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속을 걸어 다니는듯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대기는 습기까지 가득 머금고 있으니 찜솥안의 만두처럼 말랑말랑하게 쪄지는 느낌이다.
작년의 오늘, 나는 더위를 느끼지 못했었다.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여름이었지만 두려움과 황망함속에 휩싸여 더위를 느낄 수 있는 감각세포는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 나는 이 더위를 마음껏 즐기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여수로 향했다.
정 많은 사람들에, 맛있는 음식에, 갈 때마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곳.
이순신대교를 지나며 내 마음에 암의 그림자는 말끔하게 사라져 있음을 느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아쉬움도 없이.
그저 푸른 하늘과 더 푸른 바다를 상쾌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올해 4월 초 나는 췌십이지장절제술(PPPD수술)을 했고, 수술당시 기적의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참 조심스러웠다.
항암치료기간 동안 늘 되새겼던, 일희일비하지 말고, 설레발치지 말고, 너무 들뜨지도, 너무 절망하지도 않겠다 다짐했던 각오들이 흐트러지고, 이 기적 같은 소식이 금세 휘발될 것 같아서.
그래서 준비하고 있던 책이 나올 즈음에 얘기를 해야지 생각했었다.
수술을 끝내고 오신 교수님이 '완전관해'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4기 환자로는 국내에서 최초라는 말씀도 함께.
맞다. 나는 기적의 한가운데 서있었다.
어디선가, 누구에게 일어난 기적들을 보며 부러워만 했었는데 나에게도 그 기적이 온 거다.
수술을 위해 뱃속을 들여다보니, 림프관에 침윤해 있던 암세포들과 7.5cm가 넘었던 원발암덩어리까지 모두 사멸해서 죽은 찌꺼기만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이후 조직검사에서 모든 암이 사멸해서 완전관해 판정을 받았다.
수술 후 3개월이 지난 지금은 암세포가 살아있지 않은 몸에 굳이 독한 항암제로 예방항암을 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하에 임핀지 면역항암제만 2회 맞고, 일단 항암은 끝난 상태다.
앞으로는 2개월마다 CT를 찍어 추적관찰을 하자고 말씀하셨다.
처음 완전관해판정을 받았을 때, 종교가 없는 나는 신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그리고 '험난한 시간을 헤쳐 나오면서 조금은 더 성숙해졌을 내가 아직 세상에 쓸모가 남았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원래 나는 청소학원을 경영하고 있었고, 기관에 마인드교육도 진행하던 강사였다.
그때도 많은 교육생들로부터 원장님을 뵙고 나서 도전할 용기가 생겼고, 에너지를 많이 얻었다는 이야기를 줄곧 들었었다.
아마도, 이 기적 같은 일들과 나의 에너지로 같은 힘든 이번엔 암환우들에게 희망을 전달하라는 뜻일까?
혼자 생각했었다.
해서 나의 책이 중간에 방향이 바뀌었다.
일상에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환우들에게 드릴 수 있는 팁들과 희망의 메시지들을 실었다.
다음 주면 출간이 되는데 어떻게든 나와 같은 절망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많은 환우분들에게 희망으로 가닿길 바라는 마음이다.
1박 2일의 여수여행은 역시 참 좋았다.
좋은 풍경에, 좋은 음식에, 좋은 사람들.
방문할 때마다 기분 좋은 도시다.
아점으로 늘 찾는 여수수산시장 맞은편의 갈치조림,구이전문집에서 밥을 먹으며 , 남편과
"다음에는 우리 옆집에서 먹어보자"라는 이야기를 했다.
순간 나는 또다시 벅찬 행복감에 휩싸였다.
한때,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다음'이라는 시간이,
이제 끝없이 펼쳐져있음이 나를 한 번 더 행복하게 만든다.
"죽음은 행복을 결정할 수 있는 단 한나의 진정한 결정권 자다"라고 말했던 솔로몬의 이야기가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하지만 언제 또다시 마주하게 될지 모를 '죽음'앞에서,
이제는 조금 더 담대하게 마주 보고 그 속에 숨어있는 숨은 행복들을 또 눈 밝게 찾아내어,
이 귀하고 귀한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오늘을 살아갈 거다.
여수의 밤은 여전히 아름답고,
오늘 내 하루도 찬란히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