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 아니라고요
"여보세요? *팡인데요. 거기 382번지라고 하셨죠? 그 주소를 가면 가게가 나오는데요."
"아, 네, 그 가게 바로 옆 단독주택이에요."
"아~ 그 조립 건물이요? 알았습니다."
"......."
뭐지? 이 의문의 일패의 느낌적 느낌은?
조립?
조립이라.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흐물흐물 액체 괴물 같은 이 거북한 느낌은?
이곳으로 이사 오고 *팡에 물건을 주문했다. 아침 택배 기사님의 전화에 한 방 먹고 어질 하여 머리를 흔들었다.
난 단독이라고 하였고 택배기사님은 단칼에 조립이라고 명했다.
그다음부터 난 절대로 우리 집을 단독주택이라고 하지 않는다.
"여보, 우리 집을 조립이라고 불러?"
"응, 조립이지. 그런데 얼마나 튼튼하고 좋아."
누가 안 튼튼하다고 했나? 역시 먼저 선수치고 합리화하는 고수답다.
우리 부부는 예전부터 세를 놓았던 땅에 딸린 사무실을 주택으로 용도변경하여 살고 있다. 이사 와서 그 땅에는 사과대추나무를 심었다.
마당은 있지만 먼저 세입자가 시멘트 바닥으로 만들어 놓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시멘트 바닥을 뜯어내면 좋으련만, 남편의 신조는 돈 들어가는 일은 벌이지 않는다니까.
그래서 잔디가 없는 '조립 주택'이다.
"어머, 그 유명한 두물머리 근처로 이사 갔어? 전원주택이네. 우리 언제 갈까?"
"어머머, 전원주택? 좋겠다."
"와아, 내 로망이야."
"과수나무? 언제 보러 갈까?"
몇 번을 말해요.
전원주택 아니라고요.
저 푸른 잔디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바비큐 어쩌고 그런 거 없다고요.
사과대추나무에서 열매가 안 나온다고요.
물론 몇 알씩은 건져요.
열매가 벌레 아니면 누렇게 곯아요.
왜 그런지 몰라요.
으흐흑.......
우리는 사실 시골살이나 과수나무를 심을 처지가 아니었다. 애초에.
왜냐면 풀인지 잡초인지 꽃인지 구분도 못하는 사람(남편)이기 때문이다.
꼭 필요하다고 농기계를 사들이고는(비싼 건 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것을 사서) 결국 사람 불러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람(남편)이기 때문이다.
비료 한번 주려다가 온몸에 비료 칠하고 땀만 소낙비 맞듯 흘리고 일주일을 아프다고 드러눕는 사람(남편)이기 때문이다.
잡초 뽑으라고 내보내면 진땀만 흘리고. (왜냐하면 햇볕에 나간다고 하면 그런 중무장이 없다. 선크림에 긴 팔 옷 바람막이, 아니 그 무더운 여름에 왜 때문에 바람막이를 입었니? 선글라스에 모자에, 차림만으로는 어디 중동에 나가는 근로자라고 할까, 대파 뽑고 감자 심으러 나가는 농촌 전문 일꾼 같다. )
자랑스럽게 들어와서 마당 정리한 걸 보라고 하는데, 뭘 뽑았는지 잘린 풀의 흔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벌레를 보면 온갖 호들갑을 다 떨고, 흙이 집안에 들어오면 청소기에 걸레질에 요란을 떠는 사람들(나도 그렇다. 게다가 난 풀독 알레르기까지 심하다. 흑흑 )이기 때문이다.
아무 때나 불쑥 들어와 마당 잡초를 제때에 안 뽑는다는 둥 이건 언제 뭘 해야 한다는 둥 훈수 두는 시골(실은 시골이라고 말하기에는 어중간한 도시적인) 인정 내지는 오지랖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다.
암튼 그런 상황인데 지인들은 우리가 시골에 주택과 과수나무 운운 하니 모두가 푸른 잔디에 유럽풍 전원주택과 파라솔과 과수나무를 상상하는 듯 감탄과 부러움을 보내고, 너 나 할 것 없이 한 번 와야 한다는 것이다.
고마해라. 나도 마이 아프다.
와서 시멘트 팍팍 깨서 잔디 심어줄 거 아니면.
몇 번을 말해요.
우리 집은 전원주택이 아니라고요. 그냥 집이에요. 조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