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나만 빼고 회의를 하네
직장내 따돌림 1
<1. 직장내 따돌림 1편>
“언젠가부터 회의에 부르지 않는 거여요. 메일에서도 제가 빠져 있더라구요.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일정을 저만 모르고 있었어요. 회식을 한다고 얼핏 들었었는데...언제 하는가 했더니 이미 했더라구요. 저는 우리 팀에서 그냥 없는 사람이어요. 그래요, 저는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담담하게 이어져가던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끝내 흔들리기 시작했다. 20대 후반의 직장인 A씨는 자신이 더 두려워 하는 다음 이야기를 계속해갔다.
“중학교때 왕따를 당한 적이 있어요. 너무 힘든 나머지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선생님은 저를 왕따시킨 아이들과 저를 대면시키고서는 그 아이들보고 제게 사과하라고 하셨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그 왕따 경험은 오래동안 저를 힘들게 했어요. 마음의 상처를 추스르고,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대학까지 잘 졸업하고, 취업도 해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회사에서 왕따라니 대체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전 그저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A씨는 여기까지 말하고서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한참을 말이 없었다. 애써 묻어두고 있었던 어릴적 왕따의 기억이 10년도 훌쩍 지난 직장인이 된 지금 직장내 따돌림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수가 개인에게 행해지는 집단 따돌림. 집단에서 특정 개인을 따돌리는 ‘왕따’라는 단어는 90년대 중후반부터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퍼진 신조어이다. 은근히 따돌린다라는 의미로 ‘은따’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정도의 감수성이 가장 민감한 시기인 사춘기때 흔히 자행되는 집단 따돌림. 다수가 한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한다거나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일. 친구들과 한참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성장해 나가야 할 시기에 왕따를 당하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왕따를 당하고, 집단 괴롭힘을 당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 마다 가해자들의 무자비함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그런데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하여 성인으로 성장하고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기능해야 할 직장인들 중에는 이제는 직장내 따돌림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살면서 따돌림을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들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고, 과거 한번이라도 왕따라는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릴 적 악몽이 혹여 다시 시작될까봐 바짝 긴장하고, 움츠려든다.
집단 따돌림인 왕따가 과연 90년대에 생겼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10대였던 80년대 초반에도 권력을 가진 아이가 있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그 아이의 눈치를 보며 학교를 다니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소위 ‘삥뜯기’라고 하여 고학년이 저학년을 또는 힘센 아이가 약한 아이들의 돈을 뺐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일 물론 있었다. 어느 고등학교에는 ‘7공주’라는 무리들이 있는데, 면도칼을 입으로 씹는다러라...하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방 소도시에서 살아서인지 적어도 대놓고 전체 집단이 특정한 아이들 대놓고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일은 실제로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 무시무시한 언니들 집단인 ‘7공주’도 소문은 무성했지만 고등학교 3년 내내 실제로 접한 적이 없었다.
우리의 집단 따돌림에 해당하는 일본말 ‘이지메’는 그저 일본사회의 문제라고만 알았다. 90년대 중반 일본에서 몇 년 있는 동안 이지메라는 단어를 자주 접했으며, 이후 한국에 돌아왔을때도 우리 언론에서 우리 나라에서도 이지메가 자꾸 발생하고 있다는 뉴스를 몇 번 접했던 기억이 있다. 그랬던 것이 어느 순간 왕따라는 단어가 생기면서, 이제는 직장내에서의 왕따, 집단 따돌림 현상까지 흔해진 시대가 되었다.
‘대인관계가 좋지 않아 어렸을적부터 왕따를 당하며 살아왔습니다.
머리 속에서 주동자들을 죽이고 싶다는 상상만 하고 꾹 참고 살았습니다.
그렇게라도 안하면 못 버티겠더라구요.
이제 나이 36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입니다.
현재 남들이 다 알만한 대기업에서 대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냥 일하면서 대화도 잘 안하고 업무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점점 따돌리는 분위기로 가고 이게 1년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같이 일하는 동생들도 무시를 하더군요...
하루하루 머리가 깨질거같고 출근하기도 괴롭네요.
버티기가 힘들어 몇개월 간 자살할까 고민 많이했습니다.
얘기할 사람도 없고 너무 힘들어서 그냥 글이라도 올립니다.
넋두리 하데가 없어서 그냥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그냥 읽어만주세요...’
몇 년 전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직장내 따돌림으로 괴로워하는 글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었기에 어떤 말이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까 한참을 고민했다, 수십개 달린 댓글 의견들도 꼼꼼히 하나하나 살펴 보았다. 그 댓글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우선, 회사에서는 한 사람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 사람은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 그러니 업무 능력을 키워라. 업무 능력 떨어지는 사람과는 일하는 것이 짜증난다는 의견이었다. 또다른 의견은, 업무 능력과 상관없이 사내 정치나 여타의 이유로 따돌리기도 한다. 왕따를 당해 업무 정보에 둔해지다 보니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왕따를 시키는 사람들이 나쁘다. 괴로워하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의견이었다. 두 의견은 팽팽했지만 전자가 좀 더 지지를 받고 있었다.
직장내 따돌림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서로 다른 두 주장의 댓글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며 이상적으로는 후자의 의견이 맞겠지만 현실은 전자 역시 무시못할 듯 했다. 아니 그보다는 두 가지 이유가 모두 섞여서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싶었다.
소위 ‘업무 저성과자’가 따돌림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실력 있는 고성과자가 따돌림에 시달리다 지쳐 이직을 하는 경우도 분명히 봤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성과자는 직급은 높지만 능력은 떨어지는 상사의 질투를 받았을 수도 있다. 그 상사가 주위 또는 더 높은 상급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마음만 먹으면 사실 얼마든지 가능하며 아주 흔히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회사에서의 집단 따돌림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A씨 사례처럼 언젠가부터 정당한 이유 없이 회의에 부르지 않고, 메일 참조에서 슬쩍 빼고, 따로 007 작전 접선하듯이 회식을 하는 일은 너무 흔한 일이다. 나는 모르는 정보로 인하여 업무에 문제가 생겼을 때 덤터기를 쓰거나 언젠가부터 힘들고 궂은 일들이 슬쩍 내게로 넘어 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단톡방을 따로 만들어서 나 혼자만 대답 없는 메아리 톡을 보내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직장 생활에서 사표를 던지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관계 갈등이다. 우리는 내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곳에서 인간관계로 가장 고통스러워 하고 있으며, 더더욱 집단 따돌림은 피해자에게 가장 극심한 방식의 스트레스를 유발시킨다는 점에서 결코 함부로 자행해서는 안된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가슴이 아프고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직장인. 탤런트 김혜자씨는 <꽃으로라도 때리지 마라>고 했는데, 왜 함께 일하는 동료의 가슴에 비수가 박히도록 따돌리는 것인가?
만약, 성과가 부진하고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직원이 있다고 하자. 따돌림은 감정의 영역이고, 그런 직원을 회사는, 상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업무 수행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타인과의 소통하는 방식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팩트에 근거하여 구체적으로 피드백해주어 그 직원이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왜냐? 직장내 집단 따돌림은 그저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 문제가 아니라 직장내 역할 모호성, 업무 과다, 스트레스, 자율성 결여, 조직의 공정성 부재와 같은 회사와 관련된 요소들도 중요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직원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지원이 부족한 회사일수록 따돌림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하며, 직장내 소통이 원만하고 직무 수행 지침이 일관적이고, 관리자들이 적절하게 갈등관리를 하는 직장들에서는 따돌림이 적다고 하니 직장내 따돌림 문제로 상담을 청하는 직원들이 있는 회사라면 건전한 직장내 관계 문화를 만들기 위하여 경영진부터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싶다.
(2편에서 계속)
#직장내따돌림 #직장내괴롭힘 #왕따 #커리어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