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좇아 시작한 일본어 공부. 10대 네 꿈에 불을 붙여라.
20대의 젊음과 열정을 이 곳에 부었고, 하나 둘 씩 내 꿈을 위해 투자한 것들이 열매를 이루기 시작했다고 느낀다.
꽤 오래전부터, 언젠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흔적을 엮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타이밍을 정하기가 쉽지 않아 미루기만 했던 그 작업을, 서른 살을 코 앞에 둔 올해 글로 남기고자 한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독학으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해, 도쿄에 있는 사립대학에서 유학생활을 경험했다.
그리고 대학생활을 마친 후, 졸업과 동시에 외국계 컨설팅 펌에 취직, 경영 & IT 컨설턴트로 4년째 일하고 있다.
우리말을 쓸 기회를 늘이기 위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네이버에서 블로그 작가를 시작했다.
소소한 일본에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서를 느끼기 위한 목적으로 지속했던 블로그였지만, 내 블로그를 찾는 많은 10대, 20대의 젊음과 만나게 된 장소이기도 했다.
해외로 유학 해 취직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반대합니다. 조언을 부탁할 수 있을까요.
일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어요. 컨설턴트가 되고 싶은데 어려울까요.
일본 대학으로 진학하고 싶은데, 일본어가 아직 많이 부족해요.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까요.
4년 남짓한 시간, 그들의 간절한 바람에서 비롯된 고민을 들으면서, 나 또한 10대 때, 대학시절, 그들과 똑같은 일들을 고민했음을 떠올렸다.
심플하지만, 이것이 내가 10대에 간절히 키워왔던 꿈이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나는 그 당시 아시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일본을 택했고,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가정형편상 유학을 쉽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부모님은 내 꿈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응원해주셨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을 위한 교육을 엄격히 실행하던 곳이었다.
매 년 졸업생이 진학한 대학을 현수막에 걸어 홍보하고, 학기말고사가 끝나면 교무실 앞에 대문짝만 하게 전교생의 등수가 적힌 종이를 붙이는, 그런 학교였다.
대한민국의 어느 고등학생과 다를 것 없이,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치열한 입시전쟁이 시작되었다.
수험공부는 학년을 더할수록 가속화되었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나는 담임선생님과 부딪혔다.
너 또 일본어 공부해? 수능까지 얼마 남았다고, 지금 그럴 시간이 있어?
아직 2학년이라고 그러고 앉았다가는, 나중에 후회한다.
선생님은 내가 일본어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일본어 공부가 공부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즐거웠고, 수업이 끝나고 난 휴식시간에 JLPT공부를 하곤 했다.
내게 있어서 일본어 공부는 취미생활이었다.
학교 성적에는 영향이 없도록 최선을 다 했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여전히 내 행동을 바꾸고 싶어 하셨다.
우리 학교는 3학년이 되기 전에, 어느 대학을 목표로 할 것인지, 어떤 학과를 가고 싶은지에 대해 담임선생님과 대화하는 진로상담의 시간이 있었다.
그래 넌 졸업하면 어떤 학과로 진학할 생각이야? 대학 졸업 후에 뭘 하고 싶어?
전, 일본에서 광고, 마케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고요. 일본에서 취직하려고요.
넌 또 일본 타령이구나.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대학 진학이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지?
알아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일본 대학으로 진학하기 어렵다는 것도 당연히 알지요.
수능 공부는 수능 공부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 꿈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당최 왜 그렇게 어려운 길을 택하려고 하는 것이야?
네가 아직 어려서 그런데, 사회생활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치 않아.
여자는 교대에 가서 선생님이 되는 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나는 본다.
우리 학교는 여고였다. 지금도 이해가 안 되지만, 학생들에게 그렇게 교대에 가라고 조언했었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루고 싶은 거예요. 제가 아니면 누가 그 일을 합니까?
넌, 어쩜 너희 아버지랑 똑같구나.
그러니까 너희 아버지는 아직도 SF영화같이 로봇을 만든다는 허황된 꿈을 좇고 있잖아.
그 때문에 너희 가족이 고생하는 걸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우리 아버지는 로봇 관련 업계에서 일하신다.
지금 우리 사회는 로봇 업계가 주목을 받지만, 그 당시에는 아직 시장이 크지 않았고,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벤처기업이었다.
수입이 거의 없었던 시절도 있었고, 학교의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난 자랑인 것이, 아버지의 회사가 미국의 비즈니스 잡지 포춘에 소개된 적이 있는 업계에 주목받는 회사였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그 날의 일을 떠올리면, 분노에 떨었던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넌 너희 아버지랑 똑같구나.
너희 아버지를 봐라, 아직도 허황된 꿈을 좇아서 가족들을 고생시키잖아.
이 날, 나는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도 내 꿈을 이뤄야만 한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내 꿈을 이룬 후에, 나의 모교, 나의 모국, 지금도 대학 수험과, 막막한 현실에 부딪혀 고민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롤모델이 되어야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꿈을 비난했던 선생님에게 감사하다.
당신 덕분에 이를 악 물고 노력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내가 이뤄온 과정을 공유하는 것 또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실천하는 방법이 된다고 굳게 믿는다.
나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정말 평범했고, 지금도 평범하다.
다만,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노력했고, 벽에 부딪혔을 때마다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는지 생각했다.
진학, 진로,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한다는 것은, 가슴 한편에 간절히 이루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든 고민이 있고, 그 고민과 맞서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장한다.
앞으로 브런치에 기록해 갈,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의 불이 되기를 바라면서.
소통위주의 블로그.
결혼을 앞두고 있기에 요즘은 한일 커플 포스팅이 많습니다.
리얼타임으로 일상 사진을 제일 먼저 올리는 인스타그램.
한국어/일본어로 포스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