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양치기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긴 이야기 말입니다. 어떻게 연약해 보이고 자그마한 다윗이 거대한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일까요?
“크기”를 싸움의 주 변수로 본다면, 평범한 사람이 거인과 대적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크기가 아닌 “무기”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완전히 얘기가 달라집니다. 다윗은 특화된 무기를 갖고 싸움에 임했고, 결코 골리앗을 모방하거나 골리앗이 원하는 방식으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성경책을 갖고 계시면 “사무엘상17”을 펴보십시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하니까 사울왕은 자신의 갑옷과 투구를 다윗에게 줍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군복을 입고 칼을 차고 시험적으로 걸어 보니 익숙하지 않다며 반납하고, 대신 양치기 소년으로서의 ‘직업적 전문성과 특화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게, 시냇가에서 매끈매끈한 돌 다섯 개를 주머니에 넣고 가 돌팔매로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하지만 만약 다윗이 사울왕의 무거운 갑옷과 투구를 쓰고, 칼과 방패를 들고 근거리에서 골리앗과 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가호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최소한 사망’이었을 겁니다.
그럼, 골리앗은 진짜로 파워풀한 거인이었을까요? 성경책을 보면, 그는 거대하긴 하지만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고, 다윗이 손에 들고 있는 막대기가 한 개인지 아닌지 헷갈리고 있고, 방패를 들고 앞서가는 인도자를 따라다니는 ‘거인증 환자’가 아닌지 의심이 갑니다. 거대하고 힘있어 보이는 적도 실상은 겉보기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말콤 글레드웰의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책에 실려 있습니다.
혁신이 무엇일까요? 싸움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 혁신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해전과 같이 싸움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 혁신입니다. 어렵게 이기기 위해서 혁신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이기기 위해 혁신하는 것입니다. 시작이 고정관념의 타파입니다. 적보다 유리한 내가 가장 잘 하는 방식으로 적을 무력화하는 것입니다.
농구에서 Full Court Pressing이라는 전술이 있습니다. 이 전술은 농구의 규칙에 기반하여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여 공수를 바꾸게 하는 전술입니다. 공격이 끝난 시점에 재빨리 돌아와 수비진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이 끝난 그 순간부터 Full Court에서 수비가 진행되는 전술입니다.
아들 농구 동호회에서, 저는 이 전술을 아빠들과 같이 농구에 입문한 지 3개월 밖에 안된 아이들을 데리고 썼습니다. 3년 이상 농구를 한 팀들은 모두 표준 농구 전술을 하고 있을 때, 3개월 밖에 안된 아이들을 데리고 이 전술을 썼습니다. 결과는 20개팀이 출전한 토너먼트에서 3등을 했습니다. 체력이 바닥나서 아이들이 지쳐버려 결국 준결승에서 졌지만, 결성 3개월 후 첫 출전에서 3등이라는 기적을 일궜습니다. 상대팀의 허를 찔렀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완전히 주인공이었습니다. 1등보다 유명한 3등입니다. 같은 이야기가 [다윗과 골리앗]에도 실려있습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은 상대가 유리한 게임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우리가 유리한 게임을 하는 겁니다.
2014년 1월 23일 사람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