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by 송창록

중학생 딸하고 주말에 잠깐씩 데이트를 하는데, 서로에게 민감한 얘기는 터치하지 않습니다. 알고도 모른 척 해주고 때로는 간단하게 알고 있다고 힌트만 줍니다. 대신 같이 먹고 있는 음식 얘기, 같이 본 영화 주인공 얘기, 요즘 딸의 또래들이 좋아하는 물건 얘기, 간단한 화장품 얘기 등을 나눕니다.


사실 딸이 어떤 친구들을 사귀는지 디게 궁금합니다. 그러나 딸에게 묻지 않습니다. 아빠라는 사람이 딸의 친구에 대해서 물을 때 무엇을 물을 지 뻔합니다. 대개의 경우 딸의 친구에게 궁금한 것은 친구의 가족과 환경입니다. 이 폭탄만 피해서 질문해도 아빠로서는 본전은 합니다. 딸의 친구가 자기 딸과 어떻게 잘 지내고 소통하고 무엇을 하고 노는지를 궁금해 하는 아빠는 거의 없습니다. 딸과 친구 사이에 등장하는 재료를 질문하면 좋습니다. 그것도 직설적이 아니라 에둘러 하는 간접화법으로.


중학생 딸이 사는 시대와 문화에 거의 공감이 되지 않는 나이의 아빠가 딸에게 좋은 질문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뭘 알고 있어야 질문이란 것을 할 텐데 아는 것이 있어야 말이지요. 맨날 새벽에 출근하여 밤 늦게 들어가는 아빠가 딸 또래 친구들의 문화에 대해 뭘 알고 있겠습니까. 딸하고 SNS로 대화하는 것은 수다에 가깝습니다. 그나마 그런 수다조차 들어주고 호응해 주지 않는다면, 아빠와 딸 사이는 다도해에 떠있는 섬과 같습니다. 닮은 꼴이라서 어울리기는 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그런 사이.


대화는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로 Discuss란 Greeting을 제외한 모든 대화를 포함하는 말이랍니다. 대화가 결국 토론이라는 뜻이 영어권에는 담겨 있습니다. 대화를 하는 것, 그 자체가 인문학적 소양이라는 의미입니다. Discuss와 동격인 말은 Talk about (anything)입니다. Anything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Talk가 되지 않습니다. 대화도 재료가 문제입니다. 딸하고 하는 대화나 회사에서 맨날 하는 회의나, 결국 문제는 Anything, 즉 Contents입니다.


컨텐츠가 좋으면 누군가가 말을 하고 상대방은 듣습니다. 그 다음에야 말하는 태도와 듣는 태도를 논할 수 있습니다. 할 얘기꺼리 자체가 없는데 태도는 무슨.

2016년 3월 21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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