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쿄효니 Jan 23. 2017

#1-5. 뉴욕 사람들이 시크한 이유

[여자혼자미국횡단여행]뉴욕에서 만난 진짜 뉴요커 두 사람.

일본에서 살다 보면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왜, 일본에 오셨어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일본인들은 잘 느끼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10대 때 내게 있어서 일본 도쿄는 아시아의 중심이었다. 해외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는 먼저 아시아의 중심인 도쿄에 가야겠다고 생각해 일본으로 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세계의 중심은?


대학생활을 보내면서, 세계의 중심은 미국 뉴욕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세계의 경제, 정치를 쥐어 잡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의 중심지 뉴욕. 안타깝게도 20대 후반이 되기까지 결국 나는 한 번도 미국이라는 나라에 발을 디뎌본 적이 없었지만, 가슴속 어딘가에서 그러한 뉴욕에 대한 동경이 존재했다.


'만약, 내가 또 다른 도시로 가게 된다면, 그곳은 세계의 중심 뉴욕이겠지'


그렇게 막연히 꿈꿔왔던 도시에 드디어 오게 되었다. 나는 무수히 많은 여행자 중 하나이지만, 이 도시를 걷고 숨 쉬고 지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이곳에 있는 내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이 날 나는, 뉴욕에서 사진 공부를 한 후 포토그래퍼로 일하고 계시는 작가님과 만나게 되었다.




- 뉴욕에서 사진을 찍다


어렵게 온 뉴욕, 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내 사진을 찍기가 어렵다는 것도 이유였다. 출국 전, 이런 기회는 자주 있는 게 아니니까, 멋진 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뉴욕에서 활동하시는 여러 사진작가님들을 알아보았다. 생각보다 뉴욕에는 사진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꽤 많았다. 그리고 고심한 끝에 뉴욕 스냅을 부탁하기로 결심한 곳은, 엣지스냅(edge snap). 뉴욕에서 사진 공부를 하시고 활동하시는 1인 작가님. 여백의 미를 살린 시크한 느낌의 사진이 참 마음에 들었다.



뉴욕에서의 세 번째 날, 출국 전날까지만 해도 날씨가 안 좋을 예보였는데, 햇볕이 쨍쨍 사진 찍기 정말 좋은 날씨였다. 1월의 뉴욕은 엄청 춥다길래 일본에서 홋카이로(ホッカイロ, 손난로)를 잔뜩 사 왔건만, 이 날부터 뉴욕은 코트가 필요 없을 정도로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엣지스냅(edge snap)의 경우 2장소 코스와 3장소 코스가 있는데, 시간과 비용을 고려해 2장소 코스를 선택했다. 뉴욕에는 스냅을 찍기 좋은 명소가 몇 군데 있다. 타임스스퀘어, 센트럴 파크, 첼시, 브루클린 브리지 주변, 그리고 소호. 장소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가 있기에 고민했다. 봄이나 가을이면 센트럴 파크도 괜찮을 것 같았지만, 좀 뉴욕스러운 느낌이 덜 날 것 같았다. 1월에는 앙상한 나뭇가지가 있을 뿐이기에 처음부터 후보에서 제외했다. 타임스스퀘어는 가장 뉴욕스러운 장소 중 하나이지만, 밤이 되면 사람이 정말 많은 걸로 유명한 장소이기에 사람들 사이에서 스냅사진을 찍고 싶지는 않았다. 작가님의 특징이신 여백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서, 최종적으로 고른 장소는 브루클린 브리지 주변과 소호. 작가님이 인스타그램에 올리신 사진을 꼼꼼히 체크해서 택한 코스였다.



'사진 찍혀보신 적 있으세요?'


작가님이 스냅 촬영을 시작하시면서 반드시 물으시는 질문이라고 하셨다. 남편과 함께 서울에 일시 귀국했을 때 데이트 스냅을 찍은 적은 있는데, 혼자 찍는 건 처음. 자연스럽게 하려니까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모델도 아닌 일반인의 눈 앞에 카메라가 놓였을 때 누구든 긴장하겠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촬영은 점차 즐거워졌다. 작업하시는 스냅의 느낌과 같이 작가님도 말수가 적고 시크하신 분이셨지만, 내 긴장을 풀어 주시려고 열심히 이것저것 대화를 시도해 주셨다.





촬영은 무한도전의 촬영지로 유명하다는 덤보에서 시작해, 맨해튼을 등지고 멋진 풍경을 담을 수 있는 공원과 브루클린 브리지, 소호로 이어졌다.


고등학교 때부터 뉴욕에서 사셨다는 작가님은 이 도시에 대해서 정말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았다. 어느 장소가 멋진 스냅을 담아낼 수 있는지, 어느 각도로 플레임 안에 풍경을 담으면 좋을지, 정말 능숙하셨다. 이 날은 정말 사진 걱정할 필요 없이 그냥 편안하게 뉴욕의 거리를 즐겼다.





마지막 장소인 소호로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 한 몇몇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뉴욕에 와보니 어때요?'라는 질문에, 아직 이틀 정도밖에 머무르지 않았지만, '여기 사람들은 조금 차가운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어제저녁에 갔던 맥도널드 점원은, 영어를 잘 못하는 관광객이 정말 신경질 난다는 표정으로 대했었다. 고객을 왕으로 대접하는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의 나라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신선하기도 하면서도 얼굴이 찌푸려지는 광경이었다.


'미국인들은 영어를 못하면 개무시하죠'


영어에 자신이 없었던 나도 무시를 당했을까. 몇몇 점원의 태도를 떠올려보면서 조금 기분이 안 좋았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 건 역사적인 배경 때문일 뿐인데, 영어 이외의 언어, 인종에 대해서 존중감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세계의 중심인 것뿐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자기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런 씁쓸한 기분도 드는 반면, 이들과 인간대 인간으로서 대화를 하기 위한 스킬이 내게 부족한 것에 대해 화가 나기도 했다.


그렇게 즐겁기도 하면서, 생각이 많은 나는 이것저것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무사히 촬영이 끝났다.





5시 반부터 다음 약속이 있었지만, 촬영이 끝난 시간은 3시, 시간이 애매모호했다. 작가님도 배가 고프다고 하셔서 그럼 같이 밥이나 먹을까요 하고 함께 간 곳은 작가님이 맛있다고 추천해주신 베트남 쌀국수집. 역시 현지 사는 사람이 소개하여주는 맛집이 가장 맛있다. 따뜻한 국물이 그리웠는데.. 덕분에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 뉴욕에서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야노 선배


이 날 저녁에는 또 한 명의 뉴요커와 만나기로 약속을 한 날이었다. 대학시절에 알게 된 야노 선배. 나와 같은 대학을 졸업하신 후, 미쯔비시 상사에 입사하셔서 사회생활을 하시다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MBA 유학, 그 후 미국 COACH에서 디지털 마케터로 일하시다가, 몇 년 전 패션 관련된 스타트업을 창업하신 분이다. 어마어마한 경력을 가진 이 분은, 지난해 잡지 Forbes JAPAN에서 '세계에서 활약하는 55명의 여성'이라는 타이틀로 선정되기까지 한 대선배님.


뉴욕에 간다고 하니까 바쁘신 와중에 시간을 만들어 주셨다. 덕분에 야노 선배 오피스도 구경하러 가게 되어 두근두근 콩닥콩닥.





지금 주목받는 지역, 브루클린에 있는 선배의 오피스는 저녁에 가니까 으슥 으슥, 브루클린은 창고 같은 건물이 많은 것 같다. Uber운전기사가 데려다준 곳도 딱 그런 곳, 겁이 많은 나는 조금 무서웠다.





그러나 밖에서 보이는 풍경과는 달리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알록달록 예쁜 벽화와 아기자기한 음식점, 카페가 모인 1층. 오피스는 위층에 있어서 기웃기웃 거리면서 찾아가는데, 아마도 여기는 스타트업 기업이 모인 건물인 것 같다. 4년 만에 만나는 야노 선배는 전에 뵈었을 때보다 훨씬 더 미인!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떠올랐겠지만, 브루클린에서 패션 관련 스타트업 기업을 경영하는 여성 기업가 하면 생각나지 않는가. 영화 마이 인턴의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야노 선배. 영화가 공개된 후에, 오피스에서 탈 자전거를 샀다고 했다. 마이 인턴이 먼저인지 선배가 먼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딱 똑같다.





최근에 미국인 남편과 결혼하셨는데, 남편분도 기업가이시다. 오피스 구경도 하고, 회사 이야기, 커리어 이야기, 결혼 이야기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기념으로 회사 로고 앞에서 사진도 한 장 찰칵.





야노 선배에게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뉴욕에 와보니 어때?'

나는 아까 작가님한테 답했던 것과 똑같이 '여기 사람들은 조금 차가운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자기방어가 강한 이미지, 시크하고 쿨한 이미지. 조금 거리감을 느껴서 다가가기 어려운 이미지라고 했다.


'음, 그건 맞는지도 모르겠네. 나도 요즘 일본에 가서 사람을 만나면, 무서워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거든..'


그러고 보니 4년 만에 만나는 야노 선배라는 표현을 썼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다. 지난해, 도쿄에서 열린 Slush Asia에서 선배는 프레젠 테이터로 등단하셨다. 그때, 난 회사에서 초대권을 받아 참가했었고, 선배의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압도당했던 것을 기억한다. 당당하고 멋진 여성이라는 이미지였지만, 어딘가 다가가기 어려운 강한 아우라 같은 걸 느꼈다.


'뉴욕에 모인 사람들은, 무언가 이뤄내기 위해서 고생해서 모인 사람들이 많아.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까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자로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bitch(나쁜 년)가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네'


환하게 웃는 선배의 모습에서, 지금까지의 고생을 다 뛰어넘은 내면의 강함이 느껴져 왔다.


뉴욕 사람들이 시크하다고 느끼는 이유, 그건 내가 그들과 인간대 인간으로 대화할 수 있을 만큼의 영어력을 갖추지 않았다는 것과, 목표의식과 의지가 강한 이들이 모인 뉴욕이라는 지역의 특성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해 준 하루였다.




Brunch.

동경에서 대학을 졸업 후, 경영&IT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본 유학, 일본 취업에 관한 경험담을 공유하고, 멘토링 목적의 희망 포스팅을 위주로 글을 올립니다.


Naver blog.

소통위주의 블로그.

결혼식을 준비 중인 예비신부이기에, 요즘은 한일 부부 포스팅이 많습니다.


Instagram.

리얼타임으로 일상 사진을 제일 먼저 올리는 인스타그램.

한국어/일본어로  포스팅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4. 뉴욕, 이 거리를 걷는 속도도 내 마음대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