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자 치니까 브런치가 역시 재밌다.
이십대 중반에 노르웨이에서 1년 정도 살았더랬다. 연극학 공부한다는 탈을 쓰고 제일 많이 공부한 것은 자유롭게 사는 것이었다. 인생 처음으로 F도 맞아 보고. 우리 세대에는 그걸 총 찬다고 표현했는데, 요즘도 그러나? 교환학생들끼리 방학때 방을 바꿔서 살아도 보고.
나는 프랑스 아비뇽 연극제를 가보고 싶어서, 파리 한 중고 서점에서 보들레르 <악의 꽃>을 사다가 그 시집 표현을 달달 외우고. 실제로 난 프랑스어를 장주네 희곡이랑 시집으로 배워서, “여기 센트럴 역까지는 어떻게 가요?”는 할 줄 모르고, 랭보의 “노동하는 손을 갖지 않으리라” 이런 말은 할 줄 안다. 독일어는 더 심각하다. 영화가 발달한 나라들은 주로 세계 2차 대전의 프로파간다가 필요했던 국가라, 이탈리아의 백색전화 필름. 독일의 표현주의, 프랑스의 레오르네상스, 러시아의 몽타주 등이 있고, 그래서 독일어는 그런 말을 할 줄 안다.
밖에서 하면 돌 맞는 연설들.
서른 두 살인 나는 그때의 기억을 파먹으며 살기도 하지만, 그떄 내가 정의한 자유에 걸맞는 하루를 야금야금 잘 만들어 누린다. 삶의 3대요소는 본디 의식주지만, 삶을 행복하게 하는데에는 자유, 노동, 관계 정도가 필요한 것 같다 생각하며.
가령, 한달 생활비는 내 품위와 명예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저 생계비를 대충 계산해두고 그 금액 전까지는 노동함에 자존심을 세우지 않는다. 그냥 한다. 최저 생계비를 넘었다면 그 달은 품위를 잃지 않는 한에서 자존심을 부려본다. 하기 싫은 일은 하기 싫다고 안하고, 하고 싶은 일은 조금 무리해서라도 하고.
그럼 노동과 자유가 해결된다. 그 과정 중에 보통은 의지하지 않아도 관계가 채워질 때가 많은데, 그건 내가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일을 하기도 해서 그렇다.
오늘은 잠옷 원피스에 위에 셔츠 하나를 걸쳐 입고 커피를 내려 양재천에 나와 누웠다. 내 돗자리는 바둑판 무늬의 아주 귀여운 노랑색이다. 오늘 생계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은 저서를 정리하고 예산서를 쓰는 일이다.
재미로 벌인 일이 제법 커져버려서 제대로 계획서를 세워야 했는데 내 마음은 이걸 시작할때의 기대보다는 피곤과 게으름이 가까워져서 짐을 챙겨서 나왔다. 나와서 하면 일 같다기보단 유희같아서 견딜만한 일이 된다. 평일에 누워서 이렇게 일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가!
물론 안하는 것도 좋지만,
랭보가 틀렸다. 내가 노동할 나이에 노동 안하는 손을 가져보니. 그건 정말 엄청난 불행이었다. 이십대 내내 내 돈 벌어 쓰다가 서른 하나에 커피 하나 사 먹는 것까지 엄마 핸드폰으로 문자가는게 노동하지 않는 손의 실체라는 것을 랭보가 알았으면... 보들레르처럼 오래 살 수 있었을텐데.
후배 작가들이 종종 그런 질문을 할때가 있다. “다작의 원동력이 뭐에요?” 지금의 나는 장편 시나리오가 9개, 강의와 박사와 논문과 드라마 작업으로 비는 시간이 잘 없는데, 정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모차르트의 일화를 말하겠다.
천재도, 옷 사고 밥 사려면 악보 팔아야했다고. 내가 생각하는 품위가 비쌀 수록 내 작품도 비싼 값에 팔기 위해서 많이 열심히 쓰는 거라고. 예술인이라고 떠올리면 다들 고흐를 떠올리는데... 고흐조차도 아버지가 그림 무역상으로 부잣집 아드님이라고. 우리는 노동하는 손에 대한 열의를 가져야 한다고.
이거 쓰는 동안 새똥이 떨어졌으니까 이건 개똥 철학이 아니라, 새똥철학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