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장사꾼이 사방에 널렸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사춘기 인문학부터 CEO를 위한 고급스러운 “인문학 특강”까지. 인문학도는 취업을 못해 쩔쩔 매는데, 이공계면서 인문학 지식을 겸비한 사람은 훨훨 납니다. 인문학이 삶과 죽음 그리하여 존재의 근원을 언어로 다루기 때문에, 학문의 쌩기초임에도 불구하고 상품이 되는 시대입니다.
인문학이 어렵다고 합니다. 인문학 도구인 언어의 의미를 엄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경험과 기준대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수학에 수학의 약속인 기호들이 있듯이 인문학에는 인문학의 약속인 언어들이 약속된 의미로 쓰입니다. 인문학에 사용되는 단어들의 개념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문학 단어는 발명자가 있고 그 발명자의 발명 의도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인문학 고수가 초심자를 위해 써놓은 개론서는 항해지도와 같습니다. 그 지도도 없이 바로 전문가의 영역으로 뛰어 들면 들어가기는 하지만 나오는 길을 잃습니다. “니체”를 알기 전에 “고수가 들여다본 니체”를 먼저 알면 좋습니다. 마치 “한 여인”을 알기 전에 “가족이나 주변인이 알고 이는 한 여인”을 먼저 알면 도움이 되듯이. 부부에게 부부란 함께 살아도 죽는 순간까지 절대로 서로를 알 수 없는 존재인 것처럼, 니체의 책을 읽는다 해도 절대로 죽는 순간까지 그의 전부를 알 수는 없습니다. 먼저 탐험한 고수들이 알려준 여행 지도, 즉 “개론서”를 읽는 것이 오히려 근본에 잘 접근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생각은 단어로 하고 행동은 문장으로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단어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의미들은 즉각 머리에서 연결되고 이해되어야 합니다. 인문학 두뇌는 간접 탐험인 독서와 직접 탐험인 생각이 만나서 다듬어지고 정교해진 창조물입니다.
2015년 3월 5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