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cation의 어려움

by 송창록

대화하다 보면 단어의 의미를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어서 대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계와 조건은 비슷한 말이지만 전혀 다른 말인데 구분하여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계는 화살표의 끝점이 만나는 곳이고 조건은 화살표의 시작점이 만나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섞어 쓰기 때문에 대화가 안됩니다. 사과라는 과일을 얘기할 때도 누군가는 부사를 누군가는 홍로를 또 누군가는 아오리를 떠올립니다. 자기의 사과가 다들 따로 있습니다. 우리의 기억이 추상을 구체적 이미지로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Communication이 불가능한 동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둘러싼 사회의 욕망과 규범에 자기 자신을 맞춥니다. 개인 욕망은 사회 욕망의 Mirror Image입니다. “내 것” 없이 “타인의 것”을 “내 것”으로 삼습니다. 이런 경우가 “의존적 욕구”입니다. “타인이 규정한 나”가 “자기가 생각하는 나”입니다. 이 방식대로 생각하는 법이 굳어지면, 평생 “자기 자신”을 잃습니다. “누군가의 인형”으로만 살다가 죽습니다.


종교와 철학은 잃어버린 “자기”를 찾는 구도와 사유입니다. 철학이 없는 인문학은 “타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쇼핑 행위입니다. 패거리를 만들러 교회나 절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타자의 시선”으로 자기를 구성하는 “욕망”입니다. 행복이 “타자의 시선”에 있지 않고 “자기 성찰”에 있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진정성”이란 말이 유행합니다. 이 단어는 국어사전에 없는 신조어입니다. 영어로는 Authenticity입니다. “그냥 진짜”란 뜻입니다. “거짓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마음 상태”를 의미합니다. 당연히 내적 성찰이 없다면 얻을 수 없습니다. “진정성 있는Communication”이란 “자기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구성해본 적이 없이 “타자의 시선”으로 자기를 구성하는 현대인은 “진정성”을 티끌만큼도 드러낼 수 없습니다.

2015년 4월 6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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