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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Apr 13. 2019

도쿄대생임을 밝히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2019년 도쿄대학교 학부 입학식 축사/우에노 치즈코



*도쿄대학교 축사를 일본 여성학 연구의 대표자 '우에노 지즈코'도쿄대 명예교수가 맡았습니다.

인상적인 부분들이 많아, 번역해 옮겨둡니다(역자/김민정, 2019년 4월 13일)


입학을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극심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여학생의 현실


그 수험이 공정한 것임을 여러분은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불공정하다면 분노가 치밀어 오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작년에 도쿄의과대학 부정입시가 발각되어, 여학생과 재수생에 대한 차별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문부과학성이 전국 81개 의과대 의학부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여학생 입학 정황, 즉 남학생 합격율은 여학생의 평균 1.2배라고 합니다. 문제가 된 도쿄의과대학은 1.29배, 최고가 준텐도대학 1.67배, 상위권에 쇼와대, 니혼대, 게이오대 등 사립학교가 줄을 잇습니다. 1.0배보다 낮은, 즉 여학생이 들어가기 쉬운 의과 대학으로는 돗토리대, 시마네대, 도쿠시마대, 히로사키대 등 지방 국립의대가 꼽힙니다. 참고로 도쿄대 이과3류는 1.03, 평균보다 낮지만 1.0보다는 높은 이 숫자는 어떻게 풀이하면 좋겠습니까? 통계는 중요합니다. 그것을 기준으로 고찰이 가능하니까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합격하기 어려운 것은 남자수험생 성적이 좋아서일까요? 전국 의학부 조사 결과를 공표한 문부과학성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자 수험생이 성적이 좋게 나온 학부, 학과는 의과를 빼고는 다른 학부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이공계도 문과계열도 여자가 우위인 경우가 많다.”고 말입니다. 즉, 의학부를 뺀 다른 모든 학부들이 여학생이 들어가기 쉬운 1이하인데, 유독 의학부만 1 이상이란 점은, 어떤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각종 데이터가 여자수험생의 편차치(성적)가 남자수험생보다 높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여학생은 재수를 피하기 위해 여유를 가지고 수험대학을 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도쿄대학 입학자 여성 비율은 장기에 걸쳐 ‘20%의 벽’을 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번 연도만 해도 여성 입학자는 18.1%로 예년보다 낮은 수치입니다. 통계적으로만 보면 편차치 정규분포에는 남녀차가 없기 때문에 남학생보다 우수한 여학생이 도쿄대 수험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세번째로 4년제 대학 진학율 그 자체에 성별에 따른 차이가 있습니다. 2016년도 학교 기본 조사에 의하면 4년제 대학 진학율은 남자 55.6%, 여자 48.2%로 7포인트나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는 성적의 차이가 아닙니다. “아들은 대학까지, 딸은 단대까지”라고 생각하는 부모의 성차별 결과입니다.

 

최근 노벨상 평화상을 수상한 말랄라 유사프자이 씨가 일본을 방문해 “여자 교육”의 중요성을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파키스탄에게만 중요하고 일본은 관계가 없는 얘기일까요? “결국 여자니까” “어쩔 수 없는 여자니까”라고 찬물을 끼얹고, 갈 길을 막는 것을 aspiration의 cooling down, 즉 의욕의 냉각효과라고 부릅니다. 말랄라 씨 아버지는 “딸을 어떻게 키웠느냐?는 질문에 “딸의 날개를 부러뜨리지 않도록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 그대로, 수많은 딸들은 아이라면 누구나가 가진 날개가 성장하는 도중 누군가에 의해 꺾이고 맙니다.

 

그렇게 도쿄대까지 열심히 노력해 진학한 남녀학생들을 기다리는 것은 어떤 환경일까요? 타대학과의 미팅에서 도쿄대 남학생들은 인기가 좋습니다. 도쿄대 여학생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너, 어느 대학 다녀?”라는 질문에 “도쿄,에 있는, 대학교…….”하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도쿄대’라는 대답에 상대가 주눅 들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왜 남자학생들은 도쿄대생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여학생은 그런 대답을 하는 것조차 주저해야 할까요? 왜냐하면 남성의 가치와 학교 성적은 일치하지만, 여성의 가치와 학교 성적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어릴 때부터 귀여워야 한다는 기대를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귀엽다’는 것은 어떤 가치를 뜻하나요? 사랑받고, 선택받고, 지켜 받는 가치에는 상대를 절대로 위협하지 않는다는 보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학생들은 자신이 성적이 좋은 것도 도쿄대생인 사실도 감추려는 것입니다.

 

도쿄대 공학부와 대학원의 남학생 5명이 집단으로 사립대 여학생을 성적으로 능욕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가해자인 남학생 3명은 퇴학, 2명은 정학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모델로 히메노 가오루코라는 작가가 <그 여자애는 머리가 나빠서>라는 소설을 썼고, 작년에 그것을 주제로 교내에서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그 여자애는 머리가 나빠서”라는 제목은, 취조실에서 실제로 가해자 남학생이 한 발언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 도쿄대 남학생이 사회로부터 어떤 시선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도쿄대에는 지금도 도쿄대 여학생이 실질적으로 가입하지 못하고, 타대학 여학생만 참가를 인정하는 남자 동아리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학생이던 반세기 전에도 비슷한 동아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니 놀랍습니다. 3월 도쿄대학 남녀공동 참획담당이사이자 부학장명으로 여학생 배제는 ‘도쿄대 헌장’의 평등 이념에 반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접해온 학교라는 사회는 표면적인 사회에 지나지 않습니다. 학력 경쟁에 남녀 차이가 없는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온 시점에서 이미 감춰진 성차별이 시작됩니다. 사회에 나가면 더 노골적인 성차별이 횡행합니다. 도쿄대학도 또한 안타깝지만 그런 예 중 하나입니다.

 

(도쿄대) 학부의 경우 약 20%인 여학생 비율이, 대학원생이 되면 석사과정 25%, 박사과정 30.7%가 됩니다. 더 나가아서 연구직을 보면, 조교의 여성비율은 18.2, 준교수 11.6, 교수직 7.8로 낮아집니다. 이것은 국회의 여성 의원 비율보다도 낮은 수치입니다. 여성 학부장, 연구과장은 15명 중 1명, 역대 총장을 지낸 여성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여성학 선구자로서

 

이런 사안을 연구하는 학문이 40년 전에 태어났습니다. 여성학이란 학문입니다. 차후 젠더 연구라고 불리게 됩니다. 제가 학생이던 시절, 여성학이라는 학문은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없어서 만들었습니다. 여성학은 대학 밖에서 태어나 대학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4반세기 전, 제가 도쿄대학에 부임했을 때, 저는 문학부에서 3번째 여성 교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성학을 교단에서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여성학을 시작해보니, 세상은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가득했습니다. 왜 남자는 밖에서 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할까? 주부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생리대와 탐폰이 없던 시절에 월경 용품으로 무엇을 썼을까? 일본 역사에 동성애자는 없었을까? 아무도 조사하지 않은 것들이어서 선행연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그 분야의 선구자, 제일인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도쿄대학에서는 주부연구, 순정만화연구, 섹슈얼리티연구로도 학위를 받을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들이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싸워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를 움직인 것은 끊임없는 호기심과 사회의 불공평함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학문에도 벤처가 있습니다. 쇠퇴해가는 학문이 있는가 하면, 새롭게 태어나는 학문도 있습니다. 여성학은 벤처였습니다. 여성학뿐만 아니라, 환경학, 정보학, 장애학 등 다양한 새로운 분야가 태어났습니다. 시대의 변화가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변화와 다양성에 따라 개척해 나가는 대학

 

미리 말해두지만, 도쿄대학은 변화와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개척해온 대학입니다. 저같은 사람을 채용하고 이 자리에 서게 한 것이 그 증명입니다. 도쿄대에는 국립대학 첫 재일한국인 교수 강상중 씨가 있으며, 국립대학 첫 고졸 교수인 안도 다다오 씨도 있습니다. 또 시각청각 3중 장애를 가진 교수 후쿠시마 사토시 씨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선발되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도쿄대생 한 사람당 연간 국비지원은 500만엔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4년간 훌륭한 교육 학습 환경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좋은 환경은 여기서 가르친 경험이 있는 제가 장담합니다.

 

여러분은 노력하면 대가를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여기까지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대입 부정에 대해 말했듯 노력이 늘 공정한 대가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닌 사회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력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여러분의 노력의 성과가 아니라, 환경 덕분이란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오늘 “노력하면 된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여러분 주위 환경이 여러분을 격려하고, 등을 밀어주고, 손을 잡고 끌어올려주고, 잘하면 평가하고 칭찬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노력해도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 노력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 지나친 노력으로 인해 몸과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력하기 전부터 “어차피 너는 안 돼.” “나같은 게 과연.”하며 노력할 의욕을 저버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노력을 부디, 남들을 이기고 혼자만 살아남기 위해 쓰지 마세요. 좋은 환경과 타고난 능력을 불우한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리기 위해 쓰지 말고, 그런 사람들을 돕는데 쓰십시오. 그리고 강한  하지 말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서로 도우며 살아 가세요. 여성학을 탄생시킨 것은 페미니즘이라는 여성운동입니다만, 페미니즘은 결코 남자처럼 행동하거나 약자가 강자가 되겠다는 사상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약자가 그저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있도록 요구하는 사상입니다.

 

도쿄대학에서 배우는 가치

 

 여러분 앞에 펼쳐진 세상은 지금까지의 이론이 통하지 않은 예측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정답 있는 지식을 탐구해 왔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을 기다리는 것은 정답이 없는 질문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교내에 왜 다양성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새로운 가치란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 다문화가 마찰하는 그 사이에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교내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도쿄대에는 해외유학생, 국제교류, 국내 지역 과제 해결과 관련된 활동을 지원하는 시스템도 있습니다. 미지를 탐구하고, 다른 세상으로 뛰어나가 보세요. 다문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을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도쿄대라는 브랜드가 통용되지 않는 세상에서도,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사회에서도, 설사 난민이 된다고 하더라도 살아남을 지식과 지혜를 배우길 바랍니다. 대학에서 배우는 가치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지혜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아무도 보지 못한 지식과 지혜를 창출하기 위한 지식과 지혜를 배우는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지(知)를 창출하는 지(知)를, 메타 지식이라고 합니다. 그 메타지식을 학생들이 습득하도록 이끄는 것이 대학의 사명입니다. 도쿄대학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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