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렬 나이로 31라고 해도 이제 적지 않다
브런치로 돌아왔다. 왜 돌아왔냐면, 어 복잡하다. 가장 큰 이유는 교수님이 되었다. 그 사이에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약력 상에 변화가 크다... 적으려면... 어... A4용지 한장이 넘어간다. 그래서 생략하고 근황만 공유해보겠다.
일단 한예종은 졸업을 했고, 브런치에서 간절히 염원하던 계약은... 어... 정확히 이거 쓰고 그 다음해에 했다... 사람이 참 신기한게... 이 당시엔 죽을 것처럼 눈 앞에서 간당간당하던 계약이 정말 다른 사람 눈에는 투명해보였나 보더라.
이때쯤 그런 말을 들었다.
여기에는 마음이 비어서 여행을 떠났다고 적혀 있지만. 이 당시 여행직전 투자 유치를 어느정도 마무리 짓는 상태였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브런치에도 몇번 적었지만, 난 영화과 출신이 아닌 석사 영화 전공자였으므로 영화인 인프라가 적었고 당시 인프라론 도저히 영화를 촬영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 무리하지 말고, 정감독. 상황을 명확하게 봐. 내가 보기엔 시나리오 보니까 얼마 안남은거 같은데... 영화 감독에게 첫 작품은 너무 중요하잖아요. 나는 정혜원이라는 감독을 이렇게 어설프게 잃고 싶지 않아”라는 말에 최종 낙담하고 엉엉 울며 떠난 여행이었다.
역시 안되는 구나...
좌절 한 달 정도? 쉴 여력이 없었다. 그 다음 공모전이 다가와서 진짜 애증의 시나리오(추후에 에피소드로 알려주겠다)를 냈고, 붙었다. 어라? 그리고 피칭날 19개 회사의 비즈니스 미팅 제안을 받았다. 내 두번째 기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19개 회사의 포트폴리오, 연혁, 회사 소개, 투자 분야, 감독 혹은 제작자의 필모를 책으로 만들었다. 나는 진짜... 좀 뭐 하나 빠지면 답이 없다. 그리고 미팅 당일 그 회사의 포폴 자료와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시나리오(당시는 장편 5개였다) 제안서를 제본해갔다.
결과는...
계약이었다.
뭐 이런 작가가 있냐는 말도 좀 듣고... 하하핳. 지금 그래서 드라마 작업 중이다. 우리 회사는 참 좋은 회사다. 언젠가 이 에피소드도 풀 수 있다면 좋겠지만. 미팅때부터 아, 정 작가님 이런 필모를 만들고 싶구나? 하며 나의 장점과 한계를 정확히 짚어주셨고, 지금도 대학원생이라 생각하시고 과제라도 좀... 내주세요. 정말 드라마를 모르겠습니다... 하는 내 찌질함을 좋게 바라봐주시며 아주 구체적인 과제를 내주신다.
그래서 결말은 2년째 스승의 날 손편지를 써가도 행복한 회사에서 따뜻한 연말을 보내며 즐겁게 작업을 했다. 아, 그리고 박사 과정을 진학했는데 칼 졸업을 하게 되어 올해 수료, 내년 2월 졸업을 하게 되겠고.
작년엔 연구소와 출판사 허가를 받았다. 그러니까 내 이름으로 된 책이 이제 2권. DBpia에 검색하면 나오는 KCI 논문지가 2개 생겼다. 책은 알라딘, 교보, 예스 24에 파는데 대중문화 주간 best가 되었다
그래서 정말 교수님이 되었다. 하핳.
맥락이 좀 자랑 같았는데, 오늘 브런치는 자랑이 맞다. 왜냐하면 2023년을 버틴 나에게 상을 좀 주고 싶었다. 2018년도부터 영화 감독으로 참 많은 관객을 만났다. 지금은 브런치에서 숨김 처리를 해두긴 했지만 우리 배우한테는 정말 그런 질문하지 말라고 적어둔 것처럼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다.
20대 초반에 삶이 불안할때 사주를 보러간 적이 있는데, 그때는 점쟁이 아주머니가 그랬더랬다. “넌 사람들 앞에서 뭘 하긴 하지만 배우를 할만큼 도화가 많지 않아... 그렇지만 홍염, 화개 때문에 사람들 눈에서 벗어날 틈이 없겠구나. 사랑만큼 구설이 많이 따르니, 배우를 하면 30후반에 빛을 보고 작가를 하면 20대 중반, 감독은 20대 후반에 빛을 본단다. 그런데 잘 생각해야겠다. 명이 길지 않네” 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다. 20대 창창한 청춘이 자기 언제 성공하냐고 물어보는데 뭐 하든지 빨리 하는거 하는게 안 낫겠냐고. 오래는 못 사는데. 이런 대답을 들으니 열 받아서 그 뒤로 사주는 안 본다. 아 물론 난 타로 맹신자다. 게다가 나쁜 꿈 꾸면 1000원으로 복권 산다. 어차피 꽝일건데 액뗌인거지.
그 당시에도 어이는 없었는지 “저 왜 빨리 죽어요?” 물어본 기억이 나는데. 그때 대답이 대략 이랬던것 같다. “병도, 사고도 아니고. 너 조심해. 네가 너를 피폐하게 하겠구나” 당시 나는 철이 없어서, “술이에요?” 했는데, 그건 또 아니라고 했다.
아 그럼 뭐냐고.
여기까지 쓰고 나니 좀 걱정이다. 사실 오늘 첫 제자 중 한명이 이 브런치를 재밌게 봤대서 오랜만에 들어왔다가 이때의 나를 쭉 훑어봤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고민해봤다. 이젠 그때 ‘네가 너를 피폐하게 하는구나’의 말이 나는 무슨 의미인지 아는데.
나는 사랑과 미움이 극명한 사람이다.
사랑하는 것에는 더 없는 노력과 관심과 애정을. 미워하는 것에는 폭력에 가까운 무관심으로 응대한다. 타인에게 관대한 대신 애정을 주는 경우가 드물고, 나의 삶이 해쳐지지 않길 바라는 만큼이나 타인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다만 2020년부터 2023년의 나는.
특히 2023년에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설명할 수 없지만, 얼굴이 알려진 사람임을 처음으로 후회한 적이 있다. 보여지는 삶이 쉽지 않다는 것과, 관심의 댓가로 받는 폭력치고는 과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케이대를 찍고 나서, ‘혜원’이가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의 대명사가 된 이후 18년도부터 벌어진 일들을 한줄씩만 써도 거의 사회 실험 보고서 쓸 수 있을 정도의 일이 많았다. 이 사회에서 피해자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얼마나 지독하고 수치스럽고 짜증나는 경험인지.
결국 2023년 당시는 병원 치료를 받아야 일상 생활이 가능할 정도였고, 어린 나이는 아니었지만 제법 많이 놀랐었는지 PTSD 진단을 받아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때 드라마를 집필하고 있었는데. 드라마 내용마저 어두우니 살고 싶어서 머리 굴러가는 날에는 드라마를, 공황이 오면 논문을, 감성이 메마르면 시를. 그러다가 살기 싫으면 심리학, 철학책을 냅다 읽었다. 그리고 물론 당시에는 ‘대단한 결과야 나와라! 교수든 감독이든, 세상의 부귀와 영화는 모두 누리고 가겠다!’ 이런 마음이었다기 보다도.
뭐든 남아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서 같은 거지. 정신 차려보면 병원인데 다른 건 못하게 하니까 직업이에요! 하고 쓸 수 있는 안전한 글의 세계로 도피했다. 한 일 년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예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책에 내가 살아온 소회와, 예술인으로 살아 좋았던 것은 기꺼이 나누고 싶어 이 책을 만들었고, 이제 나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미움이 없으니 그 책을 사서까지 내게 미운 마음을 전하고 싶거든. 그 지옥에서 빠져나오길 바란다는 말을 적었다.
나는 이제 거기에 없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를 나무로 치면, 너무 많은 가지를 키우고 있었던 셈이다. 몸은 하난데 사랑하는 모든 가지에는 모든 꽃을 피우려 이 가지 저 가지 접을 붙이고 물을 주고 있었던 것이니까. 이제 그 가지들을 쳐내야 한 시점이 왔고, 내가 더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정리한 것이 작년이었다.
감독으로서는 내 스텝과 배우의 안위를, 교육자로서는 대안을 찾겠다고 적은 이 한 줄의 다짐 이후 많은 것들이 정리 되었다.
뭐 그렇게 살아가는 중이다.
이 고백을 하는 이유는. 인간성에 대한 나의 결론이 이것이기 떄문이다. 우리는 사는 동안 발전하고자 하지만, 발전하는 것은 때로 아프고 지난하며 포기하고 싶을 만큼 원통할때도 있다. 그게 나로 인해 벌어진 일이든, 타인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든. 고난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그 2023년에 내가 한 가장 큰 선택은 눈에 보이는 마감을 빽빽히 채우는 것이었는데. 저 마감까지만 해야지. 그 산 하나 넘으면 아, 저 마감까지만. 또 그 산 하나 넘으면 저 마감까지만. 하다보니 그 전달에 넣었던 논문이 다음달에 내 이름을 달고. 그 달에 넣었던 책이 또 내 이름을 달고. 내가 쓴 시간과 감정과 논거와 인간성에 대한 빼곡한 질문들이 기록으로 돌아오고.
그리고 그 기록으로 인해 누군가는 행복해하고, 그 기록을 이어받아 세상을 바꿔보려고 힘을 모으고. 그게 참 큰 위안이 되었다. 내가 속해있는 세계를 내가 바꿀 수 있는 힘이 있구나. 그럼 사는 동안 나는 적극적으로 바꿔봐야겠다.
참 다행이네.
이 투쟁을 누군가는 사랑하고 누군가는 구설이라는 이름으로 잊지 않아서. 그리고 그 기록에 내가 남아서. 여정이 짧다고 해도 참 가치있어서.
그런 마음으로 연말을 보내고 첫 제자들을 만나 내가 학생때는 뭘 배우고 싶었나. 어떤 질문이 필요했고 세상에 나가서는 무엇이 두려웠고, 어떤 보호를 받고 싶었나를 최선을 다해 나눠보았다.
참 어여쁘게도. 수업 마칠때마다 손편지를 써주기도. 스승의 날이라며 메일을 보내기도. 당 떨어진다니까 쿠키를 사오기도. 사랑스러운 순간이 많았다.
그러니까 2024년이 마치 덤 같이 느껴졌다.
아, 나한테 주는 서비스. 물론 이거 쓰는 시점에도 두군데 정년 교수 임용 떨어지고 쓰는 중이고, 졸업한다고 A4 70매 졸업 보고서 쓸 생각은 아득하며. 같은 주에 회사 마감과, 장학생 논문 마감. 그리고 욕심껏 신청해놓은 자격증 시험들이 나를 삶으로 끌어당기지만.
오랜만에 돌아와서 꼭 하나 남겨놓고 싶은 것은.
잘했다는 것이다. 나도 여러분도. 퇴근도 없고, 출근도 없고 정해진 근무지도 고용 계약 조차 다채로운 이 세계에서 우리 다 너무 잘 빼곡한 기록을 남기며 발전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제야 나는 저 말이 한편으로 기쁘기도 한데, 나라는 인간이 배우로서든 감독으로서든, 교육자로서든. 누군가에 한 만큼 사랑받고 또 잘못한 것은 채근받을 수 있다는 애정의 토대임을 안다는 점이다.
아무도 모르고 사라지는 노력이 20대에는 있을까봐두려웠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는 해피엔딩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세상에는 선이 드물어서, 악이 이기기도 하고. 때로 나조차 선이라고 당차게 말할 수 없을때가 많다. 그러나 기록한 나는 남고, 그로 인해 조금 나아져보려는 나, 그때의 책임져보려는 나, 그리고 그 기록으로 인해 읽고 누군가 질문을 이어주는 너. 나와 너로 이어진 세상은 발전한다.
나는 그것이 해피엔딩이라고 믿는다.
질문이 이어진다는 것. 사람마다의 숙제와 결핍은 다르지만, 우리의 기록은 서로를 읽고 이해해보려는 애정에 기인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벌써 내 2024년의 상반기는 만족스러웠다.
하반기에는 <SF시대의 예술가>라는 총서를 내볼 생각이다. 뉴미디어 전공자와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 교육, 고등 교육과 대학 교육의 차별성, VR/AR 기술 시대의 예술과, Chat GPT시대이후 예술 산업의 향방까지. 물론 졸업과 입봉 준비로 바쁘겠지만 피폐하지 않게 삶의 질문을 이어가는 중이다.
여러분의 화두는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
그리고 구독자 여러분의 3년은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부디 평안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