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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Apr 06. 2018

‘#Me Too’와 ‘저주의 언어’와 강요된 여성상

아마미야 카린이 간다 제422회(매거진9 연재)

(아마미야 카린 씨가 쓴 글을 번역연습겸 한국어로 번역해서 싣습니다)

아마미야 카린이 간다 제422회(매거진9 연재) 

2018년 4월 4일 게재 


‘#Me Too’와 ‘저주의 언어’와 강요된 여성상에 대한 장(章) 


야마미야 카린 


“아이를 4명 낳은 여성에게 표창을 할 지 검토해야 한다는 의원이 있었습니다. 임신했다고 비난을 당한 여성의원도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아도 혼이 나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혼이 납니다. 대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3월 10일, 도쿄 구니다치시에서 열린 ‘위먼스 마치(Women’s March) 구니타치’ 퍼레이드에서 갓포기(일본식 입는 앞치마)를 입은 여성이 마이크를 잡고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쓰레받기에는 ‘#Me Too’라는 글자가. 그 옆에 있던 여성은 새빨란 드레스 위에 갓포기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아기 인형을 태운 유모차를 끌며, 등에는 아기 인형을 짊어지고, 손에는 쓰레기봉투와 파가 삐죽 삐져나온 비닐봉투와 빗자루를 들고 있었다. ‘가사와 육아를 한 몸에 짊어지도록 강요당한 여성’을 표현한 그녀들은 퍼레이드 도중 음악에 맞춰 갓포기를 화려하게 벗어버리고, 가사도구도 모두 던져버린 채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이틀전인 3월 8일, 국제여성의 날. 도쿄 시부야에서는 ‘위먼스 마치’가 개최되었다. 차가운 비가 내리는 평일 밤이었는데도 데모에는 750명이 참가. ‘침묵 안 해!’ ‘내 취미는 가사가 아니다’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다’ ‘#Me Too’ 등의 플래카드를 든 여성들이 “임금 낮아서 진짜 큰일이야!” “장시간 노동 진짜 말도 안 돼!” “성희롱, 성추행, 골 때린다” “어린이집 떨어져서 난리났다” “여자로 사는 거 너무 힘들어” “참는 것도 한계!” 등을 외쳤다. 


그리고 3월 25일 다카가와세이가쿠인 중고교에서 열린 인권세미나에서는 ‘#Me Too’가 주요 화제였다. 등단한 NPO법인 휴먼라이츠 나우의 이토 가즈코 씨, 조치대학 교수 미우라 마리 씨, 그리고 나. 여중고생도 함께 ‘여자력’이란 단어와 ‘여자니까 ( )( )해야 한다’등의 강요에 대한 위화감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헐리우드 성희롱 문제를 발단으로 지난해 이후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Me Too’운동. 역시 누구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애매모호한 답답함이 이렇게 조금씩 터져나오는구나. 그것이 운동이 시작된 후 첫 인상이었다. 생각해보면, 오래 그 정도 일로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조소 당했고, 입막음 당했다. 게다가 이 나라에서는 성희롱과 젠더에 대한 위화감을 입 밖으로 낸 순간 “못생긴 주제”에 또는 “아줌마는 입 다물라”는 형벌까지 받아야 한다. 


“성희롱쯤 웃어 넘겨.” “일일이 따지는 사람은 귀엽지 않아.” 이미 너무 많이 들어와서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전에 상대가 어떤 반응을 할 지 미리 걱정하게 된다. 그래서 입을 다문다. 하지만 그렇게 ‘입을 다물게 하는 것’ 그 자체가 비열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 ‘당연함’이 공유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공유는 아직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여하튼 이 나라에는 ‘저주의 언어’가 지나치게 많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온 말들을 대충 떠올려봐도 “남자 자존심을 세워주는 게 여자의 일이다” “여자는 편해서 좋겠다” “가사도 육아도 여자의 일” “여자의 가치는 젊고 아름다운 데 있다” “남자 이상으로 성공할 필요없다” “남자 이상 돈을 벌면 안 된다” “빨리 결혼해” “빨리 낳아” “남자의 바람 같은 건 웃어 넘겨야지” “여자는 알아도 모른 척 하는 거야”등등 지금 생각하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이들의 말들을 끊임없이 들으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이 나라에는 이런 ‘저주의 언어’를 퍼붓는 정치가들도 있었다. 


2001년 이시하라 신타로 씨는 “문명이 가져다준 가장 나쁜 유해한 것은 아줌마” “여자가 생식능력을 잃고도 살아가는 것은 무의미한데다 죄”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2007년에는 당시 자민당 후생노동장관 야나기사와 하쿠오 씨가 여성을 ‘낳는 기계’라고 발언해 비난을 받았다. 


2014년에는 도쿄도의회에서 임신, 출산, 불임으로 고민 중인 여성에 대한 지원을 주장한 시오무라 아야카 의원은 어느 남성의원으로부터 “빨리 결혼해라” “못 낳냐?”등의 야유를 받았다. 야유를 한 스즈키 아키히로 의원은 사죄를 하면서 “저출산, 만혼화인 시대에 시오무라 의원이 빨리 결혼하길 바라는 가벼운 마음에서”그런 폭언을 했다고 변명했다. 야유를 단지 조금 정중한 언어로 바꾼 그 변명에 사람들은 “역시 뭐가 문제인 지 모르는군.”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하여 2017년 11월, 자민당 산토 아키코 전 참의원부의원장이 당임원모임에서 “아이를 4명 이상 낳은 여성을 후생노동성이 표창할 것을 검토하면 어떻겠냐?”고 발언했고, 큰 비판을 받았다. 


이 글을 쓰는 나는 40대 싱글로, 아이도 없다. 이런 나에게 매번 다양한 방식으로 요구되는 ‘낳으라’는 압박은 무척 폭력적이고 무신경한 발언이라 여겨진다. 


사생활의 영역을 침범당한 것 같은 불쾌함은 물론이고, 아이를 낳아 키우기엔 이 나라의 환경이 별로 칭찬할만 하지 않다. 결국은 여성의 눈물어린 ‘인내와 참을성’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과 가사와 육아의 양립으로 고민하는 것은 여성. 


어린이집에 떨어져서 눈물 흘리며 일을 그만두는 것도 여성. 


운이 좋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게 되어도, 직장과 가사와 육아로 과로사 직전처럼 매일 망쇄한 날들을 보내는 것도 여성. 


이 나라에서는 남자는 경제적 자립만 하면 그것만으로 아무 지적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는 그 이상을 해야한다. 가사와 육아까지 완벽하게 하도록 요구받으며 ‘남자 자존심을 세워주는’ 역할까지 요구 받는다. 일을 계속하면 “남편이 이해심이 있어서 좋겠다.”는 말까지 듣게 된다. 육아를 해야 하거나 병간호가 필요한 가족이 있는데도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그걸로 비난을 받으며,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고 육아와 병간호에 전념하면 아무도 칭찬해주거나 위로해주지 않을 뿐더러 ‘편하게 사는 전업주부’라고 손가락질 받는다. 


한편, 결혼 안 한 여자, 아이가 없는 여자는 때로 노골적으로 불쾌한 말을 듣게 된다. 


얼마전에도 신문 투고란을 읽다가 쓰러질 뻔했다. 거기에는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은 인간은 사회를 지탱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니 연금 금액을 줄여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분노의 수준을 넘어, 슬픔을 느꼈다. 1975년생인 나는 단카이(일본 베이비붐 세대) 주니어 세대로, 우리세대가 결혼 적령기였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제3차 베이비붐이 올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세대는 거품경제 붕괴의 여파를 고스란히 받아 비정규직 1세대가 되었고, 정규직으로의 취직도 결혼도 출산도 못한 채 40대를 맞이한 이들이 적지 않다. 결혼하고 싶었다, 아이를 낳고 싶었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그런데 경제적인 요인으로 그 바람을 이루지 못한 이들에게, 마치 아이를 낳아 키우지 않은데 대한 ‘벌’처럼 연금 감액이라니, 이런 폭거가 있을까. 


이 사회는 ‘낳으라’는 압력은 계속 유지하면서 ‘낳은 후’의 일에 대해선 놀랄만큼 냉담하다. 사회전체가 아이를 키울 생각이 일절 없다. 육아지원도 적고, 그렇게 논란이 되었던 어린이집 문제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올해도 4명 중 1명이 인가어린이집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더우기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여성들에겐 마치 이혼이 죄라도 되듯 마냥 힘든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이혼한 여성은 눈깜짝할 사이에 2명 중 1명이 빈곤층이 된다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지금까지 취재해온 사례들만 봐도 빈곤으로 인한 싱글맘의 사건이 무척 많았다.

 

2014년 지바현 조시에서 월세체납으로 공영주택을 쫓겨난 그 날 중학생 딸을 살해한 싱글맘. 삿포로에서 기초생활수급이 끊긴 후 3명의 아이를 두고 기아로 사망한 싱글맘 사건은 1987년에 일어난 일이다. 2010년에는 오사카에서 두 아이가 아사한 사건이 있었다. 성인마사지가게에서 일하며 호스트바에 다니던 두 아이의 엄마인 싱글맘은 사회적으로 큰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스기야마 하루 씨가 쓴 ‘르포 학대, 오사카 두 아이 방치사 사건’을 읽으면 알 수 있듯, 그녀는 ‘좋은 엄마’가 되는 일에 관심이 컸고, 이혼전까지 실제로 ‘좋은 엄마’로 살았다. 그런데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게 된 순간. 그녀는 한 번에 무너져내린 것이다. 


왜 비난을 당하는 사람이 그녀만이어야 할까? 직장에 취업해 본 경험이 전무했던 그녀가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서 생활비를 벌며, 만 1세와 만3세 아이를 키워야 했다. 그게 가능했을까? 왜 주변 사람들은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엄마에게 거의 불가능한 것들을 요구한다. ‘엄마니까 이렇게 해야한다’는 규범이 넘친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여성들을 몰아세운다. 그 규범은 때때로 피해자 가족으로 향하기도 한다. 2015년 가와사키 하천에서 한 남자 중학생이 학교 급우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건에서도 비난은 가해자뿐만 아니라 “부모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냐?”며 피해자 어머니를 향했다. 이 어머니 역시 일과 육아에 쫓기는 싱글맘이었다.

 

이런 비난을 접할 때마다 이 사회의 잔혹함에 말을 잃게 된다. 이 나라는 싱글맘에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눈꼽만큼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왜인지 ‘넘쳐흐르는 모성’만 강하게 요구한다. 그리하여 모성이 있으면, 어머니의 사랑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고 정신론만 강조한다. 그것도 ‘저주’의 하나일 것이다.

 

여기 쓴 것 같은 ‘저주’만 묶은 한 권이 4월 5일 출판된다. 타이틀은 < ‘여자’라는 저주>(슈에이샤 크리에이브). 


가장 답답한 것이 성별을 바꾸면 비대칭성이 확실해지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기 쓴 것들을 성별을 바꿔 나열해 보자면, 어린이집에 떨어져 일을 그만 둔 아내가 있어도, 반대로 어린이집에 떨어져서 일을 그만둔 남편을 나는 알지 못한다. 많은 여성들이 어릴 때부터 “열심히 해라” “노력해라”는 말을 듣지만 더불어 “남자보다 성공하지 마”라는 메시지도 함께 듣는다. 하지만 “노력해라. 그치만 여자보다 성공해선 안 된다”는 더블스탠더드에 처한 상태에서 성장하는 남자는 없다. 또 미디어에는 가끔 ‘남편의 불륜을 사죄하는 아내’가 등장하지만 ‘아내의 불륜을 사죄하는 남편’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성별을 바꿔보면 “이거 이상하지, 그치?”하고 제시할 수 있는 것들을 ‘필살! 페미니즘으로 돌려주기!’라고 이름 붙였다. 책에는 ‘여자니까 ( )( )할 수 있는 게 당연하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하는 아저씨들을 ‘침묵하게 하는 법’도 넣었다. 서문의 일부는 내 블로그에서도 공개중이다.  

젠더를 테마로한 책은 나에게도 처음이다. 더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Me Too’운동에서 큰 용기를 받았고, 그렇게 정했기에 출판되었다. 


여자도 남자도 꼭 읽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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