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쿄효니 Apr 09. 2016

스물여섯, 일본의 채용시장을 구하라.

전직 후 6개월 만에 업무 성적 1위, 그녀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지금부터 2년 전, 그녀와의 첫 만남은, 도쿄 시내의 셰어하우스였다.

동갑내기,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동지였기에 우리는 금세 친해졌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같은 테이블 앞에 그녀와 마주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는 누구든 한  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는 외국인 투자기업 A사였다.

글로벌 컴퍼니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입사 후 3년 동안 금융 영업 부문과 제조 영업 부문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3년 차가 되던 해, 업무 성적 우수자로 발탁되었다.


A사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바로 그즈음이었다.

철저한 성과주의 글로벌 기업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 단계 계단을 오르고 나니, 외국인 투자기업, 대기업의 취약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개인의 성적이 전부였다.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이상의 성취감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세분화된 조직 속에서, 회사의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의견을 제안해도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했고, 미국 본사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제약을 뛰어넘기가 힘들었다.


지금이 떠날 때다.


10년 뒤 20년 뒤 이 회사에서 계속 일하는 자신의 모습이 상상할 수 없다고 느꼈던 이때, 그녀는 전직 활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회생활 3년 차, 업계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했다.

주: 일본에서는 제2신졸(第二新卒)이라고 불리는 채용제도가 있다. 대체로 사회 경험 3년 이내의 청년들을 경력직이 아닌 대졸 신입생과 같은 기준으로 채용하는 제도이다. 사회 경력이 아닌, 포텐셜 채용이기 때문에 과거의 경력과 관련 없는 업계로 전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IT업계를 떠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그때, 대형 미술관을 몇 채나 가지고 있는 부동산 업계로 진출할 기회가 찾아왔다. 제2신졸 채용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경력과 상관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였다.

여행지에서는 꼭 현지의 미술관을 둘러보고 올 정도로, 미술과 아트에는 관심이 많았다.

취미생활을 일로 만들 수 있다는 설렘, 근무환경도 여유롭게 느껴졌기에, 일 위주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지금이 떠날 때라고 느꼈던 그녀는 그렇게 A사를 뒤로했다.


전직 후 6개월 가까운 시간, 그녀가 전직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다.

연애 이야기도 일 이야기도 서슴지 않게 할 수 있는 사이였는데, 요즘 어떤 일을 하는지, 일은 즐거운 지, 가끔 만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화제가 오르질 않았다.


일 위주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고 싶어 했던 그녀였는데, 어째 전직하기 전 보다 더 바쁘게 생활하는 것 같았다. 일이 바쁜가, 나는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주변에 직장을 바꾸는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나 자신도 전직에 관한 관심이 높았던 때였다.

당시 새로운 업계로 전향하는 케이스는 흔하지 않았기에, 조언을 듣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자세히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는 것 같다고 느꼈기에, 자연스럽게 나도 일에 대한 화제를 꺼내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함께 생활하는 셰어하우스 근처에 있는 카페에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였다.


사실, 나, 너한테 못 한 말이 있어.

다음 달부터,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회사로 가게 되었어.



예상도 못한 갑작스러운 고백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 그녀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커리어에 대한 기대와, 라이프를 소중히 하는 스타일을 꿈꾸며 시작한 두 번째 회사였지만, 그녀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두 번째 커리어로 생각했던 회사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정해진 업무가 있었고, 그 일을 마치면 퇴근 후에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여유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도전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바라던 이상은 이게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전직 후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던 때였기 때문에 망설였고, 그다음 진로를 어떻게 설계 해 가야 할지도 막막했다. 내가 몰랐던 지난 시간 동안,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줄이야. 상담해 오지 않았던 게 섭섭하기도 했지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보일 때까지 불평불만을 토로하지 않는 부분이 그녀답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녀가 다음 커리어로 택한 곳은, 일본 국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B사라는 벤처기업이었다.


G상..
G상이 활약할 장소는 일본식 대기업이 아니라, 벤처기업이 아닐까 싶네요.



헤드헌터가 그녀에게 한 한마디에, 커다란 돌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한순간에 깨달았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 곳이 아니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새롭게 날개를 펼 장소를 만날 수 있었다.




B사를 선택한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회사의 비전과 미션에 강하게 공감했다.


일본의 기업은 스스로 필요한 인재를 고용하는 힘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고 했다.

경력자 채용은 대부분이 에이젼시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소개받은 사람이 회사에 입사하게 됐을 때 에이젼시에게 일정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만약 고용할 대상이 관리직이었을 경우에는, 채용이 성립되었을 때 대가로 지불해야 할 부담도 컸다.


일본의 채용시장의 취약점을 보강하고, 대도시에 밀집한 고용기회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고경력 인재의 채용, 관리직 채용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회사의 미션은, 그녀의 사회생활에 있어서, 하나의 목표가 되었다.


두 번째, 성장 스피드가 빠른 벤처기업이기에 새로운 사업에 대한 가능성도 크다고 느꼈다.


비상장사이기 때문에 실적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서비스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더 다양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대기업에서는 사원의 의견이 경영진에게까지 전달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의사결정이 필요한 단계도 많아지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데도 신중해지고 움직임이 느려지기 마련이다.


그에 비해서, 급성장 중인 벤처기업이라면, 앞으로 자신이 맡게 될 업무의 범위도, 만들어가게 될 비즈니스의 가능성도 넓어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사원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원 스스로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하고 있는 일을 통해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적극 노력하는 모습, 장래의 꿈을 자신 있게 표현하는 모습이 매우 멋져 보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꿈들을 어느새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B사에서 일하는 사원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커 보였고, 그녀의 눈에는 그런 사원들의 모습이 매우 매력적으로 비치어졌다.



회사를 움직이는 일원이라는 즐거움


그리고, 반 년이 지났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그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쑥스러워하면서도 흔쾌히 승낙해 준 그녀와 찻잔을 기울이며 지금 하는 일과 장래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녀는 입사 후 6개월 만에 부문 내에서 업무 성적 1위를 차지했다.

클라이언트의 인재 등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컨설팅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주말에도 노트북 앞에 앉아 일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기에,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일은 힘들 때도 많지만, 스스로 만들어 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즐겁다고 했다.

맡고 있는 업무의 영역을 넘어서,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경영진과 대화를 할 기회가 많고, 자신의 제안이 실제로 반영되는 경우도 많아서 일 자체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팀 리더로 발탁되어, 팀빌딩을 어떻게 해 갈지 고민이라고 했다.

출세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상사에게 회사 경영에 더 관여할 수 있는 부서로의 이동하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리더직을 경험하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받았다고 했다.

같은 팀 멤버 중에는 그녀보다 오랫동안 회사에 있었던 사람도 있었지만, 그녀는 당당히 팀 리더로서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롤모델은 어머니


사회 앞에 당당하게 맞서 활약하는 그녀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살아가기를 꿈꾸는 여성들도 많은 일본 사회에서, 그녀의 모습은 더욱이 두드러져 보였다.


그리고 그 답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쭈욱 그녀의 옆에서 롤모델이 되어주신 어머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쭈욱 일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다.

아버지의 수입만으로 생활이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고, 그때마다 가계를 지켰던 것은 어머니였다.


미대를 나와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 해, 결혼 출산 후에는 제조업 회사의 상품기획, 생명보험회사의 영업사원으로 한 순간의 경력 단절도 없이 활약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일과 가정에 대한 그녀의 가치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50세가 넘은 지금은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해 아파트 경영 업을 하신다는데,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파워우먼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나이를 먹어도, 결혼과 출산을 경험한 여성이라도 노력하면 이룰 수 있고 사회에서 활약할 수 있다.

남성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린 시절, 어리광 피우고 싶을 나이, 실패하더라도 좋아 어린 딸에게 성공을 체험하게 할 수 있도록,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도록 등을 밀어주시던 어머니였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 어머니와 함께 목욕하던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목표를 하나 이룰 때마다, 나에게 주는 선물


그녀의 오른손 중지와, 왼손 검지에는 반짝반짝 예쁜 반지가 끼워져 있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하나밖에 없었던 반지가 두 개로 늘었을 때, 그녀에게 있어서 두 개의 반지가 가진 의미를 들을 수 있었다.


왼손 검지에 끼고 있는 반지는, A사에서 연수가 끝난 후에 회사 동기와 함께 산 반지라고 했다.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신입사원 연수였다.

영업사원으로서 클라이언트 앞에 나가기 위해서는 엄격한 롤플레잉을 통과해야 했다.

너무 힘들어서 울고 싶었을 때도 있었지만, 연수가 끝났을 때 얻은 성취감은 컸고, 영업사원으로서의 기초와 사내 조정 스킬을 익힐 수 있었다.


지금도 왼손 검지에 기고 있는 반지를 보면, 그때를 떠올린다.

힘들어 좌절할 것 같은 때에도 반짝이는 반지를 보면 힘내야지 하고 생각한다 했다.


오른손 중지에 끼고 있는 반지도,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A사에서 업무 성적 우수자로 표상받았을 때, 두 번째로 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목걸이, 귀걸이는 거울을 볼 때만 볼 수 있지만, 반지는 일을 할 때도 항상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그녀는 반지를 산다고 했다.


관리직이 될 때까지 지금 회사에서 활약하고 싶다는 그녀, 비즈리치에서 또 하나의 성과를 이뤘을 때, 그녀의 손가락 위에는 또 하나의 반지가 추가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활약할 그녀의 미래가 기대된다.





Brunch.

동경에서 대학을 졸업 후, 경영&IT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본 유학, 일본 취업에 관한 경험담을 공유하고, 멘토링 목적의 희망 포스팅을 위주로 글을 올립니다.


Naver blog.

소통위주의 블로그.

결혼을 앞두고 있기에 요즘은 한일 커플 포스팅이 많습니다.


Instagram.

리얼타임으로 일상 사진을 제일 먼저 올리는 인스타그램.

한국어/일본어로  포스팅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본에서 만난 그녀들의 도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