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약자에게

강자가 잊은 기억을 약자는 기억합니다

by 김민정

-재일동포 희극인 '마르세 타로'가 <틴즈 포스트>(14호, 1998년 2월)에 게재한 글을, 그의 가족분의 허가를 받아 한국어로 번역해 게재합니다. 마르세 타로는 오사카에서 태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예능이 세계를 펼쳤고, 1인극으로 영화를 재현한 <스크린 없는 영화관>으로 각광받았습니다.


생전의 마르세 타로의 영상입니다.

https://youtu.be/6NX9wBEvMBA?si=zs_8Hf4FZUww05hI

예능인이다 보니 공연 등을 하게 되면 사인을 해달라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그럴 때는 주로 ‘기억은 약자에게’라고 쓰곤 한다.

어마어마한 의미부여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그 말 그대로의 의미다. 예를 들어 어릴 때 이지메를 당한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을 하지만, 이지메를 한 사람은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그런 것 말이다.

이런 일은 단순히 개인적 경험에 국한되지 않는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일본에 침략당한 적이 있는 한국인이나 중국인은 그 역사적인 사실을 절대로 잊을 수 없지만 대부분의 일본인은 그것을 잊었거나 잊고 싶어하는 것이 현실이다. 문부성의 사회과 교과서 검정 자세에 그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패전 후 50년이 되어가는데, 전쟁 때 아시아 각지에서 위안부를 강제적으로 끌고 온 사실을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상대국으로부터 지적을 당해 어쩔 수 없이 대응한다는 식이다.

기억은 약자에게 있다. 내가 꼭 예능인인어서가 아니라 누구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예능인으로서 약자에 대한 상상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훌륭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도 어떤 일에서 성공한 사람이라도 약자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다면 나는 그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다.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처음 당시의 종합잡지 <개조(가이조)>를 읽었다. 그 잡지는 중학생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잡지였지만 딱 하나 ‘하니 고로’의 논문은 읽을 수 있었다. 그만큼 읽기 쉬운 글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잊을 수가 없어서 틈만 나면 사람들에게도 전해왔다. 그것은 이런 내용이었다.

‘전쟁 이전의 일본은 가난한 나라여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100명 중 대학에 가는 아이는 1명꼴이었다. 그러면 그 아이는 다른 가난한 99명의 아이를 위해서 학문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99명을 지배하는 학문을 한 것이다.’

강렬한 인상을 받고 패전으로 인해 (일본에게) 주어진 새로운 민주주의에 희망을 걸었다. 그것이 논문 같은 문장을 읽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생각의 기준이 되었다.

‘약자에 대한 상상력’이란 것을 그냥 멋부리기 정도로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첫째 나는 전혀 멋쟁이가 아니다. 곧 60세가 되는데 50세가 되기까지 예능으로 먹고 살지 못했다. 무명의 예능인이었다. 오히려 ‘비뚤어진 근성’이란 게 더 적절하다.

또 비뚤어졌다는 점에서 보면 나는 골프를 하지 않고 골프를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골프를 하는 사람은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지금 일본에는 골프장이 2천개가 된다고 한다. 6대 도시를 빼면 전국에 40개 현이 있는데, 1현에 50개나 된다는 말이다. 1현 50개의 골프장, 이를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 빈곤함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

현실론이란 게 있다. 강자의 논리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젊은 당신이 현실적인 ‘성공’을 바란다면 나의 애기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강자의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 될 것이다. 나는 내 지론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당신이 인간으로서 행복을 원한다면 눈앞의 현실론에 흔들리지 말고 이상을 가져야 한다. 약자에 대한 상상력을 소중하게 여기기를 바란다. 두려워할 건 없다. 세속적인 욕망으로 허둥대다가 어쩌다 출세했다 한들, 나 정도의 나이가 되면 다들 비슷해진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체력저하를 겪게 된다. 이것만큼은 젊은 당신에게 내가 경험을 통해 자신있게 증명해줄 수 있다. 이상을 우습게 여기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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