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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효니 Jan 19. 2017

#1-4. 뉴욕, 이 거리를 걷는 속도도 내 마음대로

[여자혼자미국횡단여행]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

첫날밤은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도쿄와 뉴욕, 14시간의 시차 때문에 내가 지금 있는 이 곳이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 가는 가보다. 새벽 6시에 번쩍 눈이 떠지더니 아무리 자려고 시도를 해도 다시 잠에 빠져들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어떻게든 좀 더 자 보겠다고 이불속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더니, 어느새 잠들었다. 일어나 보니까 12시가 가깝다. 어머나, 아침부터 열심히 돌아다니려고 했는데 벌써 이 시간이야.


내가 묵은 호텔은 아침식사가 딸려있었지만, 9시 반까지였다. 허기가 지다. 뭔가를 좀 먹어야겠다. 가방에서 신라면을 꺼내 끓여 먹었다. 호텔에 키친이 딸려 있어서 너무 편했다. 출국 전, 남편은 신라면을 세 봉지 챙겨 넣은 나를 재밌다는 표정으로 놀려댔지만, 이런 게 있으면 요긴하게 잘 먹을 수 있다.


호텔은 타임스스퀘어에서 한 블록 정도의 거리였다. 정말 가까웠다. 하지만 첫날이라서 그런지, 처음 와보는 낯선 도시, 한 블록이 어쩜 이렇게 길게 느껴지던지.


이 나라는 여행자들을 노리는 소매치기나, 사기도 많다는데 혹시 누가 말을 걸면 어쩌나, 한숨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iPhone을 손에 들고 다니지 말아라, 포켓이 집어넣지 말아라, 지도 보면서 걷지 말아라. 처음 하는 미국 여행, 그것도 여자 혼자 하는 여행이었기에, 나는 안전한 여행을 위해 여러 글들을 많이 찾아 읽어봤었다. '좋은 카메라를 내놓으면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관광객이라고 눈도장 찍힐 수 있어요'라는 글도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나, 카메라를 목에 거는 것도 주저했다. 처음 와 보는 신선함 가득한 거리의 풍경은, 어느 한 부분을 잘라 플레임 안에 담아도 그림이 될 것 같았지만, 난 익숙한 척 태연하게 도도하게, 빠른 발걸음으로 걸었다.


어디부터 가지? 행선지는 특별히 정하지 않았다. 나 혼자 하는 여행이니, 빽빽이 정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 MoMA부터 가 보자. 평소에 미술관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MoMA에 간다는 건 설레는 일이었다. Google Map에서 MoMA를 검색해 놓고 그저 걸었다. 그리고, MoMA를 찾아 떠나던 길 도중,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바로 그 유명한 타임스 스퀘어.





여기에 와서 겨우 카메라를 가방 밖으로 꺼냈다. 타임스 스퀘어에는 빨간 계단이 있는데, 이 곳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관광객뿐이었다. 게다가 주변에는 경찰들도 많이 있었기에, 여기에 올라오면 어떤 나쁜 사람들도 가까이 오지 못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조심스레 찍은 첫 사진이 바로 이 한 장.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타임스스퀘어는, 신년맞이 때 사람들로 가득했던 그 거리. 낮에 보는 이 거리는 매우 의외였다. 이렇게 사람이 없는 곳이었나?





호텔 방에는 냉장고가 있었지만, 보통 일본 호텔에는 당연히 있는 생수물이 없었다. 어젯밤에는 호텔에서 체크인하는 것조차 불안 불안했기에, 생수를 살 수 있는 곳이 가까이 있냐고 물어보지도 못하고 나왔다. 그리고, 구세주는 바로 이 곳이었다. 타임스 스퀘어 스타벅스.


맨해튼에는 커피숍이 정말 많았다. 특히 여기를 가도 스타벅스, 저기를 가도 스타벅스였다. 다들 커피만 마시고 사나? 난 물이 마시고 싶은데, 어디 편의점 같은 거 없는 거야? 하고 여기저기 두리번 거려도, 생수물을 팔 것만 같은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뭐, 스타벅스면 커피 말고 티 같은 것도 팔지 않을까? 그거라도 마시자 하고 들어온 곳이었다. 그리고 내 눈 앞에 나타난 건, '생수!!!!!' 너무 기뻐서 점원한테 고맙다고 고맙다고 수백 번 인사하고 싶을 정도였다.





MoMA를 찾아 터벅터벅. Google Map이 안내해 주는 데로 걸었는데, 아무리 걸어도 보이질 않았다. 길치는 어딜 가도 고생이다. 뭐, 시간도 아직 있고, 그냥 걸어 다니는 것도 좋았다. 걸어 다니기 편한 스니커를 신고 오길 참 잘했다. 괜히 멋 부리겠다고, 구두 신고 왔다간 발이 퉁퉁 부었을 거야.


길을 걷다가 만난 HOPE. 뉴욕에는 LOVE사인도 있다고 들었지만, 나는 HOPE가 더 반가웠다. LOVE는 신주쿠에도 있으니까.





그냥 걸어가다가 만난 성당, Saint Patrick's Cathedral이다. 가까이 있다니까 함 구경할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우연찮게 발견했다. 잠깐 들어가서 안에 구경을 했다. 스탠드 글라스가 아름다운 커다랗고 웅장한 성당이었다. 이런데서 결혼식을 올려도 참 좋을 텐데.





여긴 뉴욕 맨해튼 5번가라는 곳이다. 고급 아파트들과 명품 샵들이 거리 여기저기에 보였다. 분위기는 오모테산도와 비슷하다고 할까. 그냥 찍어도 그림이 되는 거리의 풍경. 도쿄 거리는 너무 오래 지낸 탓에, 카메라를 꺼내 들어 찍고 싶은 풍경이 적어졌지만, 이 곳은 내게 있어서 모든 것이 신선하고 낯설다. 옐로캡은 이 거리 어디를 가도 지나다닌다. 맨해튼은 무채색 고층 빌딩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기에, 옐로캡과 곳곳에 걸린 미국 국기가 더욱 화사하게 느껴진다.





5번가를 조금 걷다 보니까 나타난 록펠러센터. 여기 스케이트 링크는 사진으로 봤을 때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던 걸로 알았는데, 12월부터 1월 초까지 장식되어있던 크리스마스트리가 사라진 후 한산한 풍경이었다. 뉴욕에 왔으니 높은 곳에서 전망을 구경하고 싶었다. 야경 때 다시 올까 하고 고민도 됐지만, 우연히 도착한 곳이니 들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탑 오브 더 락(Top of the Rock) 이 곳이 바로 그 유명한 전망대다. 이 날은 영하권 날씨에 날도 그다지 좋지 않아서 지평선 가까이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름 운치 있는 뉴욕의 전망을 구경할 수 있었다. 무채색 풍경이 뉴욕스럽다.





뉴욕 전망과 함께 내 모습을 남겨보고 싶어서, 셀카를 찍어봤다. 한국에서 쭈욱 살아왔으면 셀카는 당연한 문화로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겠지만,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셀카를 잘 안 찍는다. 일본을 떠나와 미국에 왔음에도 나는 혼자서 내 사진을 찍는 게 괜히 쑥스러웠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같이 전망대에 구경을 온 금발의 미녀 두 분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정말 친절했던 언니들, 엠파이어 빌딩이 잘 들어가게 내 자리도 이동시켜주고 예쁘게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여행 오기 전, 서양 사람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사진을 찍는 감각이 틀려서 별로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어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너무 마음에 드는 한 장이다. 요즘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도 인스타그램을 즐기는 시대. 페이스북, 트위트,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세계 공용 SNS가 있는 한, 어떤 사진이 쿨한지, 우리의 감각은 국경을 넘어 비슷해져가고 있는 게 아닐까.





아침에 신라면 하나만 끓여먹고 나왔더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어디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찾으러 갈 여유도 없을 정도로. 전망대에서 내려와 보니 또 스타벅스가 보인다. 여긴 정말로 스타벅스 천지다. 샌드위치와 당근, 사과가 들어있는 런치 박스와 카푸치노를 사서 먹었다.


당근이 그냥 들어있다. 드레싱은 없나? 게다가 이 당근 씨는 냉동인가 보다 차갑다. 끼니는 때웠지만, 뭘 먹은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카푸치노는 어느 나라를 가도 공통된 진리다. 찬 바람이 쌩쌩 불었던 전망대에서 차가워졌던 몸이 조금 풀리는 듯싶었다.





맨해튼은 보이는 족족 길들이 거의 다 ONE WAY이다. 스트릿과 에비뉴를 이해하면 길 찾기가 좀 수월 할 텐데, 만년 길치는 여기와도 헤맨다.





MoMA에 도착한 건 문을 닫기 1시간 전이였다. 보통 MoMA를 제대로 즐기려면 2-3시간은 필요하다고 하는데, 내게 주어진 건 오직 1시간. 6층까지 있는, 거대한 미술관이었기에 요령 있게 둘러봐야 했다. MoMA에는 공식 앱이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1시간밖에 없는 당신을 위한 추천 작품이라는 코스가 있었다. 그걸 보고 천천히 미술관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MoMA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반 고흐의 작품.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었다. 이 곳은 작품의 사진을 찍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공식 앱에는 자기가 마음에 드는 작품의 사진을 찍어서 컬렉션을 만들라고까지 쓰여있다.





앤디 워홀의 유명한 캠벨 수프 캔. 어째 이 분은 그렇게 인기가 없었다. 하도 상품화되어서 이제는 신선함이 없나? 그래도 유명한 분이니까 기념사진을 한 장 찰칵. 만나게 돼서 반가워.





미술관 구경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새까만 밤이었다. MoMA Store는 도쿄에도 있기에 구경은 했지만 별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열심히 일본에서 안 파는 상품을 검색해서 몇 개 기념으로 사기는 했지만, 그다지 감동은 없었다.


꼭 도쿄의 니시신주쿠 같다. 빌딩 숲에서 우리가 보는 야경은, 많은 회사원들이 야근을 하고 있다는 증거. 뉴욕도 별 다를 것 없구나.





밤 8시부터 Broadway에서 뮤지컬을 예약해놨기에 다시 돌아온 타임스 스퀘어. 밤에 되니까 사람이 우글우글 엄청 많아졌다. 아까 낮에 본 타임스 스퀘어하고는 천차만별이다. 이번에는 내 얼굴도 콕 넣어 기념사진, 찰칵!





뉴욕에 오면 당연히 뮤지컬 하나쯤은 봐야지! 평소에 뮤지컬 같은 건 잘 모르는 나지만, 라이언킹이라면 아는 내용이니까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약결제는 인터넷으로 가능하기에, 출국 전에 끝내 놓고 왔다.





무대 바로 앞에서 본 라이언킹. 사진 촬영은 금지사항이기 때문에 극 중에 촬영은 자제했지만, 아쉬워서 마지막에 인사하는 장면만 기념으로 살짝 찍었다. 영화 라이언킹을 본 건 언제였던가, 여섯 살, 일곱 살 때쯤이었나? 그 어린 나이에 봤던 장면들이 겹쳐져 보였다. 아는 노래도 많았기에 흥미진진 즐거웠다.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도 너무 좋았다. 배꼽을 잡고 웃기도 여러 번. 그리고 라이온 킹의 특성상, 동물의 세계를 무대로 한 뮤지컬이기 때문에 특수분장과 댄스가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들의 대사를 100% 이해한 건 아니지만,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이었다.


뮤지컬이 끝난 시간은 저녁 11시쯤, 저녁을 제대로 안 먹고 갔기에 뭔가를 좀 사서 먹어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 시간에 혼자서 어딜 가서 밥을 먹지.. 눈 앞에 보인 맥도널드에 들어가서 햄버거와 프라이드 포테이토, 콜라를 시켜 들고 나왔다. 여긴 카운터에서 일하는 점원들이 불친절하다. 팁이 없어서 그런가.


Uber를 잡아타려고 하는데, 이 날 나는 커다란 실수를 했다. Uber는 택시를 잡아타려는 승객이 자기의 위치를 운전수에게 알려주고, 운전수가 차를 끌고 승객이 있는 곳까지 오는 시스템인데, 글쎄 나는 표시되어 있는 맵만 보고, Uber택시가 있는 장소까지 걸어가려 한 것이다. '어? 택시가 여기 있으니까 가서 타라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택시 운전수 또한 나의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있기에, 내가 움직이면 나를 따라 찾아온다. 하지만, 나는 운전수의 위치를 보고 또 거기로 갔다. 그러다 보니, 돌고 돌아 우리는 결국 만나지 못했고, 운전수가 취소, 5달러 때 먹었다.


두 번째 시도, 이번에는 다른 운전수였다. 눈 딱 감고 믿어보고 서 있어보기로 했다. (아직도 Uber의 정확한 사용법을 잘 몰랐다) 진짜 오나? 안 오나? 하고 교차로에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몇 분 후 눈 앞에 택시가 도착했다. 오오오, Uber는 이렇게 사용하는 거였구나. 이제야 제대로 이해를 했다. (공항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왔대)


겨우 잡아탄 택시, 호텔로 향했다. 하지만, 이 분 지도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잘못 알고 지나쳐버리셨다. 호텔이 어디 있는지는 대강 알았기에 그냥 근처에서 내려달라고 하고 내렸다. 밤 11시 반, 어둑어둑하다. 이 길이었나 저 길이었나 하고 두리번두리번 호텔을 찾아가는데, 길에 들어서면 바로 있을 호텔이 안 보인다. 어째 주변에 사람들이 없고, 길이 으스스하다. 쓰레기도 가득 쌓여있고 건물도 공사하나 보다. '헉, 혹시 내가 들어오면 안 되는 길로 들어왔나?' 그제야 알아차리고 왔던 길로 되돌아 가려던 그때, 부스스한 차림에 눈빛이 이상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우어어어어.....!!!!!' 겁이 확 났는데, No라는 표현을 잽싸게 하고 길을 빠져나왔다. 내가 순식간에 움직였기에, 어쩌면 상대방은 내가 총이라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지 화들짝 놀랬다. (무섭 무섭)


뉴욕의 밤거리는 조심해야 된다는 게, 이 소리구나. 우허... 무서워라.

조심해서 여행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 준 밤이었다.





Brunch.

동경에서 대학을 졸업 후, 경영&IT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본 유학, 일본 취업에 관한 경험담을 공유하고, 멘토링 목적의 희망 포스팅을 위주로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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