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MS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오노 켄이치의 'TOKYO BOOKS'
TOKYO BOOKS는 다양한 문화 분야의 지식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다양한 잡지와 미디어에 글을 기고하는 문필가로 활동하고 있는 BEAMS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아오노 켄이치 씨가 '도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책을 선정하고 직접 그 거리를 다녀보는 에세이입니다. 조금은 색다른 방법으로 도쿄를 걷는 분위기를 전해드립니다.
글 · 사진 : 아오노 켄이치 (BEAMS Creative Director / BEAMS RECORDS Director)
토큐(東急)백화점 본점에 있는 '마루젠 쥰쿠도 서점(丸善ジュンク堂書店)'은 인문계열 서적이 잘 구비되어 있어서 시부야(渋谷)를 찾을 때에는 들리는 적이 많다. 얼마 전에는 뮌헨의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오스카르 파니차(Oskar Panizza)의 ‘범죄정신병(犯罪精神病) [헤이본샤, 平凡社]’을 입수.
파니차는 내가 존경하는 독일 문학자인 타네무라 스네히로(種村季弘)가 좋아했던 사람으로, 이 책은 타네무라가 생전에 남긴 번역문을 타가 겐타로(多賀健太郎)가 추가, 보충, 교정을 해서 내놓은 것이다. 이 날, ‘범죄정신병’ 외에 또 한 권 구입한 책이 있다. 오카자키 쿄우코(岡崎京子)의 ‘레어리티즈 (レアリティーズ) [헤이본샤, 平凡社]’다.
‘pink’와 ‘리버스 엣지’ 등으로 알려진 만화가 오카자키 쿄우코는 1996년에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현재도 요양 중으로 집필 활동을 쉬고 있지만 이 책은 미완성 원고와 단행본 미수록작(만화뿐만 아니라 일러스트 에세이도 포함)을 모아서 2015년에 출판된 것이다. 같은 해에 세타가야 문학관(世田谷文学館)에서 ‘오카자키 쿄우코 전 / 전장의 걸즈 라이프(戦場のガールズ・ライフ)’로 제목이 붙여진 첫 대규모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어서 이 책은 그에 맞춰서 나왔던 것일거다. 전시회는 다녀왔고, 도록도 가지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이 책은 사지 않았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구입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레어리티즈’는 단행본 미수록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잡지에서 처음 기고된 작품을 리얼타임으로 읽었던 작품도 있었다. 옛 생각에 잠기고, 고개를 끄덕이고, 놀라기도 하면서 읽어가니 순식간에 끝부분에 다다라서 남은 부분은 이 책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모기타자와 파라다이스(下北パラダイス)’ 뿐.
"시모기타자와는 좋은 동네예요." 로 시작되는 이 에세이는 오카자키 쿄우코가 태어나고 자란 (그의 본가는 시모기타자와의 이발소), 당시에도 생활하고 있던 시모기타자와의 장점들을 말하는 텍스트에 의한 스케치다. 집필한 해는 1990년으로 이 즈음의 시모기타자와의 모습이 오카자키 특유의 리듬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시모기타자와라고 하면 최근에는 역과 주변의 재개발도 활발해서 앞선 ‘시모기타자와 파라다이스’에서 보여지는 경치는 크게 변해버렸다. '암시장 거리는 물론 통칭으로 사실은 다른 이름이 있지만 모른다. 키다구치(北口) 역 앞에 있다.'라고 오카자키가 기술하고 있는 곳은 ‘시모기타자와 역 앞 식품 시장(下北澤驛前食品市場)’을 이야기하지만 이 곳은 2017년 가을에 해체. 현재는 ‘시모기타 스퀘어(しもきたスクエア)’라는 광장으로 되어 있어서 매주 주말에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그밖에 글 중에서 언급되어지고 있는 것이라면 카레빵, 된장빵으로 알려진 빵집 ‘안젤리카(アンゼリカ)’는 2017년 7월 말, 50년 역사의 막을 내렸으며, 좁은 공간에 약속을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전철역 미나미구치(南口)는 오다큐센(小田急線)의 지하화와 역사 개축에 따라 미나미구치 자체가 없어져버렸다.
재개발에 의해 사라져버린 것도 많이 있지만 북적이는 동네의 분위기는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원래 역에서 길게 늘어지는 몇몇 상점가와 그 사이를 달리는 좁은 골목에 개성적인 음식점, 구제 옷가게, 중고 레코드 가게, 헌책방, 극장 등이 있으며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거리를 걸으면서 이런 장소들을 들리기 마련이라서 역은 어디까지나 동네의 출입구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공사 때문에 역 주변의 통행은 혼돈스럽게 되어있지만).
한편, 실제로 이 지역을 거닐면 오래된 건물과 주택이 많다는 것을 눈치채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예전부터 이 곳에서 장사를 하거나 생활하는 케이스도 있다면,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시모기타자와는 재미없는 고층 빌딩의 난립과는 인연이 없는 동네. 어딘가 쇼와(昭和) 시대의 난잡스러움을 남기면서도 밤낮 가리지 않고 북적거리는 활기를 잃지 않는 곳 (낮에는 상품 판매 중심, 밤에는 음식과 클럽, 라이브 하우스 등)은, 현재 도쿄에서도 독특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시모기타자와의 거리를 효율성 있게 걷는 것을 잘 못한다. 왜냐하면 동서남북의 개념이 결여되어 있는지 어디를 걷고 있는지 잘 모르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느 킷사텐(喫茶店)에 가려고 생각해서 분명 이 주변이라고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봐도 전혀 눈에 보이지 않거나 한다. 망설임 없이 갈 수 있는 곳은 레코드 가게 몇 곳 정도인데 역 주변 공사로 통행 루트가 바뀌면서 그 또한 이상해졌다. 하지만, 적당히 걸어가고 있으면 찾고 있는 가게가 불쑥 눈 앞에 나타나는 적이 있어서 재미있다. 길을 헤매거나 우연히 정답을 찾거나 하는 등 마치 시모기타자와라는 동네에 농락당하는 기분도 들지만 그건 나에게 있어서는 의외로 재미있는 것이며 그렇다면 한층 더 시모기타자와 지역의 길에 대해 정통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비효율적인 걷는 방법은 그다지 추천할만한 것은 아니다. 만일 당신이 길을 헤매게 되어서 마음이 불안해진다면 사람들에게 물어보거나 구글맵을 펼치자.
TODAY’S TOKYO BOOK | 오카자키 쿄우코(岡崎京子) ‘레어리티즈 (レアリティーズ)’
아오노 켄이치 (青野賢一)
BEAMS 창조연구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BEAMS RECORDS 디렉터, 문필가. 1968년 도쿄 출생. 주식회사 BEAMS에서 세일즈와 홍보 부서를 거쳐, 현재는 주로 개인의 창의적인 창작 분야의 역량을 사외 클라이언트 작업으로 활용하며 ‘BEAMS 창조연구소’에 소속. 집필, 편집, 선곡, 대학교와 전문학교 강사, 타 기업의 PR 기획 입안과 이벤트 기획 운영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1999년에 음악 부문인 ‘BEAMS RECORDS’의 설립 기획에 참여, 이후 디렉터를 맡고 있다. 패션, 음악, 미술, 문학, 영화 등을 다각적으로 논평하는 문필가로 잡지와 웹 미디어, CD 라이너노트, 영화 극장용 팸플릿, 전시회 도록 등에 기고하고 있다. DJ, 선곡가로서는 1987년부터 활동을 시작. 댄스 뮤직에서 현대음악, 전위음악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선곡하는 독자적인 스타일에 정평이 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