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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섬 May 17. 2022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여정

비정제 에세이




근래 나는 피상적으로는 시니컬 모드라서

나름대로 쎄함과 냉함을 은근슬쩍 흘리고 다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동시에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레트로 모드라서

우울함과 아련함에 푹 잠겨 들어가 절여져 지내는데...

본래 그런 인간이라서 다들 그러려니 한다.

요즘 조금 더 그런 모드입니다.

'조금 더'에 강조를 하고 싶습니다.





내 시간을, 물리적으로 유효한

가장 작은 단위로 쪼개어 바라볼 수 있다면

나는 한시도 같은 상태로 존재하지 않으나

분명히 어떤 경향성을 띠고 있을 것이다.


그 경향성이란 것조차

복잡한 요소를 입체적으로 얽어놓은 것만 같아서

나조차도 분석이 용이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일 듯.

세상에서 가장 쉽지 않은 것이

자기 주제 파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


본래 태어나길

모호하고 현학적인 인간인 것 같은 느낌인데,

어째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현학성이란 것이

더욱 구체적이고 선명해지고 있는 듯한 이 쎄함은 무엇인지.






세속과 속세가 덧없이 느껴지는 순간이

문득문득 하루에 열두 번이 찾아오는 것이,

정상 범주를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나만 그런 거 아니지?

나만 그런 게 아니길 바랍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별로 신경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으나...


나이 탓인가...

나이에 누명을 씌우기에는

미묘하게 애매한 연세일세.


본래 자폐적 성향이 짙은 사람들이

글 쓰는 길로 자연스레 이끌려가는 것일지도.

하긴 글 쓰는 일 자체가 자폐인 것인데...

자폐가 아닌 상태에서 글이 나올 수 있는가,

그것을 고민해보면 답이 명확해지겠지.


확실한 건,

그 자폐에서 버티려면

자신의 체력을 과대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

체력이 글쟁이의 소질일 줄이야.

자폐, 체력 = 글쟁이 기본 옵션






대화를 할 때는 주로 듣는 편이고

관심이 딱히 없어 그냥 흘려듣는 편이고

그럼에도 분석하면서 듣는 편이고

그런데도 관심은 없고.

본래 사고 패턴이 그러한 인간인지라

그러한 줄로 알고 살고 있고.


대화에서 내 주요 주제는

뭇사람들이 관심을 갖기에는 지나치게 독특하고

말을 한다고 해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귀찮아서 스킵을 하면 더욱 알아듣지 못하고

관심을 갖는다고 해도

이쪽에서 한참 부연을 달아야 이해가 가능해지니,


수다는 블로그에서나 풍요롭구나.





어느 집단에서

내 개그 코드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나는 그들이 외계인처럼 보였다.

진짜 웃기다고 웃는 모습이 신기했다.

아유뿌롬 안드로메다? 묻고 싶어지더라는.


그들과 나의 사고체계의 바탕에

어쩌면 꽤 넓은 면적의 접면이 존재할지도.


이것이 왜 중요하느냐...


그들은 내가 스킵을 해도 알아들었다.

문장을 스킵,

즉 중간 과정의 사유를 스킵해도

그들은 무리 없이 스스로 공란을 메꿀 수 있더라는 것.


부연에 주석까지 끌어다 애를 써도 못 알아듣는 이들을

인생의 친구인 양 곁에 두고 살며 지쳐가던 와중에,

신세계를 경험하고는 더욱 입을 다물어버렸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그리고 일상의 말이란 것이 오고 가는 것 같으나,

실은 다른 레이어에서는 정적만이 존재하는

덧없는 공존의 상태.


나와 전혀 다른 인간은,

다른 의미로 나를 아프게 할 수 있구나.

그런 이들을 굳이 곁에 두고

지속적으로 나를 학대할 필요가 있나.


깊은 뿌리에서부터 스멀스멀 흘러나오던

거부감과 불쾌감과 경멸스러움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할까.

내 생명력이 거부하는 관계.


실은,

네가 정말 싫어!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나와 닮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들이

너와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도

그것에 속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편안한 관계.

바리케이드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듯

어느새 나를 무장해제해버리고

내면의 민낯이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관계.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웃고 있는 관계.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에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

반짝반짝 빛이 나는 순간.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고

내 마음이 소중히 기억하고 있는 순간.

힘이 들고 지칠 때 남 몰래 살며시 꺼내 보면

내가 다시 웃게 되는 순간.


그러한 순간을 선물해줄 수 있는 사람.

나와 닮은 사람.

내 생명력이 알아보는 사람.



네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면

나는 네게서,

내게 필요한 무언가를 보았던 것이리라.


내게 부족한 무엇.

그 조각을 갖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진실로 행복한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


행복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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