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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아픈 거 아니거든요

제발 묻지 마세요

"에고, 어쩌다가 이렇게 됐수? 쯧쯧쯧."


"내가 이런 아이 아는데, 괜찮아, 나을 거야."
"저기...... 혹시 아이 그, 그 병이유?"






'왜 그랬을까? 나.'



"엄마, 정말 왜 그랬어?"

"그니까, 나도 몰라." 

"어떻게 우리 셋 모두 네 살만 되면 그런 빠글이 파마를 시켜서 아이를 그 모양으로 만들어 놨대?"

"그때는 너희들 머리숱이 비정상으로 적었잖아. 그래서 파마로 머리를 볶아 놓으면 부피 좀 있어 보일까 해서."


우리 딸은 모두 출생 시 민머리에 가늘고 매가리가 없는 실오라기 몇 올만  붙어있었다.

신생아를 안아 올릴 때면 베고 누웠던 베개에 가늘고 가느다란 연갈색 실오라기, 금쪽같은 머리카락이 붙어있어 머리카락 한가닥이 아쉬운 나는 애가 탔다.


동네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을 만나면 분홍색 옷에 레이스로 꾸며놓거나, 머리에 리본 머리띠를 얹어 놓아야 장난기 어린 얼굴로  "어머~ 너 여자였구나?" 했다. ( 그 미소 무엇?)

매번 분홍 옷에 치마를 차려 입힐 수 없어 그냥 데리고 나가면 "아이고, 잘 생겼네 그 녀석."  "아들이죠?" 했다. ( 아, 네.......) 서너 살까지 그랬다.


몇 번 아니 수없이 이런 일이 있고 보면 구구절절 여자예요 할 기분이 아니라 그냥 네네 할 뿐이었다.

언제 우리 아기 흑단 같이 복실하고 보드라운 머리를 손으로 넘겨 예쁜 핀을 꽂아줄 수 있을까 간절했다.


어느 날 언니가 아기들 머리카락을 밀어주면  새 머리카락이 빳빳한 잔디처럼 탐스럽게 올라올 거라는 복음 같은 정보를 주어서, 바로 미용실로 직행 빡빡 밀어주었다. 

헉, 그나마 있던 배냇머리 길이만큼 올라오는데도 길고 오랜 좌절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둘째, 셋째 아이에게는 그런 험한 일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아이가 네 살만 되면 미용실에 데리고 가서 파마를 해주었다. 시골할머니들이 파마를 하는 이유랄까? 비록 파마머리 사이에 훤하게 비치는 두피까지야 어찌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뭔가 풍성한 볼륨감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화학의 세상은 잔인했다. 아이 머리카락이 힘이 없고 가늘어서 뜨거운 열기에 그슬린 아주 몹쓸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길거리 오가는 한국형 오지랖 인정 많은 할머니 아주머니들은 마치 몹쓸 병에 걸린 아이를 본 듯, 혀까지 차가며 모두 한 마디씩 하게 된 거다.




그런데  그다음 둘째도 막내도 네 살만 되면, 왜, 난 기억상실증에 걸려 또 같은 사단을 아이들에게 저지르고 말았는지.

난 닭머리.

기억력 없는 새 머리.


그러니까 첫째 출산 고통 속에 다시는 둘째 안 낳을 거야 외쳐놓고는 셋까지 낳는 기함을 토했지.


그나저나 그때 파마 사진이 어디에 있긴 할 텐데.


다행히도 똑같이 민머리로 출생한  손녀들에게는 그런 만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에필로그>

현재 아이 엄마가 된 세 딸들의 머리는 묶을 핀이 없을 정도로 풍성합니다. 참 희한한 일이지요. 손녀들도 모두 민머리로 태어나서 지금 숱이 어마합니다. 


' 아기 머리숱이 적다고 노하거나 슬퍼하지 마라.
때가 됨에 보리니, 이 방 저 방 기나긴 머리카락 치우라고 소리 지를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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