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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Mar 01. 2022

제인 오스틴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소설책

<제인 오스틴 소사이어티>, 내털리 제너 장편소설

 그녀는 내면으로, 그리고 더 이상 집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방치되고 낡은 저택의 경계선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고 나서 턱 밑에 있음에도 놓쳐왔던 것들을 발견해냈으며, 이것들을 지나치거나 일상의 혹독함에 스쳐 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세상이 자신에게 내려주려고 혈안이 된 것 같은 아주 억제된 삶의 한가운데서 발견의 공간을 창조했다. (생략) 하지만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에비 스톤은 새롭고 계몽적이며 지축을 흔들 뭔가를 그녀만의 방식대로 조각해냈다. 누구도 그녀에게서 그 결과물을 빼앗을 순 없었다.

― <제인 오스틴 소사이어티>, 내털리 제너 장편소설



 서점에서 처음 보자마자 시선과 마음을 빼앗겼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분위기의 표지―드레스를 입은 두 여성이 웃으며 책을 읽고 있다―에 '제인 오스틴 소사이어티'라는 매력적인 제목이라니. 제인 오스틴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오만과 편견>을 책으로 읽고, 키이라 나이틀리가 나온 영화로 보고, 또 콜린 퍼스가 나온 BBC 드라마를 봤으며, <이성과 감성>은 BBC 드라마로만 본 게 전부이기 때문. 해리포터처럼 어마어마한 팬을 지니고 있는 대상을 평범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약간 위축되기 마련이다. 




 <제인 오스틴 소사이어티>는 제인 오스틴을 사랑하는 여덟 명의 남녀가 제인 오스틴을 기억하고 관련된 유품을 보존하기 위하여 협회를 설립하며, 그 과정에서 자기들의 삶을 단단하게 또 새롭게 재정비하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안타깝게도 실화 바탕은 아니고, 나처럼 책은 <오만과 편견>밖에 안 읽었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맨스필드 파크>를 비롯한 제인 오스틴이 집필한 책들의 내용을 대충이라도 알고 있다면 더더욱 즐길 수 있는 그런 책.




 이 책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다뤘다는 점에서, 또 전쟁 후에 몸과 마음에 상흔을 입은 사람들의 여린만큼 강인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건지감자껍질파이 북클럽>과도 닮아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제인 오스틴 소사이어티에 속한 8명의 남녀는 제각각 개성과 매력이 넘치지만, 얼마간 그들이 사랑하는 제인 오스틴을 닮아있다.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통찰력이나 섬세함, 삶을 사랑하는 낭만 같은 것들.




 그리고 이 책 역시 제인 오스틴을 닮아있다. 작가가 얼마나 제인 오스틴을 사랑하는지 페이지 한 장 한 장에 그에 대한 애정이 깊이 녹아있는 것만 같다. 나는 <오만과 편견>을 처음 읽었던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깊이 사랑해왔지만,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더욱더 그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다아시가 뼛속까지 오만에 가득 찬 인물이라 엘리자베스에게 빠진 마음을 애써 숨기고, 또 타인을 멋대로 조종하는데 기쁨을 느꼈으므로 친구 빙리를 설득해 제인과 찢어놓았다거나 하는 것들. 다아시를 흠결 없는 사람으로 보고자했던 내 마음이 그의 오만함을 진정한 선의에서 비롯된 단순한 실수로 치부해놓았던 것이다. 




 

 또 엘리자베스에 관한 것도 있다. 영리하고 똑 부러진 그가 터무니없게도 바람둥이이자 허풍쟁이인 남자에게 넘어갔던 것은, 다아시가 그의 자존심에 흠집을 낸 이후였으므로 더욱 간단해졌던 것임을. 이를 깨닫고 난 후에 다아시와 엘리자베스, 그리고 제인 오스틴이 더욱 좋아졌다. 제인 오스틴이 그리는 모든 인물은 흠이 있으므로 살아 움직인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훨씬 사랑스럽다.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슬쩍 보고 지나쳐가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애정을 갖게 된다. 마음이 더 깊어지고 들이는 시간이 더 길어질수록 관계는 더 끈끈해진다. 이때 함께 사랑하는 다른 이들이 있다면, 그래서 대화를 나누고 서로가 보지 못한 면면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조성된다면 얼마나 좋은 의지처이자 삶의 동반자가 될까. 




  이 책에 등장하는 여덟 명의 남녀 중에는 전쟁으로 형들을 잃은 채 내면에 갇혀 살아가는 애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유산까지 한 젊은 애덜린, 아버지의 사고로 더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일하게 된 에비, 마을의 의사이지만 죽은 아내를 잃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있는 그레이 박사 등이 있다. 각자의 아픔과 고통을 품은 채 살고 있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인물들 가운데, 나는 진정한 주인공이자 가장 제인 오스틴과 닮은 인물로 에비를 꼽고 싶다. 바로 이 글 상단에 인용한 문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인생에 닥친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삶을 내팽개치지 않은, 절망이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않고 이 세상 누구도 아닌 오로지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단단히 붙잡고 자기만의 삶을 구축한 단단하고도 아름다운 사람. 제인 오스틴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다고 믿으며, 나 또한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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