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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 Nov 13. 2024

악몽같았던 5회차 항암치료일지

 그리고 6회차 항암.

항암치료.

암 그 자체로의 두려움과 더불어 더욱더 큰 두려움 속으로 잠식시키게 한 항암치료.

처음에 그 거대한 두려움 속에서 겁에 질렸었던 내가 떠오른다.

치료 없이 그대로 방치할 경우 예상 여명은 6개 월남짓.

그냥 이렇게 살다 죽을까... 생각했을 만큼 항암치료에 대한 두려움은 컸었다.

앞서 여러 번 언급했었지만 그럼에도 나의 생에 대한 집착,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책임감, 그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현재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항암치료에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었다.

막상 시작하니 할 만했다.

수많은 말들을 들어서 속으로는 바짝 졸아있긴 했으나, 막상 경험해 보니 할만했던 것이다.

그렇게 회차가 늘어갈수록 너무 초기에(백혈구 수치도 정상이고, 체력이 남아있을 시기에) 성급하게 항암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결론 내어 버린 것은 아닐까. 염려되던 바도 있긴 했다.

이제 겨우 몇 번 받아놓고 몇 년씩 항암치료받으며 힘들게 버티는 분들의 고됨을 그 정도는 당연히 참아야 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치부하는 듯한 경솔함을 범하지는 않아야 할 텐데 하며.

하지만 읽는 분들도 초반의 경험치에 의한 결과임을 감안하고 읽으실 줄로 안다.

앞으로 내가 넘어야 할 수많은 산들에서 어떤 험준한 상황을 맞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알지 못하는 길이기에,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기에 항상 두려움은 도사리고 있다.



어제는 6차 첫 번째 항암치료를 받고 돌아왔다.

어제 항암치료를 받고 오늘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컨디션이 하루 만에 회복되었기 때문이란 반증이고. 5차 항암을 한지도 3주가 지났다.

5차 항암치료를 하며 너무 힘들었어서 진작에 '항암일지'라는 제목으로 글을 적고 싶었으나 그 상황을 다시 되새기기가 힘들어서 지면을 회피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힘들기만 하다면 나는 이제 항암치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나약하다 표현하기보다는 포기를 선택할지도 모르겠다는 무서운 생각까지도 했었으니까.

예전에는 몇 차 항암이 힘들다 어쩐다 얘기를 들으면, 

똑같은 약을 매번 맞는데 회차마다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확실히 나는 5차 1,2회 항암치료가 다른 회차보다 힘이 든 게 사실이었다.

다행히 6차 항암치료에서 큰 부작용이 없어서 이것이 누적이 아닌 컨디션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거구나 하고 어느 정도의 안도감을 느꼈기에 다시금 그 상황과 마주해보려 한다.



항암치료가 있는 날 울산에 살고 있는 나의 일과는 새벽 3시 30분에 시작한다.

30분 만에 후닥닥 준비해서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서울의 신촌세브란스로 향한다.

처음에는 KTX를 이용하기도 했었는데 주사를 맞고 고열이 나는 경우가 많아 온도조절이 힘들고 누워있을 공간이 없어서 한번 고생한 이후로는 계속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왕복 10시간에서 11시간이 걸리는 고된 시간이라 늘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지만 남편은 자신이 이런 거라도 함께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 말한다. 

상황이 더욱더 우리 사이를 견고하게 해 주는 건 확실하지만 언제나 듬직한 남편이다.

울산에서도 병원이 있을 텐데 굳이 그 먼 곳까지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냐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다.

내가 맞고 있는 주사 임핀지, 시스플라틴, 젬시타빈은 울산에 있는 대학병원에서도 맞을 수 있다.

그 먼 길을 3주에 두 번씩. 앞으로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다녀야 한다는 부담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과 오래 고민해 본 결과 처음 6개월이라 진단을 내리면서 서울 가봐야 별수 없을 거라는, 나는 응당 죽음의 수순을 밟게 될 거라는 회의적인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기계적으로 얘기하는 그 병원의 의사에게 나의 생명을 맡길 수는 없다는 결론에 닿았다.

힘든 과정을 감수하고서라도 생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을 것이고, 비상 상황이나 달라지는 변화에 똑똑하고 발 빠르게 대처해서 '살리고자'하는 의지를 가진 의사 선생님께 찾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힘든 항암과정에 몸과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적응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다.


두 번째 항암이 시작될 때부터 병원 지하주차장의 특유의 향기와 주사실의 소독약냄새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옆 침상에서는 약을 맞다가 구토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나는 주사를 꽂음과 동시에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있는다. 그런 소리들이 겨우 참고 있는 속을 더 울렁거리게 만드니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그 냄새와 분위기가 맴돌아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 글을 쓰는 중이다.

아픈 것보다 아마도 그 구토감 때문에 제일 힘든 것 같다.

5차 항암 때 잠도 두세 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허리도 삐끗해서 움직일 때마다 힘든 상태에서 주사를 맞았다.

속이 울렁거려 사탕을 입에 넣고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이를 악물고 구토감을 버티고 있다가

결국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가 쏟아져 나오는 구토를 막지 못했다.

그러고 나니 온몸에 힘은 쭉 빠지고 더 예민해진 빈 속으로 주사실의 오만가지 냄새들이 콧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아. 그 속이 뒤집어질 것처럼 울렁 거지는 구역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당장이라도 주렁주렁 달려있는 주삿바늘을 빼고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주사를 맞으며 물 이외에 음식섭취는 불가하지만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유자에이드를 조금 마시니 정말 다행히도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 집을 돌아가는 길에도 구역질이 나서 물조차 마시지 못하고 몇 시간을 차 뒷좌석에 기절하다시피 누워서 왔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남편도 얘기를 전해 들은 가족들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집으로 내려가는 차 안 뒷좌석에 웅크리고 있었던 나는 내려가는 내내 몹시 두려웠다.

늘 항암치료도 해보니 별것 아니라며 큰소리치며 씩씩하게 굴었던 나인데, 벌써 다음번 항암치료가 두려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물조차 마시지 못하면 계속해서 구역감은 내 속에 머물 것이고, 체력이며 멘털까지 탈탈 털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체력싸움 멘털싸움이라고 얘기하던 말들의 뜻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항암치료 고작 몇 번 받아놓고 겁먹지 마라, 할만하다고 얘기했던 경솔했던 과거의 내가 부끄럽기도 했고.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누룽지를 조금 끓여달라 부탁했다.

다행히 차 안에서 조금 잠을 잔 뒤라 울렁거림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뜨끈하고 구수한 누룽지가 몇 숟갈 들어가자 속이 아주 편해졌다.

집안에서 오는 안정감과 익숙한 냄새들이 전체적으로 위장을 달래준 듯도 하고.

며칠 갈 줄 알았던 구토감은 정말 다행히도 다음날 오후가 되자 바로 없어졌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구토감이 계속 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내 경우로는 주사 맞고 하루이틀 정도까지는 컨디션이 별로이고 그 이후로는 괜찮은듯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주사를 맞는 그날이 다가오면 신경이 곤두서고 괜한 울렁거림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심리적 트라우마가 벌써 작동하는 건가 싶어 앞날이 깜깜하긴 하다.



이번 진료 때 교수님께 이 말을 하니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얘기를 들은 교수님은 바로 약처방을 해주셨다. '아티반정'이란 약의 효능 효과를 찾아보니 항정신성 약물로 정신/행동장애>항불안제라고 적혀있다.

병원치료 전날 저녁이랑 아침에 조금씩 복용하면 된다 하시는데 궁금한 마음에 오늘 아침을 먹고 반알을 먹었다.

점심쯤 되자 나른하게 잠이 쏟아져서 낮잠을 달콤하게 두 시간 정도 자고 깨어나는데 창밖의 햇살이 비쳐 들어오는 오후에 풍경이 그리 평화롭고 행복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이거 약효 때문에 이런 건가. 싶어 퍼뜩 병원의 주사실을 떠올려보니 바로 구역질이 올라왔다. 

'에이씨. 그냥 나는 낮잠을 아주 꿀처럼 잘 자서 세상이 행복해 보이는 거였다.'

뭐 어쨌든 이 약이 얼마만큼의 심리적 안정감을 줄지는 모르겠으나 안 먹는 것 보다야 나을 테고 다음번 치료일이 벌써부터 부담되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겨내야지.


힘겨웠던 5차 항암치료를 하면서 한 가지 크게 깨달은 점은.

다음부터는 함부로 항암치료가 이렇다 어떻다 단언하지는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힘들 수도 있고,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고, 좀 쉬울 수도 있는 건 맞다.

그게 나의 컨디션에 따라서 많이 달라질 수 있으니 항암치료 전날은 푹 쉬고 잘 자고 잘 먹고 가야 한다.

버티기 힘들어도 약물의 도움이든 뭐든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야 할 것이고.

넘어지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넘어지면 왜 넘어졌는지가 보인다.

그리고 일어나서 훌훌 털고 일어나서 똑같은 일로 다시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면 된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도 수없이 닥쳐올 새로운 상황에 넘어져도 조금씩 다시 적응해 나가면서 항암치료에 임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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