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지난번 글을 쓴 지 4개월이 되어가네요. 코로나 사태가 심해지면서 미국의 많은 회사와 연구소에서는 필수 인원을 제외하고는 재택근무로 전환시켜버렸고, 때로는 shelter-in-place을 발령해가면서 감염 확산을 줄이려 노력했지만 아직까지는 아쉽게도 컨트롤을 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튼튼이 아빠는 육아휴직을 끝나고 복직한 지 열흘만에 집으로 다시 쫓겨 들어오게 되었고, 저는 일을 하는 가운데 삼시 세끼에 이유식에 고양이 맘마/간식을 수도 없이 차리며 정신을 쏙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던 지난날, 막연하게 제 꿈은 육아 육묘라고 적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때는 제 할 일도 다 똑 부러지게 하면서 (?) 고양이도 아기도 똑같은 마음으로 예뻐하고 (??) 나 자신도 아끼고 사랑해야지 (?????)라는 원대하고도 실현이 힘든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고 키우는 과정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상상하던 제법 몸을 가누고 혼자 놀기도 하는 그런 아기는, 그리고 그 옆을 (욕구불만 없이) 바라봐주는 고양이들은, 태어나서 자란 지 6-7개월이 지난 다음에서야 이룰 수 있는 것이고, 그전까지 부모의 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는 것을요. 급한 대로, 주어지는 대로 상황들을 막다 보면 그다음 날이 온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부모뿐만 아니라 조력자, 그리고 고양이의 희생까지 필요하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지난날 썼던 제 과거의 글을 부끄러워하며 지냈었고, 그때의 글에 참회하고자 지금의 반성문 같은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유도분만을 스케줄 하고도 병원에 자리가 안 난다며 자꾸 미루는 탓에 씩씩거리며 밤이 되고서야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고, 그 후로 24시간이 지나 아기를 만났지만 모유수유 때문에 너무나도 힘든 시간을 보냈고, 결국에는 잘 되지 못해서 황달 치료를 보냈으며 (그리고 아물지 못한 산모는 그 옆에서 도넛 방석 하나에 의지하여 옆에서 찌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후 며칠 뒤에 귀가 접혀있다며 ear wall을 붙이는 시술을 하느라 귀 주변 배냇머리를 다 밀어버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작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산모였던 저도 몸이 아무는 과정이 늦어 몇 번씩 약을 받아오기도 했고, 약간의 산후 우울증도 왔었습니다. 이후에는 작은 손가락 상처가 크게 번져 여러 번 입퇴원을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육아 이야기이지만, 그 기간 동안 고양이들은 어땠을까요? 저희 부부에게 고양이들은 친자식은 아니지만 진짜 가족으로 두고 마음을 내어준 아이들이지만, 어쩔 수 없이 우선순위가 밀리게 되었습니다. 신생아는 낮밤 관계없이 모든 사이클이 2시간 반마다 돌기 때문이죠. 아기 수유하고, 트림시키고, 기저귀 갈고, 속싸개 하고 안아서 쉬쉬거리며 달래줘서 눕히고, 조금 재우고서 일어나면 다시 안아주고, 유축하고, 중탕하고를 반복하면 다음 사이클이 오게 됩니다. 아기가 자는 사이사이는 젖병도 닦고 빨래도 돌리고 밥도 먹어야 하고요. 밤에 잠을 많이 못 자기 때문에 눈을 붙일 때도 있고요. 만약 육아휴직이 끝난 재택근무 맘이라면? 개발새발일지언정 일도 해야죠ㅋ 그 기진맥진하여 숨을 돌리는 시기에 엄마를 보고 달려오는 고양이들이 때로는 위로가 되면서도 "얘들이 또 배가 고프고 뭘 해달라고 오는구나" 싶어서 더 지쳐왔던 것 같습니다.
아기가 백일을 넘겨 수면교육도 하고, 수유 텀도 길어지고, 밤잠도 길어지자 그제야 정신적 여유를 갖게 되었고 고양이들을 지치지 않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 집은 고양이 밥을 퍼놓고 알아서 먹으라고 해 줄 수 없는 집인데, 너무 자주 조르지만 않으면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가끔 숨을 돌리는 시기에는 고양이들을 찾아가 쓰담 쓰담해주고 잠시 놀아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조금 쌓일 때면 놀아주기도 하고 사죄의 캔과 츄르를 건네주기도 하면서요. 고양이들 또한 이제는 아기가 있으면 잠시 물러서 기다리기도 하고, 아기를 직접 상대하지 않는 사람에게 가서 요구하는 스킬까지 습득했습니다. 앞으로 점차 더 나아질 테니, 꿈만 많고 부족했던 엄마의 사과를 받아주고 앞으로의 발전을 기다려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기가 커 나가면서 고양이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저희 집에는 나름 재미있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기는 고양이만 보면 너무 좋아서 활짝 웃는데 고양이들은 그게 무서운 모양입니다. 나름 아기 치고는 조심조심하는 성격이지만 그래도 신이 나면 손을 뻗어 털을 만지고 그다음에 엄마 아빠의 허락을 구하는데,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저희 관리 아래 서로 친해지라고 그대로 두곤 합니다. 그래도 토피는 사람 좋아하고 겁 없는 성격 그대로 아기 (와 엄마 아빠) 근처에서 서성 서성이다가 가끔 기분이 내키면 꼬리를 내어주기도 하고, 근처에서 노는 걸 바라봐주곤 합니다. 반대로 겁 많은 코코는 아기와 눈이 마주치면 엄마 아빠에게 떼쓰던 도중에도 멈추고 도망을 가곤 합니다. 그렇게 아기가 놀다 떠난 자리에는 고양이들이 남아 같이 몸싸움을 하며 놀기도 하고, 아기가 자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기도 하고요.
부끄러웠던 옛날 육아 육묘 글을 다시 읽고서 아직까지 공감할 수 있는 점은 가장 마지막 부분뿐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아기는 비록 아빠를 많이 닮았고 엄마도 제법 보이긴 하지만 어떤 것을 좋아할지, 어떻게 커 나갈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토피와 코코가 (비록 친부모는 다르긴 하지만) 그랬듯이요. 그러나 아기가, 그리고 고양이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잘 커나갈 수 있도록, 서로의 삶에 각자가 잘 스며들어, 서로 좋아하는 부분은 더 채워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맞지 않는 부분은 저희가 해소해 줄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은 거기에 가족의 건강만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삶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뒤면 제가 공식적 직함을 가지고 일을 한 지 1년이 됩니다. 그 기간은 연구자로서, 개인으로써, 그리고 나 자신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많은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시국이 어려워지자 더더욱이요. 제 글의 점차 호흡이 느려지는 것 같은데, 대신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생각을 하고 돌아오게 되는 것 같아 좋은 면도 있네 라는 생각도 막연하게 해 봅니다. 또 다가오는 일의 wave를 무사히 넘겨내고, 저의 마음을 정리하고 가다듬어 그 이야기를 하러 돌아오겠습니다.
08/02/2020
토피코코튼튼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