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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Mar 19. 2022

화제의 신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추천

사랑을 잃고 사랑을 찾는 일에 관한 책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저

 



 눈을 확 잡아끌면서도 이상한 제목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니. 물고기는 엄연히 존재하지 않은가? 집에는 멸치 반찬이 있고, 얼마전에도 구내식당에 생선까스가 나왔다. 나는 어렸을 때 열대물고기를 키운 적도 있다. 엄마아빠는 외동인 내가 외로울까 늘 염려했고, 그렇다고 강아지를 키울 여력은 안 되니 들여온 게 그 물고기들이었다. 애초에 혼자인 것에 너무 익숙했던 나는 조금도 외롭지는 않았지만, 작고 반짝이는 그들이 내 마음에 조금의 위안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물고기들이 우리집 어항에서 행복했는지는 모르겠다. 이제야 그런 궁금증이 드는 건, 얼마간 이 책 덕분이다.





 그러면 다시 자극적인 제목 이야기로 돌아오자. 시선을 끌기 위한 전략의 결과물일까? 그건 아니다. 저자의 말이 맞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째서 우리 눈에 뻔히 보이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시길. 참고로, 밀리의 서재에서도 서비스되고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랑과 희망, 결국 우리 인생의 정수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다. 다른 많은 책들이 하고자 했던 말을, 굉장히 수려하고 진실된 방식으로 풀어낸 책. 앞으로 한 발짝도 떼지 못할 만큼 지쳤을 때,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답을 찾으려고 애쓰지만 알 수 없을 때, 지독하게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디며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읽기 좋은 책. 내용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잘못으로 연인을 잃고 절망에 빠져있던 저자가 희망을 찾으려 애쓰며 보낸 여정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여정이 너무나 예상 밖으로, 그러나 경이롭게 흘러가므로 이 책이 지금과 같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찬사를 받는 것일 테다.





 저자는 연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절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애타게 찾는다. 그러다가 한 과학자를 발견한다. 분류학자였던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으로,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수집하는 데 집착했다. 그는 그렇게 '생명의 나무'를 그림으로써 생명의 질서를 알아내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날 지진이 일어나고, 그가 수집했던 수많은 물고기들이 이름표를 잃어버리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사태가 일어난다. 그는 어떻게 했을까? 구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물고기를 집어들고, 바늘을 이용해 몸통에 이름표를 꿰매기 시작했다. 저자는 바로 이 일화에 꽂혀 데이비드라는 인물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어떻게 그는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지, 그를 쫓다보면 희망의 증거를, 어떤 불행에도 굴하지 않았던 낙천성의 비결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러나 저자가 대신 발견한 것은 이 인물의 지나친 자기 확신과 낙천성이 불러온 수많은 오류와 모순들이었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강박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해고하려 했던 제인 스탠퍼드의 독살을 은폐하려 했고, 우생학을 지지하며 널리 전파했던 선두주자였으며, 동물에게 그러하듯 사람에게도 우월한 정도에 따른 등급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믿고 실천에 옮겼던 인물이었다. 저자는 그렇다면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이 무엇이었던가 찾다가 알아낸다. 바로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았던, 그러나 저자가 발견했던 것 중 가장 놀랍고 예상치 못했던 것, 바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고 싶다면, 잠시 이 문단은 건너뛰는 것이 좋다. 꽤 놀라운 반전에 해당하는 이야기니까. 우리는 수많은 물에 사는 생명체를 물고기라 부르지만 실은 그런 분류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육지 위에 사는 수많은 동물과 생물을 육고기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그들은 하나의 범주로 몰아넣는 건 그만큼 터무니없는 일이며, 그런 범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윽고 깨닫는다. 우리가 절망의 바다를 헤치기 위해, 그 시간을 견디고도 계속 살아남기 위해 정작 필요한 것은 확신이 아닌 의심이다. 





 우리가 쉽게 빠지는 '안다는 확신', 우리 눈 앞의 이 생명체를, 관계를, 느닷없이 닥친 불행 따위를 모두 다 알고 있다는 확신은 모조리 틀렸다. 우리는 매번 틀리고, 새롭게 또 틀리며, 끊임없이 틀린다.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지금 우리 각자가 지닌 관점―예컨대 우리 중 한 사람의 삶은 우주 전체에서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은 그저 하나의 관점일 뿐이라는 사실, 실은 모든 생명체에는 '우리가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성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만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빠졌던 자가당착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 방법이며, 끝없이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의 방법이며, 삶을 견디지 않고 온 몸으로 살아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아주 많은 것을, 심지어 우리 자신도, 우리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조차도 모른다. 이 얼마나 감사한지. 왜냐하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어떤 경이가, 어떤 기적적인 반전이 그 안에 잠자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끔찍한 하루 잠깐 들른 카페에서, 나가기 싫은데 억지로 나간 약속에서, 견디지 못해서 뛰쳐나갔던 공원에서 우리는 꿈에서도 바란 적 없던 귀한 인연을 만날 수도, 삶의 새 장을 열만한 사건을 맞닦뜨릴 수도 있다. 무엇이든 간편하게 하나의 범주에 넣어버리는 것을 유의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바로 그런 회의로 삶을 바라볼 때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아직은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오지 않았더라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생각보다 더 귀하고 이 삶은 끝없는 경이라는 것을 발견할지 모르니까. 그 혼돈을 그저 받아들이라―당신의 그 생각은 영원불멸의 진리가 아니며, 언제나 다른 방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





나는 따스함이 넘쳐나는 그녀의 허벅지를 움켜잡고 생각한다. 가장 희망적인 순간에조차, 나의 하찮은 뇌는 그녀만큼 한없이 도취시키는 존재를 꿈에도 상상해내지 못할 거라고.




 이 글의 처음에서 인용한 문단처럼, 저자는 결국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보물을 찾는 것처럼 끝없이 그 희망의 뒤꽁무니를 쫓았기 때문에, 또 물고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가. 물고기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편안함을 진실과 맞바꿀 수 있겠는가? 나는 당신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저자가 말한 것처럼 당신 내면의 있는 것은 당신이 해왔던 모든 일들, 그래서 당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눈에 비친 당신 자신보다 더 위대하니까.



사람은 영원히 자신이 창조한 것들보다 높이 올라가야 한다.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보다 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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