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정 Mar 27. 2017

내가 나이기 위해

서울여자 도쿄여자 #42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올 겨울 저는 드디어 해냈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예요. 그게 뭐냐고요? 하하, '나홀로'노래방에 성공했습니다. 일본에선 혼자서 노래방에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누군가와 함께 가서 차례를 기다리는 게 귀찮아서, 누군가와 함께 갔을 때 더 좋은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서 또는 그냥 노래가 하고 싶어서 혼자 노래방을 찾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오죽하면 '나홀로 노래방'이라고 오로지 혼자만 오는 손님만 받는 노래방도 있습니다. '나홀로 노래방'에선 누구나가 헤드폰을 끼고 자기 음성을 들으며 자아도취에 빠질 수 있는 곳입니다.


대학시절에 밴드의 보컬을 했었어요. 60-70년대 팝송을 불렀습니다. 다이애나 로스를 좋아해서 그녀가 불렀던 곡들을 주로 불렀고, 왕페이의 노래들도 불렀습니다. 고교시절 음악 교사에게 "꼭 한 번 클래식 전공자에게 레슨을 받아보라."고 조언할 정도로, 노래에는 조금 자신이 있는 편입니다.


가끔 글을 쓰다가 답답할 때, 강의가 끝나고 허무할 때, 아직 다 풀어내지 못한 제 자신을 보여주고 싶을 때, 저는 혼자 노래를 해요. 주로 마음으로 노래를 하죠. 목소리로는 다 내지 못하고요. 참 오랫동안 노래방에 혼자 가고 싶어했는데 용기가 없어서 혼자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얼마전 일을 끝내고 아이를 데리러가기까지 한 시간이 남아서 노래방 문을 두드렸습니다. 점원은 저에게 "댐으로 하실래요? 조이사운드로 하실래요?"라고 물었습니다. "네?" "아, 노래방 종류를 고르시라고요." "노래방 종류요? 아무거나 괜찮은데." 점원은 저에게 '댐'을 추천했습니다.


텅빈 노래방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주체없이 I dreamed a dream을 넣었어요. 수잔 보일이 된 기분으로 열창했습니다. Desperado를 부르고, Daydream believer까지 부른 후 목을 축였습니다. The rose와 디즈니의 노래들을 열창했습니다. 한 시간은 정말이지 눈깜짝할 사이에 가버렸어요. 나홀로 노래방에 대한 두려움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요즘은 일주일에 두번쯤 한 시간씩 내서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조금도 외롭지 않고 무려 '자유로운' 영혼이 된 기분입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내 자신을 위해 부를 수 있는 그 자유를 만끽해봅니다.


내 안의 열정들을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할 때,  노래를 부릅니다. 작은 무대에 서서 오래된 노래들을 부르는 게 제 꿈 중에 하나예요. 이룰 수 없는 꿈들은 이렇게 또 하나씩 쌓여갑니다.

꼭 꿈을 이루지 못해도, 자신을 위로할 수단을 가진 나이가 된 것을 축복합니다.


매일 트위터를 하는 것, 가끔 노래방에서 혼자 열창하는 것, 문득 시간이 생겼을 때 신주쿠 교엔을 찾아가 무작정 걷는 것, 누군가에게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쓰는 것, 오래된 교과서를 찾아보는 것, 오래된 일기를 손바닥으로 감지하는 것, 아주 오래된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연인을 떠올려보는 것. '내가 나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해봅니다. 엄마라는 이름도, 아내라는 자격도 아닌, 그러 내가 나이기 위한 순간은 하루에도 한 두번은 꼭 필요한 것이기에. 그 어느 누구 앞에서도 부르지 않았던 자신없는 노래들에 영혼을, 마음을 실어봅니다. 내가 여기에 있다고. 이 넓은 지구, 이 수많은 사람들 속에, 나도 살아있다고, 나는 그저 나로 존재하고 싶다고, 가끔 노래를 불러봅니다. How wonderful life is now you are in the world라고 제가 저에게 말해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하이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