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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여자와 순악질 여사의 등장

너와나의 소녀시대(20)

by 김민정

8090년대에는 심형래와 같은 바보 연기, 김병조, 주병진으로 이어지는 뉴스형 개그, ‘회장님 회장님’으로 정치 풍자 개그를 보여준 고 김형곤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심형래가 바보 캐릭터로 기성세대의 세태를 꼬집는 역할로 어린이들을 사랑을 독차지 했고, ‘회장님 회장님’은 5공 청문회를 재현해 당시 정치 상황을 고발했으며, 1987년에 시작된 <쇼비디오 자키>의 ‘네로 25시’에서는 최양락이 폭군을 연기해 지금과 비슷한 남녀평등 문제, 농촌 문제 등등을 화제로 삼았다.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않으려는 회장님 역의 고 김형곤, 역시나 모든 사회문제에 일말의 관심도 없으며 오로지 권력 유지에만 집착하는 왕 네로 최양락은 어른팬은 물론이고 어린이팬들도 거느리고 있었다. “밥 먹고 합시다” “잘될 턱이 있나”는 당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남성 개그맨 전성시대와 같던 시절에 등장한 혜성같은 캐릭터가 바로 ‘별난 여자’의 박미선이다. 1988년 MBC 개그 콘테스트 금상으로 데뷔한 후, <일요일밤의 대행진>에서 ‘나의 이야기’를 선보였다. 많은 개그맨들이 등장해 연기로 재미를 보여주는 콩트형 개그가 주였던 시절에, 박미선은 혼자 무대에 서서 스탠딩 개그를 선보였고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을 압도했다. 조선일보(1988년 7월 22일)는 당시 박미선을 ‘밥 호프식 특유의 능청 연기 <스탠딩 개그’의 주인공 개그우먼 박미선’으로 소개하며 “반전에 의한 코미디란 시청자들을 계속 몰고 가다 막다른 골목에서 이야기 머리를 홱 돌리고 자기는 도망가는 수법으로 쟈니 윤이나 자니카슨 봅 호프 등 세계적인 코미디언들이 즐겨 사용하는 기법”이라고 소개했다. 당시 조선일보에 소개된 박미선의 개그를 보자.


“쌍동이 동생이 있었는데. 집안이 어려워서 미국으로 입양갔어요. 제가 방송일을 해서 돈도 벌고 하니까 갑자기 동생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수소문을 하고 있는데 마침 얘가 프리올림픽쇼에 출연하기 위해 한국에 온다지 뭐예요. 여러분도 아마 아실 걸요, 브룩 쉴즈라고……”


“우리 언니는 남자직업으로 군인하고 의사를 가장 싫어했는데 글쎄 얼마전 결혼한 ㄱ러 보니까 상대가 군의

관인 거 있죠…….”


‘나의 이야기’로 스탠딩 개그의 새로운 스타로 등극한 박미선은 그후에도 같은 흐름을 지속한다. 이번에는 ‘별난 여자’다. 매번 게스트들이 등장해 박미선이 이들에게 주눅들지 않고 할 말은 다하는 입장을 유지한다. 박미선은 시종일관 나긋나긋하지만 능청스럽다.


‘별난 여자’에는 소방차, 박남정, 이상은 등 당대 인기 스타들이 출연했다. 소방차가 나왔을 때 박미선은 “어, 어디서 많이 본 분 같은데. 아 맞다 그때 목욕탕 불 났을 때……” 하면서 입을 가리고 웃는다. 그러더니 농담이었다며 종이를 한 장 꺼내 “좀 적어주세요.” 하더니 “전영록 씨 전화번호 좀 적어주세요.”라고 한다. 지금 보면 몹시 무례한 개그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당대의 스타들을 이렇게 푸대접할 수 있는 그 컨셉만으로도 웃음이 터질 수 밖에 없는 코너였다.


박미선의 행보는 그후 이봉원과 부부를 연기한 ‘철없는 아내’로 이어진다. ‘철없는 아내’에서 박미선은 전업주부이며 집에서 남편을 기다리고 요리를 못하는 아내로 등장한다. 박미선이 요리를 해주자 남편인 이봉원은 국이 소금물이라며 화를 낸다. 그러자 무대 조명이 꺼지고 박미선의 독백이 시작된다. “우리 사랑으로 뛰어넘기엔 소금물의 벽이 너무나 높기에”라며 집을 뛰쳐나가라려고 한다. 그러자 이봉원은 “우리 소금물의 벽을 사랑으로 뛰어넘어 보자”고 회유한다.


티격태격 하면서도 티키타카가 되는 부부를 열연한 박미선과 이봉원은 이 코너를 통해 결혼했고 박미선은 결혼을 계기로 많은 방송에서 잠시 사라지게 된다. 당대 최고의 개그우먼도 결혼 앞에서는 가정을 지키겠다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자연스러웠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1984년 데뷔한 김미화는 1987년 <쇼비디오 자키>의 ‘쓰리랑 부부’의 순악질 여사로 온국민의 사랑을 받게 된다. 일자 눈썹의 순악질 여사는 길창덕의 만화 ‘순악질 여사’의 캐릭터를 차용했으며 만화 ‘순악질 여사’는 1980년 장미희, 이영하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순악질 여사’는 이름 그대로 아주 억척스러운 여성이다. 일자 눈썹을 하고 한복을 입고 야구 방망이를 하나 들고 다닌다. 돈을 밝히고 남편을 채근한다. 불우이웃 돕기 바자를 한다며 동네 사람들에게 억지로 돈을 뜯어내거나 남편의 물건을 가져와서 판다. 남편의 출장에 동행해 일을 방해하기도 한다. 구박 받는 남편과 남편을 주눅들게 하는 아내라는 컨셉도 신선했다. 공처가라는 단어를 전국민에게 알린 코너이기도 했다.


한계레 신문(1988년 11월 13일)을 통해 한국 여성 노동자회 회원 서영주는 “평수 넓은 코에 흉측스러운 일자눈썹. 도저히 미인이랄 수 없는 여자가 맨날 잘생긴 남편을 달달 볶고, 장난기는 지나치다 못해 심술로 발전하고 게다가 야구 방망이를 들고 설치면서 남편을 위협한다. 이처럼 매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아내에게 꼭 잡혀 사는 남편, 이 상황이 바로 코미디인 것이다. 그러나 생각없이 웃어넘기는 화면 속에 동등하고 평등한 관계를 위해 부부에게 보내는 보이지 않은 강한 경고장이 숨어있다”고 평했다.


순악질 여사는 남편을 구박하기도 하지만 남편을 몹시 위한다. 생일상을 차려주고 편지까지 써서 읽어준다. 아주 평범한 남편을 둔 그녀의 몽둥이는 남편을 향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위협하는 것들, 그리고 서민들인 자신을 위협하는 것들을 향하고 있다.


그녀의 순악질적인 요소들은 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패가 되고 가정을 지키는 든든함이 된다. 마을 주민들에게도 순악질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매번 국악인 신영희 명창이 등장해 혼을 내고 타일러서 마무리되는 교훈적인 코너이기도 했다.


순악질 여사 김미화도 한때는 “나도 알고보면 얌전한 여자”(동아일보 1991년 3월 22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녀 자신은 자신을 집에서는 다정하고 다소곳한 아내라고 주장했으며, 동아일보는 “TV에 나오는 여성들이 대부분 요조숙녀형인데 반해 다소 짓궂고 거친 그녀의 모습은 또다른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모양이다”라고 적었다.

박미선, 김미화는 뛰어난 연기력, 재빠른 두뇌회전과 좌중을 집중시키는 카리스마를 겸비해, 별나고 악질적인 캐릭터를 통해 조금 더 다양한 여성들을 선보였으며, 한국의 코미디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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