ‘불법 체류자’(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한국에서 연락이 끊긴 동생을 찾으러 한국에 온, 꼬마라 불리는 가장 어린 노동자의 치통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검게 썩은 이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지만, 정식 비자가 없는 꼬마는 병원에 갈 수 없어 비좁은 식당에서 괴성을 지르기만 할 뿐이다.


다만 연극 <안산, 황금용>의 배경이 현실의 안산 혹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연극 <안산, 황금용>은 분명 현실의 이주 노동과 세계화된 자본주의, 시민권 및 체류권의 인정 방식 등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것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보다 연극적인 세계이다. 혹은 윤색 과정에서 시공간 변경의 결과일 수도 있겠다(유럽 소도시에서 한국의 산업도시로의 이동).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원작을 확인하지 못한 관객의 입장에서 연극 속 안산은 일종의 가상 도시로 느껴졌다는 점이다.


분단 상태에서 남한은 사실상 국경이 봉쇄된 국가이다. 그렇기에 이른바 ‘불법 상태’로 밀입국하는 방식은 그 비중이 높지 않다. 대부분 적법한 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이주민 노동자들은 우연히 혹은 적극적으로, 매우 빈번하게 이 둘을 구분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불법 상태에 놓이게 된다. 예를 들어 정주민인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할 이주 노동자의 형태는 농촌 혹은 공장 등에서 근무할 수 있는 E-9비자(비전문취업)이다. E-9비자의 기본 체류기간은 3년이며, 사업주가 재고용하면 1년 10개월을 추가로 체류할 수 있다. 5년 이상 연속 체류 시 한국의 일반 영주권(F-5-1)의 자격 요건이 됨을 고려한 체류 기간임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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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가 있던 이들은 왜 ‘불법 인간’ 이 되는가. 노동자에게 직장을 그만둘 자유는 최소한의 소극적 방어 방법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는 직장을 자유롭게 그만둘 수 없다. 이를 빌미로 사용자는 무척 쉽게 체류 자격을 두고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 존재하는 이주민의 체류 자격만 260여 가지가 넘는다. 비자별 관할 부서도 제각기다. 그리고 대부분의 체류 비자는 시민권 혹은 영주권을 전제하지 않은 단기 체류에 집중되어 있다. 허가 활동의 범위에 따라, 제출해야 하는 서류에 따라, 연장할 수 있는 기한에 따라 이주민은 너무나 손쉽게 등록과 미등록의 선을 침범하게 된다. 전 세계적 이주 노동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한국으로 온 이주 노동자 역시 이미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자국에서 적지 않은 자원을 투자하여 도착한 만큼,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한국 정부에서 불법 체류자(미등록 체류자)를 다루는 방식 역시 이중적이다. 그냥 불법이니까 잡아서 자국으로 송환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논리로 이루어진 세계가 아니다. 한국은 정주 노동자가 선호하지 않는 다수의 업종에서 이주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필요로 한다. 우리가 먹는 국산 농산품 중에 이주 노동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없을 정도이다. 즉, 한국의 각 산업 종사자로서도 국가의 불법 체류자 단속은 골치 아픈 일이 되곤 한다. 정부 역시 이를 모르지 않기에, ‘적정한 불법 체류자의 수’를 유지하며 이주민 단속에 힘을 넣거나 뺀다. 그리고 최근 발생한 뚜안 씨의 사망과 같이 강도 높은 추방 단속으로 사망한 이주민의 수는 한국에서 23년간 33명에 달한다.


연극<안산, 황금용>으로 돌아와서, 이러한 한국의 이주 현실을 고려했을 때 연극 속 안산은 한국의 안산은 아닐 것이다. 브로커와 연결되어 요식업에 종사하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 한국에서 실종된 여동생이 있는 꼬마는 한국보다도 열린 국경의 이주민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가 아픈 꼬마를 돕기 위해 황금용의 동료들은 공업 도구를 이용해 마취도 없이 꼬마의 이를 뽑는다. 이 모든 것은 해설적이고 극적이다. 그러나 연극적이라는 평가가 현실과 관련 없음을 의미할 수는 없다. 오히려 연극 속 안산은 글로벌한 노동의 이동을 배경으로 인터내셔널하고 보편적인 공간이 된다.


그 일은 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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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산, 황금용>에는 여러 배역과 배경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배경은 식당 황금용과 관련이 있다. 황금용의 2층에 사는 할아버지, 같은 건물 옥탑방에서 할아버지의 손녀와 동거하는 젊은 남성, 황금용의 건너편 식료품점 등이 그러하다. 한편, 식당 황금용과 외국인 노동자들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시공간도 하나 등장한다. 그것은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다. 시작은 우리가 익히 아는 개미와 배짱이 우화로부터 시작한다. 여름 내내 놀아서 겨울이 되니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 베짱이는 열심히 일을 하여 양식을 모아둔 개미에게 도움을 청한다. 개미는 열심히 일하지 않은 베짱이를 탓하며 그를 매정하게 대한다. 계산이 빠른 개미는 약간의 양식과 몸을 누일 방을 빌미 삼아 베짱이를 집 깊숙한 곳에 감금한다. 베짱이가 가진 몸의 굴곡과 모습이 개미들에게는 이색적인 성적 자극이 된다는 것을, 즉 돈이 될 수 있음을 개미는 빠르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배짱이는 이제 개미의 집을 나갈 수 없다. 침대만 있는 비좁은 방과 죽지 않을 만큼의 음식만이 그에게 허용된 전부다. 개미가 들여보내는 이들을 지칠 때까지 접대한다. 이제 봄이 오지는 않았을까? 베짱이는 좁은 방에 갇혀 생각하지만, 개미는 언제나 문 앞을 지키고 있어 도망치지 못한다. 관객은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에서 인간의 감금과 강제 노동, 성매매, 포주 등을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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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에피소드와 마찬가지로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는 매우 잘게 쪼개져 있어 전체 상황의 윤곽을 관객들은 끊임없이 연상해 내야 한다. 연극의 끄트머리에서 개미와 베짱이는 점차 사람이 되어간다. 탈출을 결심한 베짱이는 방문을 열고 나가지만 개미를 찾아온 손님에 의해 탈출을 저지당한다. 탈출을 저지한 개미의 손님은 외국인 아내가 도망간 중년 남성이다. 이 순간 개미는 황금용 식당 건너편에 있던 식료품점의 사장으로 변화한다.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있던 배짱이 역시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으로 바뀌고 중년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다.


비슷한 시간 이가 뽑힌 후 과다 출혈로 사망한 꼬마 역시 황금용 노동자들의 손에 의해 강에 매장되었다. 관객들은 깨닫는다. 꼬마가 찾으러 온 자기 동생은 꼬마가 죽어간 황금용 건너편 식료품점 뒷방에 감금되어 있었다고. 이런 추측이 사실인지 여부는 증명 불가하다. 연극에서 이 둘이 죽었다는 것만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안산 어느 강에 빠진 꼬마의 시체는 바다를 건너 서해로 나아가 마침내 자기 고향에 도착한다. 한국에 갈 때와 달리 꼬마는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고 자신의 고향집에 당도할 수 있었다. 비록 친척의 빚도 갚지 못하고, 동생을 찾지도 못하고, 자신의 살아있는 몸 하나 챙겨오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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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배역이 극 중 사망했지만 사실 아무도 죽지 않은 것이기도, 두 명보다 많은 인물이 죽은 것이기도 하다. 여섯 명의 배우는 적어도 두 개 이상의 배역을 동시에 수행했다. 꼬마와 베짱이는 죽어도 배우는 또다시 다른 인물로 생을 이어간다. 이를테면 황금용 식당에서 죽은 꼬마는 베짱이를 살해한 중년 남성으로 다시 살아있고, 베짱이는 죽기 직전 황금용 식당의 여자 종업원으로 변신했기 때문에 원래의 베짱이는 죽지 않은 것이 되기도 하는 원리다. 그래서 어떤 인물도 배역과는 제대로 결부되지 못하고 꼬마와 베짱이의 죽음만이 분명히 남아있기도 하다.


연극 <안산, 황금용>에서 안산은 실재하지만 인터내셔널하고 중첩되는 연극 속 공간이다. 그리고 연극 속 배역들은 극적으로 비참한 삶을 이어간다. 그것은 현실을 상기시키지만 사실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것이다. 꼬마가 죽어야 했던 이유가 단지 치아 하나 때문이라는 것, 베짱이가 죽어야 했던 이유가 단지 양식을 구하지 못하는 짧은 겨울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아주 작은 이유로 과도하게 삶이 무너져야 했다. 동일한 충격에서 어떤 이들은 생채기 하나 나지 않지만, 어떤 이들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연극 <안산, 황금용>이 보여주고자 했던 연극적 진실과 현실의 비참함은 여기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8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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