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정 Jun 02. 2018

‘근저에 있는 것은 성차별입니다’

작가 기리노 나쓰오가 풀어낸 ‘JK’를 둘러싼 현대사회의 그늘

-여기서 말하는 ‘JK’란 여자고등학생를 말하는 ‘조시코세이’의 약자입니다(역주). 이 기사는 일본 야후 특집 페이지 2018년 5월 18일에 업데이트된 기사를 번역했습니다. 


진흙탕 같은 현실과 격투하는 이들을 그려온 작가, 기리노 나쓰오. 최근 발행한 ‘노상의 X’에서는 JK비지니스(여고생을 종업원 등으로 써서 이윤을 내는 사업) 등 위험한 장소에 빨려 들어가는 10대 소녀를 그렸다. 왜 그녀들에게 눈을 돌렸는가. 소녀들이 처한 환경을 어떻게 보았을까.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잔혹한 일인가> 


번화가를 중심으로 ‘JK(여고생)’을 판매하는 서비스업이 운영되고 있다. 여자고등학생이 마사지를 해주고, 옆에서 잠을 자주며, 안아주는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마사지점’, 관광 안내와 산책을 해주는 ‘산책 서비스’ 등 업종은 다양하다. 성적 행위는 표면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비밀 옵션’으로 행해지는 곳도 많고, 아동 매춘, 성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왜 소녀들은 그런 위험한 장소로 빨려들어가는 것일까? 그런 의문에서 태어난 책이 올 2월에 쓴 소설 ‘노상의 X’다. 집필하게 된 경위에 대해 기리노 나쓰오는 이렇게 말한다. 

“당초, 머릿속에 있던 것은 요즘 젊은 여자들의 얘기를 막연히 쓰고 싶었어요. 소녀들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통괘하게 복수하는 그런 얘기를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쓰기 시작하자마자 벽에 부딪쳤어요. 현실에 그런 전개는 사실 일어나지 않거든요. 자 그럼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한 사건의 기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2014년 아이치현에서 17살 소녀가 집단 폭행으로 사망한 잔인한 사건이다. 사건 현장이었던 시영주택의 방은 근처 소년소녀들이 드나들던 곳으로, 피해자인 소녀도 그 집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그러다 트러블이 생긴 결과, 소녀는 소년들로부터 20시간이 넘은 참혹한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 

“너무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왜 피해자인 여자아이는 하필이면 그런 곳에서 살고 있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녀에게 갈만한 곳이 없었단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이렇게나 잔인한 일이구나. 어른도, 남성도, 갈 곳이나 몸을 누일 곳이 없으면 하루하루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젊은 여성의 경우,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위험한 상황에 즉각 처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건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가 위험한 장소를 찾아가 감금, 폭행의 피해를 당하고 죽임을 당한 사건은 적지 않다. 

“안전한 갈 곳이 없다는 것은 비극을 만드는 하나의 요인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갈 곳 없는 소녀들이 길거리를 배회하는 이미지가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JK(여고생)비지니스처럼 어른들으로부터의 착취에 소녀들이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복 입은 소녀들의 위화감>

 

‘노상의 X’에는 제각기의 사정으로 집을 나온 10대 소녀 3명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빈곤, 학대, 육아 방임에서 도망쳐 나온 소녀들이 돈과 식사, 잘 곳을 얻기 위해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성적으로 착취 당한다. 도움을 청할 곳은 보이지 않는다. 

기리오 나쓰오는 집필을 위해 조사를 하다가 갈 곳 없는 중고교생 세대를 지원하는 단체 ‘Colabo’를 알게 된다. 대표인 니토 유메노는 고교 시절에 가정 불화로 집을 나와 시부야 길거리를 배회하며 살았던 경험이 있다. 당시 자신의 체험을 ‘난민 고교생’ ‘여자고등학생의 뒷사회’등의 저서에 적고 있다. 

“니토 씨를 만나 얘기를 들으며, 갈 곳 없는 여고생들이 직면한 힘겨운 현실을 알게 되었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녀들 중에는 성적 학대, 강간을 당한 아이들도 많았어요. 빈곤이 문제인 경우도, 부모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과연 이런 과격한 현실을 소설로 어디까지 쓸 수 있을까 고민도 많았습니다.” 

기리노는 JK(여고생) 비지니스의 실태를 피부로 느끼기 위해, 아키하바라, 신주쿠를 걸어다녔고, 또한 JK비지니스의 스카우트맨, 여자 고교생을 좋아한다는 남자 등을 취재하기도 했다. 

아키하바라에는 통상 ‘메이트 거리’라 불리는 일각이 있다. JK비지니스와 메이드 카페에서 일하는 소녀들이 전단지를 돌리며 손님을 불러 모은다. 작년 7월부터 도쿄도는 JK비지니스에 특화된 금지조례를 시행했고, 교복을 입은 종업원은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조례 시행 전에 갔을 때, 여기저기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가게 앞마다 서 있었습니다. 진짜 고등학생인지는 알 수 없었어요. 여성인 저는 고객이 될 수 없지만, 제가 말을 걸면 밝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위화감을 느낀 것은 그녀들에게 당돌한 인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손님이 심한 말을 하면 금세 자포자기할 것 같은 연약함과 자기평가의 낮음을 느꼈습니다. 남성 손님이 인정해줄 때 비로소 자기 긍정감이 보강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젊은 여성이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어른들이 이용하는 구조가 문제입니다.” 


<’모자 가정이 뜨겁다’ 착취하는 어른의 죄책감은……> 


‘원조교제’의 문제는 1990년대부터 부각되어 왔다. 80년대 후반 ‘오냔코 크라부’ 등 여자 고등학생 아이들이 시대를 석권하고, 90년대에는 ‘여자 고등학생 붐’이 일었다. 

“90년대 초반이었어요. 여자 고등학생이 속옷을 가져가는 파는 ‘브루세라’라는 용돈 벌이가 있었습니다. 파는 사람은 가게로 속옷을 가져가면 가게에서 돈을 받지요. 즉 간접적인 것이었고, 실제 판매의 주체는 브루세라숍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JK비지니스는 살아있는 소녀들을 팔고 있습니다. 장소를 제공하고, 손님을 모아, 소녀가 서비스를 하는 것이니, 피고용자와 사업자, 그리과 관리자의 관계입니다. 숍과 달리 완전히 시스템화된 비지니스입니다.” 

JK비지니스에서 일하는 소녀들 누구나가 생활고와 가정 사정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용돈이 필요해서” “친구가 하자고 해서”등의 이유로, 가벼운 마음으로 아르바이트처럼 생각하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면접 없이 채용즉결, 급여는 당일 지불 등 편리한 시스템 때문에 많은 소녀들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기리오 나쓰오가 취재 중 특히 기억에 남은 일은 소녀들을 착취하는 어른들에게 일말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던 점이라고 한다. 

“대량의 어린이 포르노가 당당하게 판매되는 가게에 들어갔을 때는 정말 놀랐습니다. 여고생뿐만 아니라, 중학생, 초등학생을 성의 대상으로 한 DVD가 아주 평범하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JK비지니스 스카우트맨을 한다는 남성들은 소녀들을 완전히 ‘물건’으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중에는 일하는 여자 아이와 반드시 육체관계를 가진다는 남자도 있었습니다. 또다른 JK비지니스 관계자가 “모자 가정이 뜨겁다”길래 경악했습니다. 모자가정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경우가 많아, 성산업과 JK비지니스에서 일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들을 그렇게 쉽게 해버리더군요.” 

여자 고등학생을 욕망의 대상으로 보고도, 죄책감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여자 고등학생을 좋아해서 JK비지니스 가게를 운영한다는 40대 남성은 “우리는 젊은 여자의 성을 산다기보다, 연애를 하는 거죠.”라고 했어요. 나이 먹을만큼 먹은 남자들이 16.17살의 아이들 상대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두근거림을 느끼고 싶다”는 것입니다. 10대 소녀와 관계를 맺으면 범죄라는 인식이 전혀 없는 거예요.” 

연애라고 주장한다면, 소녀들의 ‘성’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착취하고 있다고 기리오 나쓰오는 지적한다. 


<매춘은 자기 책임인가> 


세상에는 ‘몸을 파는 여자가 나쁘다’는 소리도 있다. 앞서 말한 Colabo는 아동매춘과 JK비지니스와 관계된 여성들의 목소리를 모아 <우리들은 ‘팔렸다’전>이란 기획전을 개최했다. 소녀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매춘을 하게 된 배경을 패널과 노트에 적은 전시다. 그러자 인터넷을 중심으로 “<’우리들은 팔렸다’가 아니가 ‘우리들은 팔았다’가 아니냐> <몸을 팔아 돈을 벌어놓고 피해자인 척 하냐> 등 비난이 쇄도했다. 기리노 나쓰오는 이런 풍조에 의문을 제시한다. 

“정말로 갈 곳이 없고 보호가 필요한 미성년의 여성이, 어른들에게 속아 매춘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잘 모르는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사회의 일그러짐이 이렇게 드러나고 있는데 그걸 개인 레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절대로 자기 책임이 아닙니다.” 

여성의 빈곤, 비정규직의 증가 등의 문제가 여기서도 드러난다. 

“’노상의 X’에서는 가출한 3명의 소녀가 자기들끼리만 살아가자고 결심하기까지를 그리고 있어요. 그 후를 속편으로 써볼 생각이었는데, 그녀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무력감만 쌓여갑니다. 고교를 졸업하지 않은 여자들이 정규직으로 좋은 직장을 얻는 일은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러면 빈곤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고, 또 성적 착취 비지니스가 그녀들 주변으로 다가오게 되겠죠.” 

Colabo를 비롯해 ‘와카쿠사 프로젝트’ 등 힘겨움을 겪는 젊은 여성을 서포트하는 단체는 점점 증가하고 있지만,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위화감과 분노를 원동력으로> 


“그 근저에는 성차별이 있습니다. 성을 팔 수 밖에 없는 여성을 멸시하는 것이죠. 일본은 사회전체에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이 너무 강하다고 느낍니다. 임금격차도 크고, 남녀가 전혀 대등하지 않아요.” 

일본은 남녀평등후진국이라 불린다. 세계경제포럼이 각국의 남녀 평등 지수를 제시한 2017년판 ‘젠더 갭 지수’를 보면, 일본은 조사대상 144개국 중 114위였다. 또 국세청 조사에 따르면 평균연봉은 남성 521만엔에 비해, 여성은 280만엔이다(2016년분 민간급여 실태통계조사 결과). 


“사회에 위화감을 가지고 있고 분노하고 있는 여성들이 무척 많습니다. 원해서 여자로 태어난 게 아닙니다. 저도 젊었을 때 가졌던 위화감과 분노가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건 지금도 변함 없습니다.” 

기리노 나쓰오는 1993년, 여성탐정을 주인공으로 한 ‘얼굴에 흩날리는 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해 데뷔했다. 그 후 그 작품을 남성평론가들은 “미스터리 옷을 입은 로맨스 소설”이라고 비난했고, 기리노 나쓰오는 에세이 ‘백사교 이단 심문’을 통해 철저히 반론했다. 


“미스터리 세계는 남자 사회였어서 여자 작가란 것만으로 꽤나 비난을 받았습니다. 인터뷰에서 ‘미스터리는 도시락통 같다’고 말한 걸로, 엄청난 비난이 쇄도했습니다. 반찬의 색, 영양 밸런스, 배치 등을 잘 고려해서 만들어 넣은 도시락은 그만큼 만들기가 힘들다는 뜻인데, 고귀한 미스터리를 도시락이라고 말했다고 혼이 난 거죠. 도시락을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화가 났어요.” 


자기 자신도 아들을 한 명 키우는 엄마로, 매일 아침 도시락을 만드는 힘겨움을 알고 있다. “도시락에 비유했다고 미스터리를 우습게 본다고 비난하는 남자들은 도시락을 만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에세이를 통해 반론했다. 

도시락 공장에서 심야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부들이 남편을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하는 이야기를 그린 ‘OUT’은 ‘남편을 죽이다니!’라며 역시나 혼이 났다. “주부에게도 드라마가 있군요.”하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나중에 영어로 번역되었으며, 일본인 작가로 처음으로 영국 에드거 상 후보에 올랐다. 


<소설을 쓰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작품을 써온 지 25년. 이 사회와 동떨어진 소외감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써 왔다. 그 중에서도 고독한 여성들의 격투는 여성들의 강한 공감을 얻고 있다. 

“소설을 통해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부조리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지만, 세상을 좋게 바꾸기 위해 쓰는 것도 아닙니다. 원래 소설은 재미있으면 그만이고, ‘노상의 X’도 “이런 여자애들도 있구나.”정도로 끝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현실이 너무나 나빠서 그렇게 끝낼 수만은 없습니다. 이전에는 일상의 표면에는 막이 있어서 그 막 안으로 들어가서 소설을 쓰면 되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표면 자체가 너무나 거칠거칠해서 안으로 들어가기가 힘듭니다. 뭐랄까 모든 문제가 이미 안으로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표면으로 나와 있어요. 소설을 쓰기 어려운 시대라고 느낍니다.” 

허구를 초월한 현실의 황량함을 눈 앞에 두고,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엮어가는 일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Me Too’와 ‘저주의 언어’와 강요된 여성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