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고 싶은건 너무 어려워. 잘못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주제는 이거다. 1년 만이다. 벌써 25년도의 10월 중순이다. 올 여름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안 가실 것 같던 습기와 해쬐는 오후가 가고 이제 가을과 겨울의 기색이 완연하다. 어제는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충동적인 마음 반, 이렇게라도 안하면 이대로 올해를 넘길 것 같은 위기 의식 반.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내 이야기를 잘 풀어쓰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지난 2-3년 동안의 글은 스스로도 보기 힘들었다. 비참했고 표독스러웠고, 자기복제 같아서 한심했다. 잘 해보고 싶었는데. 왜 “잘” 하는 것은 이다지도 어렵지? 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왜 잘하고 싶은 마음에는 꼭 부수적인 것들이 생겨나는가?
아버지의 생신이다. 아침에는 잠깐 울었다. 잘 해주고 싶다. 잘 지내고 싶다. 내가 뭘 더 이상 망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꼭 그렇게 망칠 것만 같다. 생각이 늘 여기까지 가고 나면 심호흡을 세번하고 뭔갈 해보려고 해도 내 뜻과는 다르게 일이 흘러간다.
“잘” 하려다보니 너무 애를 써버리고 마는 것이다.
마치 나의 시간만이 유한하고. 곧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 마냥 오늘 한번에 캐쉬템 다 충전하고 1년치 써버리는 초딩같은 실수를 꼭 하는데 나는 그러고 나면 꼭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탓이라 생각하게 되고. 우리가 잘 지내려면 이런 것들이 필요할것 같아! 하면서 입바른 소리를 해대는데 그것이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할때. 보고 겁먹은 그 얼굴을 볼 때. 근데 내 의도는 그게 아닐때. 사실 문제는 나일때. 나는 내 예민함에 지치고 만다. ‘아 쟤는 또 왜 저래.’ 내 머릿속에 나는 약간 그럴때 쟤가 된다. 내가 한 치졸한 짓을 “쟤”라는 이름으로 뚝 멀리 유기시켜놓고는 혼자 화를 내고 괴롭히고 뒤흔들기 시작한다.
힘 빼자고 했잖아. 그냥 해보기로 했잖아.
‘뭐 어때 다음이 있는데’. 생각을 넘겨보고 싶지만 사실 잘 안된다. 그래서 어제는 의식적으로 공간을 바꿨다가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지금 내 글에서 냄새가 남. 간절하고 표독하고 지독한 냄새.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기 전까지 뭘 더 하지 마셈. 안된다고 빡쳐하지도 마셈.
너 냄새남. 냄새나는 채로 돌아다니는건 나에게도 창피하고 남에게도 민폐인 일이다.”
물론 냄새가 난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제법 적절한 말인 것도 같다. 지릿한 열망의 냄새. 열등감의 냄새. 간절함의 냄새. 절박함의 냄새. 그 냄새는 참 가시지 않고 사람을 지치게 한다.
내 직업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매체는 다양하다. 영화, 드라마, 웹툰, 논문, 책. 보통은 글로 적혀있다. 글로 짜여진 이 촘촘한 허구의 세계는 남이 보기에 “그럴 듯하고”, “진짜 같은”, “생생한” 감각을 위해 다양한 과정을 거친다.
보통 내가 쓰는 방법은 생각하다
메모해놓고 자는 것이다.
구성을 따라서 쓰는 것은 시간 혹은 마감일자가 명확할때 규칙을 지키기 위한 부차적인 방법이고, 보통은 머릿속에서 그 인물이 그 다음 행동을 할 때까지 그 생각만 하고 뽈뽈 잘 돌아다닌다. 마치 나 대하듯, 인물 이름을 적어놓고 Ex. 호랑이는 왜 떡을 달라고 했을까? 떡달라고 할때 마음이 어떨까? 새끼 배가 고팠나? 근데 초식 동물이 떡 먹으려면 어느정도로 배가 고파야 하지? 이런 생각이 끝날때까지 구성을 붙이지 않는다.
이 방법에는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다.
장점
- rpg 게임하는 것처럼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다.
- 조금 더 생생하다 (물론 내 기준이다)
- 빨리 빨리 잘 써진다.
단점
- 현실이랑 분간이 잘 안된다. (특히 피곤할때)
- 내 인생도 rpg게임처럼 대할때가 있다.
- 굴레가 잘 안 끊긴다.
오늘은 이 ‘굴레가 안 끊긴다’를 의식하고 쓰는 글이다. 남들은 영화, 드라마, 웹툰을 어떨 때 보는가 하면? 1) 밥먹고 2) 똥싸고 3) 섹스할때 제일 많이 틀어놓는다더라. 물론 말을 거칠게 했을 뿐. 실제로는 삶의 긴장을 줄이고 싶을때, 회피 욕구가 발동할때, 내 삶에는 없는 모험을 채우고 싶을때. 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허구의 세계는 아무리 촘촘하다고 해도 실재가 될 수 없다. 내 꿈 속 호랑이는 아무리 털이 부드럽고 표정이 생생하고 떡을 간절해했다고 해도 현실이 내가 아니며, 꿈 속 호랑이가 떡 좀 먹었다고 한들 내 배가 부르지도 않는데 나는 늘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나를 버려놓곤 하는 것이다.
꿈에서 1) 밥먹고 2) 똥싸고 3) 섹스한다고 시원하지 않은 것처럼. 내가 만들어낸 세계들은 (특히 내가 현실이랑 좀 멀리 떨어져있을때 쓴 글들은) 좀 덜 긁는 것처럼 구성은 어떻게 나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글들에서 미운 냄새가 난다. 본체인 내가 비어있다는 냄새다.
이건 기막히게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빨리 알아채는 경향이 있는데, 내 글의 장점이 보통 대사이기 떄문이다. 그 사람이라면 했을법한 말들을 잘 적어놓는 편인데 이제 ‘그 사람’들의 씨앗이 나에게서 다 떨어진 까닭이다. 남들이 어떨때 밥 먹는지 어떨때 똥 싸는지 어떨때 섹스하는지. 그때 마음이 어떤지. 언제 하고 싶은지. 왜 하고 싶은지. 하면 좋은지. 나쁜지. 스스로 관심없이 살아온 티가 나는 글들이었다.
(정확히는 '호랑이 떡 먹는 거 백번 생각해보면 뭐해. 내가 나 언제 배고픈지 모르는데...'의 마음이다)
그런데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은 가득한. (뭐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다)
1. 열망하지 않는데 가질 수 없는 것은 없다.
2. 사람은 누구나 공평한 인과를 얻는다.
3. 내가 오늘 얻은 것은 앞서 간절히 원했던 것들이다(썩 알았든 몰랐든)
이것이 올해 내가 배운 것들인데 내 인과가 오늘 이렇게 된것은 내 열망에 ‘나’도 ‘타인’이 없었기 때문인것 같다는 생각에 당분간 나와 타인을 공부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물론 아직 방법을 잘 모르므로 오늘은 시간을 정해두고 그 시간동안 그 타인이 가장 갖고 싶은거 하고 싶은거 듣고 싶은거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그렇게 해볼 생각이다.
오늘은 아버지가 두시간동안 운동을 갔다오고 사랑해라는 말을 100번 해달라고 했다. 슬펐다. 비루먹은 딸이 된것 같았다. 뭐 그렇지만 샤워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나가면 또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겠지. 지난주에는 오랜 친구와 건전한 유희에 대한 얘기를 했다. 드라이브를 가자고 해서 수동사?에 다녀왔다. 나오는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나가보니 좋았다.
남의 삶을 잘 만들어내는 것보다 잘 지켜보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제야 체감하는 것은 나는 신이 아니고(물론 엄청난 뜻으로 나 뭐 잘한다 이뜻이 아니라 허구의 창조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며, 더불어 산다는 것은 나의 모자람을 다른 사람들이 봐주는 것 만큼 나도 그 사람들의 냄새와 욕구를 맡아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래서. 어디를, 왜, 얼마나 가는지는 갔다와서 후술할 마음이지만 이번 시나리오에 예산을 위해서 ‘노르웨이’를 일본으로 고쳤었는데 사실 일본을 안가봤다. 노르웨이야 뭐 제법 있었고 그리고 그 호수는 한때 내 기숙사 뒷편이었으니까 당시에 느꼈던 느낌들이 생생했는데 일본은 그 기차를 안 타봐서 남의 여행기로 써내려간 것이 내심 아쉬웠었다. 그래서 내 발로 가보려고! 가서 내 배를 좀 직접 채워보려고!
아, 눈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