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아키니쿠 드래곤(용길이네 곱창집)
정의신이란 극작가를 알게 된 것은 일본에 온 직후였다. 1993년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양석일 작가 소설)이 영화화 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같은해 한국에서는 <서편제>가 개봉되었고, 그 93년-94년 이 두 영화는 한국이라는 연결고리가 되어 큰 화제를 모았다.
양석일 작가가 택시 운전기사를 하며 모은 에피소드가 가득 담긴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는 필리핀 출신의 배우인 루비 모레노가 출연해 이 또한 화제를 모았다. 일본 영화에 동남 아시아 출신의 배우가 출연한 것은 이례적이었고 그것도 주인공이었으며 92년에 일본에서 데뷔한 신인 배우였고, 신인 배우에 여전히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있던 시절에 주인공을 맡았다는 것 자체가 색달랐다. 그는 그해 가장 유명한 배우가 되었고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필리핀 출신 배우이자 외국 출신 배우로 각인되었다. 서툰 일본어 발음, 그것도 오사카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는 어색해서 더욱 매력적이었다. 연기도 서툴고 사투리도 서툰데 그게 왜 그렇게 보면 볼수록 매력 넘치던지.
여하튼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정의신 작가가 담당했고, 감독은 고 최양일 감독이 맡았다. 재일동포 소설가의 소설을 재일동포 극작가와 재일동포 감독이 맡아 필리핀 배우가 출연한, 요즘 말로 글로벌한 작품이었다.
이 영화 이후 나는 정의신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들을 보기 시작했고, 1998년작 <사랑을 구걸하는 사람>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받고 큰 딸이 중년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 보는 이야기이다. 학대는 끔찍했고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2000년대 초반 나는 정의신 작가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후, 시부야의 오페라 시티 바로 옆으로 이사한 후, 아주 우연히 정의신 작가의 <야키니쿠 드래곤>을 만났다. 당일표를 사게 되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과 울음을 반복했다. <야키니쿠 드래곤>을 만난 후 나는 정의신이 만든 연극은 모조리 보러 다니는 팬이 되었고, 그의 글을 읽다가 반해서 그가 쓴 유일한 시나리오나 희곡이 아닌 에세이 두 편을 번역해서 <소설 도쿄>라는 단편집에 싣기도 했다.
야키니쿠 드래곤(용길이네 곱창집)은 정의신이 쓰고 연출한 연극으로, 2008년 일본의 신국립극장과 한국의 예술의 전당에서 한일 공동으로 제작되었고, 2011년에 한일에서 다시 공연되었고, 2016년에도 공연되었으며, 2018년에는 영화로 만들어졌고, 2025년 올해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10월에는 일본에서 11월에는 한국에서 무대에 오른다.
2025년 8월 29일 오늘은 29(니쿠=고기)의 날이어서, 오늘 도쿄에서 제작 발표회가 열렸고 우연히도 아니 운이 좋아 티켓을 얻어 관객으로 제작 발표회를 보러 갔다. 한국에서는 이영석 배우, 고수희 배우, 박수영, 김문식 등이 참석했다.
<스토리>
1970년 오사카, 엑스포 열기가 뜨겁다. 일본은 이제 전쟁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고도경제성장기에 돌입했다. 그치만 누구나 다 부자가 된 건 아니다. 오사카의 작은 마을, 전쟁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가난하고 왜인지 냄새도 날 것 같다. 야키니쿠 드래곤은 그런 마을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선술집이다.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회포를 푼다.
야키니쿠 드래곤의 주인은 재일동포인 용길이인데 태평양 전쟁에서 상이군인이 되었다. 한쪽 팔이 없지만 듬직하게 살아간다. 아내는 한국전쟁 때 사망했다. 그리고 지금은 영숙과 결혼해 살고 있다.
전처의 자식인 시즈카, 리카, 그리고 영순의 자식이 미카, 용길이와 영숙 사이에서 태어난 도키오가 같이 살고 있다. 시즈카는 다리가 불편하고, 도키오는 일본 사회에서 차별을 받는다. 1970년대 재일동포는 취직도 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일본에서 살 길이 막막한 이 남매들은 어떤 삶을 선택할까. 그들에겐 과연 선택이란 것이 있는 걸까. 그 선택은 미래의 행복을 약속할까.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서 더욱 씁쓸하고 서글프다.
마지막 장면은 정의신의 특허랄 수 있는 하늘하늘 떨어지는 꽃들이다.
거기엔 분명히 희망이 있다.
그런데 그 희망은 지금보다 풍족하게 살 것이다, 더 행복해질 것이다라는 희망이 아니라, 겨우 살아간다, 그것 자체가 희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또 한번 서글프고 아프고 씁쓸하면서도 그게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감지한다.
정의신이 그린 전쟁 이야기, 그리고 그후를 살아온 재일동포들의 이야기는, 늘 희망적이다. 그 희망은 그저 살아간다는 아주 소소한 것인데, 살아간다는 것, 살아남는다는 것, 기록한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 위로하고 공감한다는 것, 그런 인간애적 시선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일본 티켓팅은 이미 시작되었고, 나는 올해는 아이들과 함께 보러갈 생각이다.
올해 가장 기대되는 배우는 이번 기자 발표회에서 노래를 부른 정수연 배우이고, 일본 배우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무라카와 에리 배우다. 일본 드라마에 자주 등장해 감초같은 역할을 한다. 못생긴 역도 아주 예쁜 역도 커리어 우먼도 정 반대인 역도 다 잘하는 배우다.
배우분들 반짝반짝하고 기개 엄청나고 사실 기 센 걸로 안 지는 성격인 배우 분들 다 모인 것 같았다.
한국에서 연기하는 사람들의 교과서적인 작품이라 졸업발표로 많이 한다는데, 사실 정의신 작가님 작품 허가 안 받고 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그래서 정의신 작가님이 걱정이 많으신 터라 나도 좀 신경이 쓰였다.
한편 이 작품은 배타적인 풍조가 점점 확대되는 가운데 이민이란 과제 하에 보편적인 테마란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정의신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더불어 이번 공연이 마지막 공연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
기자 발표회 다 끝나고 정의신 작가님이 손을 흔들어 주셨는데 나에게 흔들어 주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흔들고 묵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