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대홍수
넷플릭스에 영화 <대홍수>가 떴다. 소셜 미디어에선 혹평이 다수였다.
왜? 2019년작 영화 <엑시트>처럼 상큼발랄하면서 가슴 뛰는 그런 액션 대자연 공포 영화가 아니어서?
나는 <대홍수>가 사실 너무나 좋았다.
대홍수는 어느 미래의 얘기다.
인류 앞에 대홍수가 나타났다.
예견도 예언도 없었다.
어느날 아침, 아이가 깨워 일어나 보니 거실 바닥이 물바다다.
창문 밖을 내다 보니 아파트가 잠겨 있다.
엄마 안나(김다미 배우)는 아들 자인이를 데리고 옥상으로 대피하려고 한다.
그런데 한 남자가 나타나, 이제 당신의 연구가 도움이 될 때가 왔다고 말한다.
그러니 어서 옥상으로 대피하자고 한다.
아무나 구할 수는 없다. 구하지도 않는다.
인류는 대홍수라는 크나큰 절망 속에 빠져 있고
아주 유능한, 그야말로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자만이 극진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어느 젊은 여자이자 엄마인 과학자가 이 세상을 구하는 구원자라니!
우와 너무 멋지지 않는가.
나는 모성을 믿지 않는다. 내가 엄마가 되어 봐도 그렇다.
내가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의 도덕인가 윤리 교과서에 부모의 사랑은 맹목적이라고 배웠다.
교사는 우리에게 맹목적에 빨간 줄을 그으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맹목적이란 단어는 시험에도 나왔다.
누군가는 그 맹목적이란 단어 앞에서 용감해지기도 하고 털썩 주저 앉기고 한다.
안나는 처음엔 주저 않는다. 하지만 꾸준히 용감하다. 끈임없이 용감하다.
아이를 지키려는 마음을 모성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때론 부성도 아이를 지키고 인류애도 아이를 지킨다.
굳이 모성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 까닭에 여성들이 인생은 자꾸 피곤해지는 것이다.
여하튼, 안나가 아이를 구하는 것이 인류를 구하는 것이고
안나가 감정에 솔직하고 자유로운 것, 그리고 아이와 공감하는 것이
인류를 구하는 열쇠가 된다.
여성, 아이가 인류 구원의 키포인트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우리는 수많은 남성 히어로들을 봐왔다. 그들 중엔 물론 아빠도 있었다.
좀비 아포클립스에서 인류를 구하는 사람은 윌 스미스다. 큰 키에 월등한 체격을 자랑한다.
우주 전쟁에선 톰 크루즈가 인류를 구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우리는 수많은 평범한(?)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남성 히어로들을 알고 있다.
물론 여성 히어로도 있다.
터미네이터의 린다 해밀턴이 문득 떠오른다.
그 외에는 디즈니의 공주님들도 모두 히어로다. 그녀들은 싸우고 얻는다.
물론 드레스도 입고 노래도 한다.
반면 안나는 정말이지 너무나 평범한 여성이다. 아니 엄청난 과학자이다.
하지만 티셔츠에 편안 바지 하나 입고 아이 데리고 옥상까지 가는 것만이 희망인 아주 소소한
소시민으로 그녀는 그려진다. 엄청난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자신의 연구가 이렇게
쓰일지는 상상도 못한 것처럼 평범한 인상이다. 엄청난 미모를 뽐내며 여성성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냥 평범한 엄마이고 아주 평범한 방식을 계속 반복하면서 아이와 인류를 구한다.
나는 그 작은 컨셉이 너무나 좋았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수많은 엄마들이 매일 아이를 구한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깨우고 학교에 보내고 밥을 하고 청소와 빨래를 하고 일도 하고 그렇게 아주 평범하게 보이는 것들이 사람을 구한다.
그래서 나는 <대홍수>가 너무나 맘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