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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Oct 10. 2016

월세 심사에서 인생의 벽에 부딪히다

삶이 쉽지 않은 여자들에게

#일본 작가 <아마미야 카린>씨가 쓴 글에 공감하여, 번역해 올립니다.


최근 ‘독신 여성으로 내 앞의 생에 불안을 느끼는’ 상황을 겪었다. 계기는 이사를 생각한 것이다. 일하면서 도중에 인터넷에서 월세정보를 체크하고, 복덕방을 돌아다니며 방을 몇 곳 보았는데, 딱히 맘에 드는 곳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애완동물 입주가능’한 집을 찾는 것은 가시밭길이다.

그러던 중 기적적으로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았다. “여기다!” 기쁜 마음에 신청을 했는데, 다음날 복덕방 청년에게서 우울한 목소리로 전화가걸려왔다. “너무 죄송한데…….” 월세심사에서 NG를 먹었다고 한다.

아니? 대체 왜? 혼란스러운 나에게 우직한 청년은 말했다.

“아마 직업이 불안정해서가 아닐까 싶어요.”


그렇다. 나는 프리랜서 작가다. 하지만 지금까지 방을 빌릴 때 “펜 네임이 뭐예요?” “어떤 매체에 글을 쓰시나요?”라며 자질구레한 질문들을 받기는 했지만, 이렇게 단번에 깔끔하게 차여본 건 처음이다.


“그리고 보증인이신 아버님 연령이 65세를 넘기셨기 때문일 거 같아요.”

자영업자인 부친은 지금 69세다. 아직도 현역으로 일을 하고 있지만, 보증인 연령은 65세까지로 규정되어 있는 것 같다.


독신여성, 프리랜서자 불안정한 글쟁이, 고령의 아버지. 이 3가지가 합쳐지니 ‘집을 빌릴 수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눈 앞이 캄캄했다.

그러고 보니 10년전 취재 때 만난 한 싱글여성의 말이 떠올랐다. 고학력, 비정규직, 수입이 불안정했던 비슷한 연배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아직 괜찮지만, 아버지가 고령이 되거나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독신에 비정규직의 저소득 여성인 나는 아마 방도 못 빌리게 되겠죠.”

그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대답 차원에서 고개를 끄덕인 것 뿐이다. 나에게 그런 현실은 철저히 남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30대였다. 월세 임대를 구하는데 딱히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아르바이트만 했을 때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니 그렇게 여겼을 뿐이다. 돌이켜보니,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부친은 지금보다 훨씬 젊었고, 수입도 훨씬 많았다.


이제 나는 41세, 프리랜서 글쟁이고, 아버지가 고령이란 ‘삼중고’의 몸이 되었다. 그녀의 ‘나쁜 예감’은 나에게도 적중했다.

게다가 복덕방에서 “월세 심사에 떨어진 이유가 금융기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서가 아닐까요?”라고 의심까지 받자, 마음이 심하게 상했다. 금융기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은 거절을 당한다는데, 내가 블랙리스트에 오를 까닭이 없다. 왜냐면, 나는 직업이 불안정하단 이유로, 신용카드 한 장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신청을 해도 심사에서 매번 떨어졌다.

그래서 나는 데이빗카드를 쓰며, 인터넷결제를 못하기 때문에 매달 회비를 따로 내야 해서 돈이 더 든다. 사회적인 신용이 없으면 없을수록 불필요한 여분의 비용이 추가된다.


앞서 지금까지 방을 빌릴 때 문제가 없었다고 적었는데, 글쓰는 일을 시작한 후에 트러블을 겪은 적이 있다. 보증인만 있으면 집을 빌려주겠다던 사람이 “당신의 경우, 직업이 불안정하니까 보증회사를 붙여야 한다.”며 그 비용으로 수만엔을 청구했던 적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시절보다 프리랜서 글쟁이란 자영업자가 되면서 사회적 신용이 더 낮아졌다. 월세 심사가 매년 조금씩 엄격해진 사정도 있겠지만, 확실히 ‘정사원으로 일하는 안정된 사람들’보다 더 다양한 비용을 지불하게 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얘기를 술자리에서 했더니 “그걸 파버티 택스라 부른다.”는 말을 들었다. 파버티 택스=빈곤세. 가난한 사람일수록 부담이 더 커지는 현상이다. 지금까지 나에게 일어난 일도 그렇다. 어디 그뿐인가. 안정된 정사원이 돈을 빌리는 것보다 가난한 사람이 돈을 빌릴 때 이자가 더 많이 든다.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이자가 높은 금융회사 밖에 돈을 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 최고봉이 사채업자다.


“빈곤에는 돈이 든다.”

빈곤문제를 테마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금리뿐만 아니라, 매일 조금밖에 쓸 돈이 없다보니 식료품을 대량으로 구입해서 돈을 절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쌀이나 전기밥솥을 살 돈이 없다보니, 매일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도시락을 사서 충당하기 때문에 쌀을 사서 밥을 지어 먹는 것보다 돈이 더 든다. 게다가 노숙 상태라면, 세탁, 목욕에도 큰 비용이 들고, 서랍장 대신 쓰는 코인락커도 공짜가 아니다. 매일매일 돈을 지불해야 하는 일이 더 늘어난다.

빈곤하지는 않아도 나처럼 사회적 신용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면 결과적으로 같은 파버티 택스를 지불하는 처지가 된다.


다시금 나의 ‘사회적 신용도 낮음’과 마주하니 미래에 대한 불안이 몰려왔다. 이 상태로 이사도 못하고, 불안정한 직업인데 일도 들어오지 않게 되고, 만일 부모의 간병까지 하게 된다면……. 월세 심사에 떨어진 후, 이런 저 런 생각이 밀려와 ‘미래엔 길거리에서 죽는 게 아닐까?’란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나만의 고민이 아니다. 모든 불안정한 계층이 안고 있는 문제다. 특히, 여성이다. 20-64세 독신여성 3명 중 1명이 빈곤 라인 이하의 수입으로 살고 있고, 65세 이상 독신 여성의 빈곤율은 47%(고령 독신 남성은 29%)다. 즉 절반이 빈곤층이다.


반대로 고령남성의 빈곤율은 지난 몇년간 개선되는 추세다. 그 이유는 베이비붐세대가 65세 이상 고령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고도경제성장기를 살아온 그들에겐 ‘연금수입’이 있다. 연금 덕분에 남성빈곤율은 개선되었지만, 고령여성의 경우 개선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 세대의 경우엔, ‘연금으로 빈곤율 개선’이란 반가운 일 따위 일어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우리가 65세 이상이 되었을 때 독신 여성의 빈곤율은? 지금도 절반이 빈곤인데, 그때쯤이면 80-90%쯤 되어있지 않을까?

 

이것저것 생각해보니 내 자신의 미래도 그렇지만 일본의 미래까지 불안해보였다.

이전에 이 연재에서 ‘남성을 중심으로 한, 시대에 뒤쳐진 발상에서 나온 사회보장제도 설계가 여성의 빈곤율을 발생시킨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정사원 남편과 전업주부 여성, 플러스 아이’를 표준가구로 보고 그 표준가구에서 밀려나온 모자가정, 독신여성의 리스크가 높다고 적었다.


그 때 이렇게 지적했다.


“여성은 어릴 적에는 ‘아버지’란 남성이,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배우자’란 남성이 없으면 리스크가 높아진다. 그리고 현재 그것을 커버하는 제도가 없다.”


이제 나는 목소리를 높여 외치고 싶다.

‘(보증인적 의미로)기댈 수 있는 남자’-대부분의 경우 남편이나 아버지-가 없으면 여자는 ‘집을 빌린다’는 가장 기본적인 기반마저 유지할 수 없다고.

내가 특별히 불안정한 직업이라며 납득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왜냐면 여성의 60%가 비정규직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평생 미혼으로 사는 이들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속시원하게 털어놓자. ‘월세 심사에 떨어져 고민 중이 나’에게 ‘위장결혼’을 추천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농담이지만 매우 상징적인 얘기다. ‘65세 이하의 남편’이 있으면 이번처럼 퇴짜를 맞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점점 독신, 비정규직 여성이 증가할 텐데 그러면 ‘집을 빌리기 위해’ 정말로 ‘위장결혼’ 을 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만일  그런 필요성이 대두한다면 그 자체가 엄청난 구조적 차별에서 비롯한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또 심사에서 떨어질까봐 매일 벌벌 떨고 있다. 겨우 월세심사일 뿐인데, 지금까지 혼자 열심히 살아온 나의 모든 인생을 부정당한 기분이다. 그 불쾌함이 온종일 나를 감싸고 놓아주지 않는다.


어느 정도 연령까지는 ‘혼자 열심히 사는 것’이 좋은 평가를 받는데, 어느 연령을 넘기면 오셀로 게임의 흑백이 뒤집어지듯 모든 것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럴 때 ‘여성의 활약’ 같은 단어를 들으면, 일본이 아닌 먼 외국 얘기를 하는 것처럼 들린다.

어느 시대건 ‘가진 자’에게 ‘없는 자’의 현실 따위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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