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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들의 천국

김민정의 일상다반사(34)

by 김민정

“엄마, 양말이 없어?”

“뭐라고? 양말이 왜 없어?”

“진짜 없어.”

“무슨 소리야.”

우리집에 양말이 대체 몇 켤레 있을까? 한 사람당 열 켤레라고 치면 쉰 켤레는 되는 셈이다. 어디 쉰 켤레만 될까? 족히 백 켤레는 되지 않을까?

막내는 주로 <귀멸의 검>의 캐릭터 양말을 신는다.

큰애는 두께가 두꺼운 스포츠 양말을 선호한다.

민감한 둘째는 발목이 딱 붙지 않는 스타일만 좋아한다.

양말에도 이렇게 취향이 있다. 남편은 도톰한 양말을 여러 개 가지고 있고 나는 아예 양말을 신지 않아 두 세 켤레 밖에 없다.

양말은 빨아서 말릴 때 짝을 찾아주지 않으면, 도저히 그 짝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양말 짝찾기 대회를 벌여, 아이들을 모아 가장 빨리 짝 찾는 아이에게 용돈주기 서비스라도 해야 한다. 짝이 나오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체 짝이 없는 양말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한 달을 기다려도 짝이 나오지 않는 양말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내가 주부가 되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남편은 빨래를 널 때 양말 짝을 찾아서 곱게 너는 사람인데, 나는 스피드에 치중하는 인간인지라 양말 짝을 찾아서 너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빨리 너는 것만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나는 짝없은 양말들은 빨아서 마른 빨래통에 넣어둔다. 거기 다 모아두면 언젠가 짝이 나오지 않을까. 그러나 석달이 지나도 짝이 안 나오면 버리는 수 밖에 없다.

우리집 어딘가에 8차원쯤 되는 구멍이 있어서 양말이 어느날 모두 그곳으로 가버리는 것일까?

양말들의 천국이 어딘가쯤에 있는 게 아닐까?

눈에 확 뜨이는 빨간 양말이 말한다.

“눈에 이렇게 뜨이는데 내가 어쩌다 한 짝만 남았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내 한 쪽은 어디에 있을까? 바람에 날아간 게 분명해.”

노란 양말이 덧붙인다.

“나는 세탁기 뒤에서 삼년을 기다렸는데 아무도 찾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이곳에 오게 되었지.”

흰 양말도 할 말이 많다.

“누구나 다 가진 흰 양말인데,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외톨이가 되었을까?”

줄무늬 양말은 이젠 아이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레고상자 안에서 일년을 지내다가 양말들의 천국에 발을 디뎠고, 레이스 양말은 속옷 서랍에 들어 있다가 제 몫을 다 하지 못하고 천국까지 왔으며, 검은색 반양말은 옷장 밑에서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쓰고 무려 오 년을 보냈다고 했으며, 90년대에 유행했던 루즈 삭스는 걸레가 될 뻔 했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양말들의 천국에선 저마다의 색과 저마다의 무늬와 저마다의 재질을 가진 양말들이 오손도손 모여 희희낙락 살아간다. 어떤 양말은 따뜻한 햇볕 아래서 몸을 말리고, 어떤 양말은 따뜻한 온수탕에 들어가 오랜 피로를 풀고 어떤 양말은 오랜 때를 제거하려고 거품 목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구 한 켠의 도쿄에서 나는 오늘도 그렇게 양말들의 천국으로 사라진 양말들을 찾아, 세탁기 뒤편에 긴 막대를 넣어 휘저어 보고, 침대 밑을 보고, 아이들 책상 위를 찾아보고, 혹여 타월 사이에 섞여 들어간 게 아닌지 보고 또 보게 될 것이다.

양말과 속옷은 왜 사도 사도 항상 부족한 걸까?

“엄마, 양말이 없어.”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꼭 듣는 말이다. 급하게 빨랫줄에 매달린 걸 가져오기도 하고, 세탁기 속에서 건조된 것들을 가져오기도 한다.

요즘은 꾀가 늘어서 양말만 모아서 건조까지 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양말짝이 사라지는 것을 줄일 수 있다.

단순히 ‘빨래’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 과정은 복잡하다. 가끔은 표백도 해주어야 하고, 냄새 제거도 해줘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흰 옷과 색깔이 있는 옷을 나누어 빤다고도 하는데, 나에겐 그런 재주까지는 없다. 세제를 고르고 사오는 것도 큰일 중 하나다. 일본처럼 습기가 많은 섬나라의 경우엔 세탁 후 냄새가 나지 않는 세제를 골라야 한다. 세탁기가 다 빨았다는 소리를 내면 바로 가서 탁탁 털어서 널어야 하고, 때가 되면 걷어서 개서 치워야 한다. 너는 것도 걷는 것도 개는 것도 치우는 것도 일인데, 나에게 가장 어려운 관문은 가족별로 나누어 각자의 옷장에 넣는 일이다. 아이들과 남편을 시키면 그만이지만, 그럴 상황이 아닐 때도 있다. 우리집처럼 가족이 다섯이나 되어서 빨래를 매일 최소 두 번은 돌려야 할 경우, 첫번째 빨래는 햇볕에 말려야 좋은 것, 주름 때문에 잘 펴서 말려야 하는 것을 먼저 돌려야 하고, 두번째 빨래는 양말처럼 자질구레한 것들로 채워서 건조기까지 돌리는 법이 가장 효율적이다. ‘빨래’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게 애석할 정도다. 내가 어릴 땐, 탈수기가 별로도 설치되어 있어서 빨래가 끝나면 탈수기에 넣어줘야 하는 과정도 포함되었다. 탈수를 빨리 하지 않으며 금세 냄새가 나기 때문에, 빨래가 끝나는 시간을 잘 기억해 두는 것이 중요했다. 혼자 산다면 세탁기 없이 동전빨래방에 다니며 살고 싶다.

오늘 세어 보니 짝없은 양말이 여덟이나 된다. 그나마 양호한 걸까? 우리집 짝 없는 양말들은 때론 인형옷이 되기도 하고, 때론 차가운 쭈쭈바의 커버가 되기도 한다. 언젠가 짝을 금세 찾을 수 있는 그런 양말이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아예 우리 남편처럼 모든 양말을 하나로 통일해버리면 굳이 짝을 찾지 않아도 되는, 모두가 짝이 되는, 그런 인생을 살 수도 있다.

여하튼 양말들에게도 부디 천국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하루를 지탱해주는 옷과 양말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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