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차에서 만난

무례한 가족

"마스크 쏼라쏼라...깔깔깔.....마스크......&^%@#$% ....마스크....#$%......"
"쏼라쏼라.....킥킥.....킥킥......."


"킬킬......."



잠에서 깨어나 몸을 뒤척이는데 킬킬 거리며 시시덕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앉은 좌석 통로 건너 좌석에 앉은 이탈리아 가족들이다. 낄낄거리는 소리와 함께 전해지는 파동은 외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대화 속 건강한 웃음소리인지 아닌지는 알게 된다. 신기하다. 곧 나를 조롱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이미 잠은 깼지만 눈은 계속 감은 채 이 상황을 가늠해 보았다.



밀라노에서 피사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Trenitalia 일등석이었다.

몇 번째 기차역인지에서 딸을 동반한 일가족 다섯 명이 들어왔다. 좌석을 찾고 짐을 정리하고 엄마인 듯한 여자가 내 옆을 왔다 갔다 하는데 냄새가 너무 심했다. 이게 무슨 냄새지? 뒤따라 청소년기일 듯한 딸이 내 옆에 서서 자리 확인을 하는데 비슷한 냄새가 진동했다.


아, 한 달에 한번 그때구나. 그래도 그렇지. 너무 심하다.

내색을 하지 않고 모자를 뒤집어쓰고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피곤해서 의자에 기대어 눈을 붙이기 전, 혹시 입 벌리고 잘 까봐 미리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옆 통로 건너 좌석에 일가족 다섯 명이 들어와 앉는 것을 보고 잠이 든 것까지 기억이 났다.


내가 뒤척이자 옆의 가족들이 내가 들으라고 조롱을 시작한 거였다. 그들이 하는 말 중 마스크, 마스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전에 딸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코로나 시기에도 유럽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마스크를 잘 쓰지 않을 뿐 아니라 , 주로 마스크를 잘 쓰는 아시아인들을 놀리고 조롱하는 몰상식한 유럽인들이 간혹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외국어지만 희한하게도 나를 조롱하거나 욕하는 것은 알아듣는 법이다.

마스크를 쓰는 아시안이라고 일가족이 웃고 조롱 중인 듯하다. 주로 엄마인 여자와 아빠의 목소리였다.

초등학생이거나 중학생일 듯한 딸까지 대동한 가족이 한심하면서도 화가 났다.


상황 파악이 되자 눈을 번쩍 떴다. 모자를 벗고 정자세로 앉았다.

나를 마주 보고 앉은 남편을 보니 눈은 감고 있었지만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남편을 깨웠다.

상황을 설명했다.


평상시에도 남편은 그때그때 재빠르게 상황 파악을 잘 못하는 편이다.

만약 밤에 자다가 도둑이 들어서 조용히 남편을 깨우면 왜 잠을 깨우냐고 소리 지르고 난리를 쳐서 도둑에게 맞아 죽을 거라고 할 정도로 남편의 눈치는 억장을 무너뜨리는 수준이다.

차근차근히 이 상황을 설명했다. 약 올라서 가만있지 못하겠다고 하고 이제부터 연극을 하자고 부탁했다.



"여보, 내가 그냥 한국어로 아무 말 잔치할 거니까 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허풍 떨며 크게 웃어줘. 이왕이면 크게 웃어."
"시작한다. 웃어. 쟤네들이 나 마스크를 썼다고 놀리네. 마스크. 마스크가 어때서. 정말 인성이 왜 저 모양이지? 아으, 기분 나빠. 마스크. 마스크. 아이고 별일이네. 웃기는 짬뽕이네."
"하하하, 하하하."



남편의 연기실력은 형편없었다.

그래도 조금 화가 풀렸다.

옆 좌석 가족들이 머쓱해서( 아님, 조용히 당할 줄 알았던 아시안이 기 세게 굴어서 놀라서?) 조용해졌다.


조용하나 싶더니 이번에는 그 가족들이 유튜브인지 영상을 크게 틀어놓고 떠들기 시작했다

공공 예절이 없어도 보통 없는 게 아닌 가족이다.


결국 그들 뒷 좌석의 남성이 조용히 해달라고 다소 위압적인 억양으로 말하자 다시 조용해졌다.

쌤통이다.


다음 역 안내 방송이 나오자 그 가족들이 짐을 챙기기 위해 일어섰다.

그때 난 복수를 결심했다.

과장되게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움켜줬다. 남편에게도 코를 움켜쥐고 고개를 흔들며 얼굴을 찡그리라고 눈짓을 했다.

그렇게 나름 옹색하고 소심한 복수를 했다.


'어디서 마스크 어쩌고 조롱질이야?'



그러고 보니 밀라노에서 피사행 기차에서는 무례한 가족을 만났고, 피사에서 피렌체로 갈 때는 소매치기를 만났다. 피사 전후로 일등석 기차든 로컬이든 상관없이 기차에서 모두 안 좋은 일을 겪은 셈이다.


피사, 너 왜 그런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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