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기 뿐(부제: 게으르게 삽시다)
2024년이 두 달 남았다. 부산 영화제에 다녀왔다. 첫 학술대회였고, 감독일때와는 사뭇 달랐다. 오늘은 푸념을 좀 해보고 싶다. 가을이 찾아와서 이불을 바꿨다. 여름 이불은 예쁘게 빨아 넣어놓는 대신에 버렸다. 노랑색 천이 빛 바랜 느낌이 보기 싫었다.
연락처들을 정리했다. 귀한 인연들을 위해 명함첩을 새로 샀다. 수첩을 벌써 4개 버렸다.
1년 만에 소득이 돌아왔다. 아니, 전보다 조금 더 여유가 생겼다. 브런치를 잘 보고 있다는 사람들이 생겨서 마음을 털어 놓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부산 영화제에서는 팬이라며 사진을 같이 찍은 영화인들이 많이 생겼다. 몇몇은 내 워크샵의 배우들이 있었다. 내 이름을 단 <프로필박스>에는 벌써 협력사가 많이 생겼다. 연구소로도, 각종 엔터 회사들과도. 미팅이 많아 앉아있을 시간이 채 30분도 되지 않았다. 아쉽게도 감독의 이름을 달지 않았음에도. 대표님, 교수님 호칭이 어색하지 않았다. 삼년만에 탈색했던 머리카락을 완전히 잘랐다. 중단발 보다 조금 긴 머리는 이제 완전한 흑발로 찰랑인다.
내 머리카락 색깔은 눈 색과 다르게 아주 까만 흑색이다. 빛 아래서 보면 파란기가 돈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가 너무 인상이 강해보인다며 늘 와인색으로 머리를 염색해주셨다. 보색인거지. 한번도 염색했다고 혼난적은 없다. 오히려 염색하기 전보다 혼이 덜 났다.
지금은 머리 색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종종 감독님, 근데 눈이 되게 밝은 색이네요. 머리는 까만데. 라는 말을 듣는다. 제법 자주 듣는다. 내 눈동자 색은 내가 볼 일이 없어서 아 그런가? 하고 거울을 보면 그렇게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어제는 한강씨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맨 부커 상을 받았을 때부터, 문창과를 다닌다는 말을 하면 한강씨의 소설 중에 무엇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냐는 말로 인사가 시작했는데.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전체 책을 읽어야만 한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에도, 싫어한다는 말을 하기에도. 사실 아무것도 아주 인상깊게는 읽지 않았다는 말보다 볼품없는 것은 없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다시 혼자 산지 1년이 넘었더라. 엊그제 딱 일년을 맞았다. 약간 수면의 질이 올라갔다. 올해 내 입에서 나온 말 중 가장 멋진 말은 흑백 요리사에 대한 리뷰다. 안성재 쉐프가 너무 멋지다는 의사 선생님께, 저는 백종원 대표님이 진짜 멋졌어요.
왜?
“쓰레기 통에서 잔반을 꺼내 먹는 그 모습 때문에요? ” 하고 물으셨는데 아뇨. 그건 못 봤고 심사평이 기억나요. “사람들이 나를 대중적인 요리, 가벼운 입맛으로 생각하는거 안다. 그런데 저도 좋은 음식 많이 먹어요. 이번 심사에서는 이 요리를 한 사람의 의도를 최대한 생각하려고 합니다.” 하고 실제로 다 맞추시는게 멋졌어요. 단 한 번 기분 나쁜 기색없이. 그 한 마디를 하려고 얼마나 많은 음식을 눈 감고 드셨을까요?
근데 전 그 말 안 서러워요.
가벼운 입맛.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거든요. 잘 배운 한 사람 취향보다 오히려 어렵더라구요. 저는.
의사 선생님이 “이제는 많이 좋아졌네요.”하셔서 집에 보내셨다. 소득이 돌아왔어요. 작년에는 제가 쓸모없는 사람 같았거든요. 분명 사람 구실하고 살았던 것 같은데 딱 일년 쉬니까 이제는 돈 100이나 내가 내 힘으로 벌 수 있을까 두려워요. 뭐가요? 그냥, 전부요. 그래도 나가려구요. 한두달 버티다보면 결론이 나겠죠. 돌아오진 않을거에요. 작년에 딱 그 말했는데, 기억 나요? 그래서 알았다. 이사 나온지 일년되었음을.
여기 브런치를 다시 보니 재치있더라. 제법 당찬 어른인 것 같았다.
부산 영화제는 근 10년만에 다시 갔다. 엄밀히 말하면 24살의 일이니까 8년 정도 흘렀다. 그때는 배우 지망생에 가까웠다. 부산에서 소속사 최종 면접 문자와 한예종 원서 접수를 고민하다가 영화 한 편을 보고 그래도 내 의지로 프로젝트를 열 수 있어야 내가 좀 더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까 한예종을 선택했다.
올해 들은 말 중 가장 상처가 되었던 말은.
“내일은 일이 있어서, 오늘은 울면 안될 것 같아.”라는 말의 대답이었는데. 아무래도 내일 일정을 망칠 것 같아서 너무 마음쓰고 싶지 않다는 대충의 맥락에서, “근데 넌 이런 일로 네 일(직업)을 망칠 사람은 아니야. 내일 멀쩡하게 갈거야.”는 확신이었다.
나를 참 모르네.
실소가 났었다. 사람은 참 복잡하다. 양면적이고, 다채롭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누군가는 내 머리가 칠흑같이 검어서 인상이 강한 것은 알고, 눈 색이 옅어서 앞이 잘 흐린 것은 잘 모르고(잠을 못 자면 바로 티가 난다. 슈렉같이 녹색 눈곱이 껴서 속눈썹이 눈을 실로 기운듯 붙어있다) 또 반대로 누군가는 눈이 커서 겁과 울음이 많은 것은 알고, 머리 색이 차가운 흑색인 것을 모른다(그야 매번 염색하니까).
힘든 것은 작년과 재작년의 일인데, 올해 열 경기가 끝나간다. 지독했던 여름이 가는데,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은 나는 거울 안에 부하게 보이는 것이 싫어서 먹는 음식의 칼로리를 다 적는다. 간 수치 올라서 살 찐 것은 잘 까먹는다.
그 간수치를 이만큼이나 올려놓은게, 내가 지독히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은 매번 까먹는다. 머리가 좀 둔해져서 일정을 잊을까봐 월 캘린더와 데이 노트를 쓴다. 아침에 일어나면 해야 할 일을 우선 순위대로 숫자까지 적어서 전부 적는다. 그렇게 쓴 노트패드가 이번 달로 4개를 버린 것인데 일기는 적은 바가 없다.
그때 그렇게 힘들었고, 좋았고 슬펐고, 벅찼고 사랑했고. 기억하는게 개인적으로는 좀 무의미하게 여겨진다. 그 안에서 할 수 있는거 다 했는데 뭐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이다. 에지간히 내가 고민해서 이리 저리 헤매지 않았겠나. 나는 나를 아는데 안해서 후회한 것은 없을 것이다. 했는데 조금 병신같아서 후회하는 건 뭐. 어쩔 수 없다. 그때의 내가 병신이었음을 알게 된 것만 해도 오늘은 조금 덜 병신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가장 큰 단서니까. 되게 T같은데.
사실 나는 지독하게 감정적인 사람이라, 감정을 적어놓는 법을 조금 까먹었던 것이 틀림없다. 노트 패드에는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과, 하지 못한 일과. 또 좋았던 레퍼런스, 아쉬운 것은 잔뜩 적혀있는데 삶에 아쉬운 순간은 빼곡하게 잊어버린 것만 같아서 좋았다.
이번 발제에 그런 말을 했다. 2015년 이후, 비선형적 구조(회귀, 환생, 귀환)서사가 미디어에 주축으로 등장한 것에 대해서. 대체 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을 대표하는 것만 같다고.
8년 동안 쓴 시나리오가 참 많더라.
8년이나 되짚을 필요도 사실 없었다. 작년 올해 2년만에 논문이 3개. 학술대회가 2개. 재작년에 나는 논문을 쓰는 방법도, 논문이 어떤 형태인지도 몰랐는데.
우스개소리로 황소자리는 내것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더라. 나는 진짜 심하다. 그렇게 안 보이려 노력한다. 잘 되지 않을 뿐. 가령, 사람은 잘 바뀌지 않지만. 내 기준 사랑한다는 말 한 번을 하려면 나 너를 위해서 별도 달도 따줄 수는 없는데 니가 굳이 별이 좋다고 하면 제일 좋아하고 잘 어울릴거 같은 브랜드의 새 시즌 별 모양 목걸이를 사주기 위해서는 10년이. 당장 별 사탕을 위해서는 10분 정도 소요되는데, 어떻게 얼른 갔다 올까? 아니면 같이 갈래. 근데 별을 따다달라는게 약간 허무맹랑하다는 거는 너도 조금 알긴 알지? 그래도 사랑해서 내가 한번 속는다? 같이 별 사탕 사러 가자. 이게 내 화법인 것 뿐.
이 일은 참 우습게도 ‘한번 아 저는 이런 이유가 있어서’라고 쉬는 구간이 생기면 전의 나의 경력과 이번의 쉬는 이유를 불문하고 다음이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쉬는 일년이 지독하게 힘들었다. 나는 과연 이 1년을 쉬어도 다시 전의 커리어와 인프라와. 나를 사랑하는 관객들과 그들의 기대와 쓸모에 부합하는 인간일 수 있을까.
늘 의심했지만, 의심한 덕에 1년이 지난 지금은 무리는 되었으되 그 전보다 조금은 나은 삶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이 긴 일기를 적어두는 까닭은.
내가 사랑해 마지 않은 것들이 ‘일 하는 나’로 종종 오해받을때가 있다. 한편으로는 기쁘다. 뭘 사랑한다고 하기에 나는 찍어 먹어보는 걸 넘어 먹다 토해야 ‘아, 그거 좀 그때 진짜 맛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좀 질린다.’하는 사람이다.
애인을 집에다 재우지 않는다.
“언니, 혹시 일주일 정도 같이 살아도 아 좋네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결혼해.” 하는 말을 우스개 소리로 듣는다. 이 브런치에는 함께 하는 삶에 대한 로망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일주일 같이 살아도 “아 좋네”는 아직 못 봐서 결혼은 안했다.
그런데 혼자는 이리 저리 합하니 6에서 7년 정도 되더라. 나와 7년을 살았는데 아직도 내가 보는 나와 다른 사람이 보는 내가 다른 것을 찾는다.
내가 나의 집에 나를 온전히 잘 재운 것이 며칠이나 되나 세어봤다.
애틋하다기 보다는 조금 공허했다. 언니오빠들이 “30대 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몰라.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거든. 그러니까 나는 이런 사람이다. 너는 저런 사람이구나. 바로 판단하지 말고 유예해.”라는 말을 왜 했는지 알것도 같았다.
머리색이 까맣다는 것과, 내가 차가운 사람이라는 내 옛 애인들의 오해는 서러울때가 있다. 상처를 주려면 그렇게 많이 사랑해야 상처도 받아가고 또 줄 수 있는 것인데. 내가 상처조차 받지 않았다고 생각할때의 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가도, 그 말을 들은 나는 참 상처받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나를 잘 모르지만. 내가 애틋했던 사람들이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알거라는 착각에 잘 휩싸인다. 상처를 자주 받는다. 성실한 사람들을 사랑한다. 결과보다는 태도를 본다. 10시에 약속이라하면 여덟시에는 그 자리에 나가 있어야 하는 나를 본다. 그리고 왜 아홉시에는 오지 않았어? 하며 상처받던 나와, 몰아세워서 상처받았을 너들도.
가을이 지나서 이불을 바꿨다.
맥락없는 이 일기의 주제는. 덮어놓는 것이다.
손절이라는 말과 애초에 친하지 않았던 내가. 사람들과 멀어지는 날을 받아들이는 순간을 마주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관심을 여전히 쏟으려면, 어떤 것에는 둔해져야 한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더라는 생각이 든다.
돈 값이라는 말을 사랑하는 나. 나를 믿는 것에는 그 이상의 신뢰를 줘야만 한다 믿는 나. 아직도 내가 노력하면 뭐든 결과는 따라올거라고 믿는 철 없는 나. 그 철 없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자꾸 감정은 까먹고 일의 우선순위와 결과는 적는 나. 사랑하는 것에도 미워하는 것에도 너무 최선을 다하는 나. 그 좋아함과 미움조차도 유예하고 싶은 나.
20대에 열심히 돈 번것은 ‘어차피 부동산 안 사서 아직도 월세를 내야 하네’하고 열받은 나. “그럼 이번에 목돈 들어오면 무조건 부동산 지른다. 실거주 오피스텔!!! ”하고 적어둔 나. (적어두길 바란다. 비혼의 첫번째 단계는, 미디어가 적어주는 환상처럼 비혼식이나 “나 비혼이야”하는 선언이 아니라 집 구매다. 결혼을 하면 그래도 둘이 살림을 합쳐야 하니 거주에 대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찾는데 혼지 살면 돈이 안 모이는 이유는 바로 월세탓이다!!!!)
그래도 8년 전 나같은 애송이가 오거든, 애송이여서 얼마나 구르고 아팠는지 말고 이번달 번 소득만 쓱 말해줘야지. 눈을 반짝이면서 세상에는 희망이 가득하다고 믿을거야. 나는 아무래도 그게 좋으니까!
하고 낙담을 유예하는 나. 참 우스운 하루다.
채식주의자를 사랑하시나요? 그렇지만, 저는 모던패밀리를 보면서 잠이 들고요. dogeatdogs의 세상에서 그건 너무 잔인하니까 들리는 대로 doggydog라고 하자고. 그게 더 귀엽지 않냐는 대사를 좋아합니다. 스릴러를 제일 잘 쓰고 아직 사람을 죽여본 적은 없어요.
이건 다 상상이니까. 전 사실 육식을 좋아하는데요. 한강 소설은 재밌게 읽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이런 농담을 사랑해요.
저는 의심을 잘 합니다. 제 영화가 그 정도 값을 받을 만한가부터 삶에 대해서도 많은 것들을 의심하는데요. 의심한 만큼 내 것임을 확신을 아는 방법이 잘 없더라구요.
예를 들면, 이 달의 소득은 그 전의 소득보다 가장 높아요.
전 돈 값하는 예술가가 되는 것이 꿈인데요. 그 뒤에는 낭만이 있음을. 사실 그 쓸모 없는 아이로 남을까봐 겁먹었던 큰 눈의 24살이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아서 이렇게 애쓰고 산다는 것을 같이 알아주시지는 않아도. 아직 의심하는 24살을 보내고 계신다면.
같이 유예해주지 않을래요?
삶에서 좋아하는 것들이 결과라는 말은 서글프니까. 과정이라는 말을 합시다.
좋든 싫든 그것은 나중의 문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