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스시, 우동, 돈카츠 등의 음식들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는 '온천'이다.
평소에는 집에 욕조가 있어도 뜨뜻한 물 받는 게 귀찮아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힘든 일이 있어 피곤할 때마다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느긋히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뭉게뭉게 올라오는 연기 아래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온천수에 몸을 천천히 넣는다. 처음부터 푹 온몸을 넣으면 뜨거워서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발, 종아리, 허벅지 순서로 살살 담그며 몸을 물 온도에 적응시킨다. 이후 몸이 적응했다 싶으면 천천히 온몸을 담그기 시작한다. 이내 얼굴을 제외한 몸의 전부를 물에 넣은 순간 오는 물의 안정감은 일상에 지친 나의 피로를 따뜻이 녹여주는 듯하다.
아쉽게도 도쿄에 살던 내게도 하코네, 유후인 등의 유명 온천지는 '가고 싶다' 생각 한줄기로 갈 수 있을만큼 가깝지는 않았다. 다만 그런 내게 적당한 야외온천도 있고 떠들썩한 관광지에서도 벗어난 곳에 있는 '유케무리노사토' 온천은 안락한 안식처였다.
사실 이곳은 내가 일본에 살 적에 발견한 곳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이전에 친구와 도쿄 여행을 갔을 때 인터넷에 얼마 없는 한국어 후기를 보고 찾아간 곳이다. 지금 검색해도 관련 글이 많지 않은 것을 봐서 아직도 한국인들 사이에는 그리 퍼지지 않은 곳 같다. 아마 도쿄 남서쪽 외곽의 가와사키시에 위치한 탓에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직접 가보면 외국인은 거의 없고 대부분 주변에 살고 있는 현지인이 대부분이다. 평일 오후 해가 지평선에 걸친 석양이 지는 시간에는 부활동이 끝난 야구부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오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꽤나 귀중한 장소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단순한 동네 목욕탕이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지하와 1층에 걸쳐 누워서 쉴 수 있는 리클라이너 의자가 쫙 깔린 휴식 공간도 있고, 남탕 기준 실내, 야외를 합쳐 탕이 5개는 너끈히 있는 괜찮은 규모의 온천이다. 그중에는 야외에 몸을 뉘이면 딱 절반까지 온천수가 차있는 얕은 공간이 있는데, 봄가을 선선한 날씨에 여기에 누워 갈대발과 나뭇가지로 덮인 사이 보이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자면 천국이 따로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식. 이곳에는 자체 운영 중인 내부 식당이 있는데, 주말에 가면 번호표를 뽑고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 있는 공간이다. 이곳의 음식은 가끔 침대에 누워있다 생각날만큼 괜찮은 퀄리티가 보장된다. 특히 추천하고 싶은 음식은 2가지, 아니 3가지이다.
우선은 '-3도 기린 생맥주'. 정말 시리도록 차갑게 얼린 잔에 차게 식힌 기린 생맥주를 담아주는 요 녀석은 번호표 뽑아둔 새에 탕에 몸을 담그고 와서 첫 입을 딱 들이키면 머릿골이 울릴 정도로 차가운 맥주가 몸 안을 휘돌며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아마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첫 잔은 반드시 원샷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음은 '마파두부 정식'. 사실 향신료 가득 들어간 음식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중국 음식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내가 여기의 마파두부는 방문할 때마다 먹고 있다. 그렇다고 맹맹한 마파두부를 예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한국인 입맛에는 그리 맵지 않은 매운맛이 살짝 들어오다 산초에서 오는 '마'한 얼얼함이 혀를 탁 치며 지나간다. 거기에 더해지는 감칠맛과 같이 부드러운 연두부가 입 안에서 밥과 같이 씹히면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훌륭한 마파두부이다.
마지막으로 '모래주머니 튀김', 한국에서는 닭똥집 튀김으로 많이 불리는 그것이다. 이건 생맥주와 같이 먹기 위해 갈 때마다 꼭 시키는 안주이다. 정식이 나오기 전에 생맥주를 다 비우고 2번째 잔을 받아들 때 즈음 튀김이 딱 나오는데, 적절히 간이 되어있는 바삭한 튀김옷과 함께 쫄깃한 모래주머니가 같이 씹히는 맛을 보고 있자면 2번째 잔인데도 불구하고 맥주가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이렇게 맥주와 함께 맛있게 식사한 이후 리클라이너 의자가 있는 휴식공간에 누워 1~2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다 다시 온천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나온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자판기에서 팔고 있는 유리에 담긴 커피우유를 딱 마시면 오늘 하루 잘 힐링했다는 좋은 기분을 받는다.
나는 이곳에 방문할 적에 보통 오전~오후 시간을 비워 10시쯤 도착해 5시쯤 나오곤 했다. 만약 가려는데 일정이 애매하다면 최소 오후 시간대를 비우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아무리 시간이 없더라도 최소한 식사와 함께 휴식을 즐기는 코스를 추천하기 때문이다.
도쿄 근교의 하코네도 가봤고, 도내의 다른 큰 목욕탕도 가봤지만 여기서 느낀 안락함을 대체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여기에 들리는 하루 동안은 마치 현지인의 일상에 녹아든 듯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유케무리노사토'. 만약 도쿄 여행을 또 가야 하는데 매번 가던 곳들에 질려 하루쯤은 힐링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곳을 조심스레 추천한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가지는 않길 바란다. 내가 갔을 때 입장 줄을 서면 곤란하지 않은가. 적다 보니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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