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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팝의 여왕, 다케우치 마리야와 마츠토야 유미

너와나의 소녀시대(17)

by 김민정

다양한 나라에서 일본의 시티팝이 인기라고 한다. 시티팝이란 1970년대-1980년대 일본에서 소울, 펑크, R&B, 디스코 등의 서양 음악이 일본의 가요곡과 만나, 독자적인 발전을 거친 음악 장르라고 정의된다. 명확하게 어디부터 어디까지라고 따지기는 매우 어렵다. 어두운 밤이 연상되는, 밤에 들으면 좀 울적해지는 스타일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도 있고, 화려한 네온 사인 아래 고독을 느끼는 인간의 군상을 느끼게 하는 음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의 시티팝하면 김현철, 김혜림, 유재하와 같은 음악이 아니었을까. 이치현과 벗님들의 인기곡 ‘집시 여인’도 지금 생각하면 바로 이 장르였던 것 같다.


일본의 시티팝을 견인해온 시티팝의 두 여왕이 있으니 바로 ‘플라스틱 러브’란 곡으로 알려진 다케우치 마리야와 ‘마치부세(잠복)’으로 인기를 얻은 마츠토야 유미다. 두 사람 모두 J-POP의 거장이라 불리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와 결혼했으며, 결혼 후에도 끊임없이 활동하고, 8090년대 수많은 드라마의 주제곡을 불렀다는 것이 특징이다. 다케우치 마리야는 맑고 높은 목소리로 주로 이룰 수 없는 사랑과 고독, 불륜을 노래했으며, 마츠토야 유미는 요염하고 당돌한 신세대 여성을 노래했으며 시티팝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 왔다.


1955년생인 다케우치 마리야는 고교 시절에 미국 일리노이주의 고등학교로 유학을 갔고 그후 일본으로 돌아와 게이오 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 밴드 동아리에서 활동하다가 코러스에 참가하기도 하며 노래 경력을 쌓아갔다. 1978년 앨범 <비기닝>으로 데뷔 후, 1979년에 ‘September’로 일본 레코트 대상 신인상을 수상했고, 신주쿠 음악상 금상, 이탈리아 산모레 음악제에도 참석했다. 1980년, 시세이도의 CF로 ‘이상한 복숭아 파이’를 선보여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키가 크고 날씬한 다케우치 마리야는 잡지에도 종종 등장했으며, 아이돌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음악의 프로페셔널로 성공을 꿈꾸던 다케우치 마리야에게 대중들이 원한 것은 아이돌이었다. 아이돌이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음악적 행보에 의문을 품은 그녀는 결국 병이 나 휴식을 취하게 되었고, 그 기간에 야마시타 타츠로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야마시타 타츠로는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국민 성탄절 송으로 유명한 작곡가로, 여전히 매년 이 곡 한 곡으로 억 단위의 저작권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여하튼 다케우치 마리야의 시티팝은 80년대 초반 야마시타 타츠로와의 결혼으로 전성기를 맞이했고 여전히 전성기에 있다. 결혼 후 아이를 낳은 그녀는 방송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드라마 주제곡을 다양하게 도맡게 된다. 트렌디 드라마가 인기가 있던 시절로, 시티팝과 트렌디 드라마는 그야말로 죽이 잘 맞는 궁합이었다. 1990년 <화요 서스펜스 극장> 주제가 ‘고백’, <처음 만났을 때의 너로 있어줘>의 ‘순애 랩소디’, <잠자는 숲>의 ‘ camouflage’등으로 얼굴 없는 가수처럼 활동했으며, 이 당시 발표한 베스트 앨범 <Impressions>는 300만장이 넘겨 팔렸고, 최근 시티팝 인기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남편이 작곡한 곡에 아내가 가사를 붙이는 스타일을 이 부부는 무려 40년간 함께 해왔다. 최근에는 인생찬가가 다케우치 마리야의 주된 가사 내용이지만, 8090년대의 가사들은 주로 불륜과 관계가 있다.


기무라 타쿠야가 출연해 한국에도 알려진 드라마 <잠자는 숲>의 주제가 ‘ camouflage’에서 ‘애인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을 서로 가지고 있지만, 마음이 통하지 않아 고독에 떨었다/감추고 있는 상처를 왜인지 당신만이 감싸 줄 수 있어/아주 먼 옛날에 만난 것 같은 기억이 자꾸만 떠오른다’고 노래한다. 영화 <맨하탄 키스>(아이돌 그룹 AKB의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가 감독, 각본을 담당)의 주제가 ‘맨하탄 키스’도 마찬가지로 불륜을 노래한 곡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셔츠를 입는 당신의 등을 바라봐’라고 노래한다. 드라마 <처음 만났을 때의 너로 있어줘>는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이며 주제곡 ‘순애 랩소디’에서 다케우치 마리야는 ‘당신을 빼앗는 것은 룰을 위반한 것일까요?’라고 묻는다.


다케우치 마리야의 가사는 스토리를 품고 있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셔츠를 입는 당신의 등’ ‘나는 조연이다’ ‘손끝이 슬쩍 부딪친 밤, 마음에 담아둔 생각을 감출 수 없어졌다’. 한편으로는 남자를 빼앗긴 여성의 마음도 노래한다. ‘당신을 데려 가려는 그 여자의 그림자를 두려워 하며 살았다’ 고 말이다. 슬프다, 아프다라는 단어를 하나도 쓰지 않고 아주 구체적인 당시의 상황과 기분을 일기처럼 적는다. 한편의 소설을 보는 것 같다. 불륜이라고 쓰고, 다케우치 마리야는 운명이라고 읽었다.


1985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생긴 후 수많은 여성들이 도쿄로 일을 하러 들이닥쳤다. 그녀들은 연애도 했을 것이다. 그 중에는 어쩌면 불륜도 있었을 것이다. 결혼한 회사의 상사와 운명적인 사랑을 하거나 우연히 첫사랑을 만났는데 이미 결혼을 했거나 그래서 불륜이 되어버린 상황은 드라마에서 자주 다루는 소재였다. 주연은 아니더라도 불륜을 하는 조연들은 언제나 티브이 속에 있었다. 이런 당시의 정황을 가장 재미있게 살린 사람이 바로 다케우치 마리야다. 불륜을 하는 여자들은 어찌 되었든 고독하다. 남자를 빼앗긴 여자들도 고독하다. 아니 인생 자체가 고독한 것이다. 도시의 여자들은 고독하다. 가족도 멀리 있고 가족들에게 연애사를 밝히고 같이 고민할 만한 용기도 없다. 도시에는 친구도 없다. 그런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가수가 바로 다케우치 마리야였다. 그리하여 불륜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왜인지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공감이 가고 힐링이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1954년생 마츠토야 유미는 1972년 ‘답장은 필요없어’란 곡으로 데뷔했다. 가수로 데뷔하기 전인 10대에 이미 작곡가로 데뷔했을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1976년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마츠토야 마사타카와 결혼했고 다케우치 마리야-야마시타 다츠로 커플처럼 마츠토야 유미-마츠토야 마사타카도 남편이 작곡을 하고 아내가 작사를 하는 관계를 계속 이어왔으며 원조 시티팝의 여왕이라 불렸다.


마츠토야 유미의 곡의 가사들은 다케우치 마리야와 달리 도시에서 태어난 도시 여자들을 그린다. 시티팝 명곡으로 알려진 ‘코발트 아워’는 고속도로를 달려 해변으로 가는 연인의 신나는 드라이브 현장을 담고 있다. “밤의 도시를 신나게 달려서 1960년대로/백밀러로 빨려들어가/흩어지는 빛속으로/항구로 닿은 고속도로/하늘을 흐르는 밀키웨이” 어떤 연애인지는 감을 잡을 수 없지만 상큼하고 발랄하고 우울하지 않다. 지브리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의 주제곡 ‘루즈의 전언’도 같은 앨범에 실린 곡이다. “당신도 지금쯤 눈치챘겠지/배스룸에 적은 루즈의 전언/바람을 멈추지 않으면/집에 가지 않을 거야”.


도시에 사는 여자는 기차를 타고 남자친구의 엄마를 만나러 간다. 남자친구 집 욕실 거울에 루즈로 바람 피우면 집에 가지 않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써놓은 채. 다케우치 마리야가 불륜을 저지르고 우울해 하는 여자들을 그렸다면 마츠토야 유미는 바람 피우는 남자친구를 둔 여자의 마음을 적고 있다. 남자가 바람을 피우면 너의 엄마를 찾아가서 일러 버리겠다고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지만 심장이 떨어질 것 같은 일침을 가하는 당돌한 여자들이 마츠토야 유미의 노래의 주인공이다.


남편인 마츠토야 마사타카가 작곡하고 마츠토야 유미가 작사한 ‘마치부세(잠복)’에는 당돌한 젊은 여자가 나온다. “저녁녘의 길거리 슬쩍 훔쳐 본 커피점/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낯익은 두 사람/그 여자가 왜 갑자기 예뻐진 건/당신과 이렇게 만났기 때문이군/좋아했어 당신, 마음 속에서 항상/조금 있으면 당신이 나를 보게 만들거야”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만나는 걸 알게 된 노래의 주인공은 앞뒤 가리지 않고 불륜에 뛰어드는 게 아니라 일부러 그 남자 옆에서 다른 남자가 준 러브레터를 읽거나 그 남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아 환심을 사고 그 남자가 자신에게 고백하게 만든다. ‘한여름 밤의 꿈’의 주인공은 더 유혹적이다. “뼈까지 녹을 것 같은 테킬라 같은 키스를 하고/밤하늘도 숨이 멎을 것 같은 유혹적인 댄스를 춥시다” 노골적으로 상대방을 유혹한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도시의 얌체 같은 여자들, 연애를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여자들을 마츠토야 유미는 약간 허스키하면서 고음으로 화려하게 노래했다. 여성의 욕망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그려낸 가수는 드물었고 이렇게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성공한 여성가수도 드물다.


다케우치 마리야와 마츠토야 유미 두 시티팝의 여왕도 이제 60대 후반으로 70대를 바라보고 있다. 여전히 전성기 시절 목소리와 미모까지 완벽하게 관리하며 가수로 활약 중이다.


최근 다케우치 마리야의 곡들의 가사는 크게 바뀌었다. 연애보다 삶에 대한 애착, 그리고 감사로 가득하다. 2007년 발매한 앨범 <데님>에 수록된 ‘인생의 문’은 시간이 빨리 가니 인생을 즐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명랑하게 뛰놀던 어린 날들은 저 멀리/정신을 차리니 쉰이 넘은 내가 있구나/믿을 수 없는 속도로 시간이 간다는 것을 알게 되자/아무리 작은 일도 기억해두라고 마음이 말했지” 활짝 핀 벚꽃과 산에 든 단풍을 몇 번 더 볼 수 있을까, 하며 생을 아쉬워한다. 다케우치 마리야의 감성은 불륜 또는 배우자가 아닌 또다른 인생의 동반자에 대한 애정에서 조금씩 나 자신의 인생으로 포커스가 바뀌었다. 다케우치 마리야가 작사를 한 곡은 아니지만 2014년에 발매되어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생명의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언젠가는 누구라도 이 별에 안녕을 고할 때가 오겠지만/생명은 이어져 갈 거야/태어난 것 길러진 것 만났던 것 웃었던 것/그 모든 것에 감사를/이 생명에 감사를’.


나이가 든 다케우치 마리야는 인생 찬가를 부르며 환하게 웃는다. 다케우치 마리야도 마츠토야 유미도 자주 앨범을 발표하지는 않는다.


2020년에 발매된 마츠토야 유미의 최신 앨범 <심해의 거리>는 바다 깊은 곳을 걷는 듯한 차분한 앨범이다. 남성을 압도하는 여성의 강인함은 여전하다.


시티팝의 분위기가 물씬한 ‘모르는 사람끼리’는 마츠토야 유미의 매력으로 빛이 난다. “말을 참 못 알아듣는 인간이군/이제 모르는 사람이라니까/서로 접촉할 것도 없어/나와의 추억은 모두 삭제해줘/새로운 길을 걸을 거니까” 헤어지고 나서 외롭고 가슴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도한 얼굴로 “나를 삭제해줘”라고 말하는 당당한 여성은 건재하다. 사운드는 훨씬 세련되어졌고 음악적 기교도 훌륭하다.

두 시티팝의 여왕이 100살까지 건강하게 살아 더 많은 음악을 발표해주길 기대한다.


참고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다케우치 마리야의 곡들은 이하이다.

‘사랑의 폭풍(고이노 아라시)’

https://www.youtube.com/watch?v=NlOtJyGEPUw


‘맨하튼 키스’

https://www.youtube.com/watch?v=WzECYdWS1b8


‘셉템버’

https://www.youtube.com/watch?v=32thxFRARPE


참고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츠토야 유미의 곡들은 이하이다.

‘론도’

https://www.youtube.com/watch?v=6r2KHT5xxUM


‘마치부세(잠복)’

https://www.youtube.com/watch?v=jMYtD5duMvY


‘Hello, my friend’

https://www.youtube.com/watch?v=K6dmZhdCY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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