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가 되어보니(엄마의 도쿄 파트2)
엄마는 밝은 사람이었다. 엄마는 그 시절치고는 160이 넘은 키였고 다리가 길고 늘씬했고 화려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자였다. 서울 시내를 나가면 모두가 뒤돌아볼 정도이고 영화감독이 엄마에게 배우가 되라고 권유했고 길거리 캐스팅으로 실제로 모델 소속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엄마는 멋진 사람이었다.
엄마는 평생을 멋지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의 결혼은 자신의 멋짐을 알아줄 사람과 더 멋지게 살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아빠, 그러니까 우리 외할아버지는 위암에 걸리셨고, 결혼하기 전 아빠는 외할아버지를 보러 여러번 병원을 드나들었다. 지극정성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그걸 믿고 결혼했다. 대체 거기서 뭘 믿었다는 걸까. 성실함, 아둔함, 그치만 나를 챙겨주는 그런 마음을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빠는 결혼을 하자. 술을 먹고 집안 패물을 다 팔아먹고 내가 받은 돌반지도 팔아먹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역마살이 있다면 아마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아빠는 석달에 한 번 집에 들어왔다가 또 석달쯤 나가 지냈다. 그에게는 든든한 할머니와 어머니가 있었다. 그래서 돈 걱정을 하지 않거나 돈이 없으면 집으로 들어와 난동을 부리거나 집안 물건을 들고 사라졌다.
그래 그는 무책임한 인간이었다.
그는 한국의 스카이라 불리는 대학을 나왔지만 남 밑에서 일하기 싫어서 또 부모의 재산을 믿고 취업같은 건 하지 않았다.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장이라고 불리고 싶어했지만, 어디 돌아다니며 술마시고 돈쓰는 것만 알았지 가게를 열거나 회사를 차릴 생각은 못하는 그런 남자였다. 겉으로는 터프해 보여도 진정 속이 여린 사람이었다,고 모두가 말했다.
여하튼 그런 아빠에게 엄마가 잔소리를 하면 아빠는 폭력을 행사했다.
그 집에 엄마에게 폭행을 하는 사람은 아빠가 있었고, 더불어 엄마의 시아버지도 말도 못했다. 즉 우리 할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잠옷바람으로, 자기 아내(엄마의 시어머니이자, 나의 할머니)가 서울로 딸아이를 보러 가겠다며, 며느리가 눈치줘서 그런다고 하면, 금세 집안 물건을 깨부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핑계를 댔을 것이고 그건 쉽게 넘어가면 그만이었을 텐데, 할아버지는 그걸 진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엄마에게 화를 내고 물건을 던지고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했다.
내가 이런 글을 쓰면 우리 친척들은 제 얼굴에 침 뱉기라고 한다.
그건 그들이 이런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힘겨움과 학대는 그 집에서 가장 약하고 어린 우리엄마를 향해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당하지 않았으니 나에게 입을 다물라고 한다. 내가 왜 그래야 할까.
엄마는 아빠에게 맞고 내 동생을 때렸다. 나는 맞아본 적이 없다. 내가 앙칼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워낙 몸이 약해 주로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이기도 했다.
엄마가 분풀이할 사람은 남동생이었다. 남동생은 빗자루가 부러질 정도로 맞고 자랐다.
나는 커서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라고 했지만 엄마는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여러모로 미웠다. 그치만 엄마라서, 우리를 키워준 사람이어서, 미워만 할 수도 없었다.
그치만 엄마는 사과했어야 한다. 그러면 내동생이 지금처럼 정신적으로 심하게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는 것은 모두 나의 뇌피셜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슬퍼하고 아파했지만 안도했다.
나는 엄마가 맞아 죽느니 아빠가 먼저 사고로 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는 그런 일이었다.
아빠가 죽자 남동생은 허기지기 시작했다. 날씬한 체형이 1년새에 10킬로 이상 늘었다.
남동생이 자꾸 뭘 먹자 엄마는 햄을 남동생에게 던지며 쳐먹으라고 했다.
나는 그해 치통을 앓고 있었다. 이모네 집에서 밥을 먹다가 이가 아프다고 하자, 어디 이모부가 계신데 이가 아프다고 투정을 부리냐고 화를 내더니 치과에 데려가지 않았다.
커서 치아가 안 좋은 아이들은 어릴 적 방치되었거나 학대를 당해서라는 걸 알고나서. 나는 그냥 슬펐다.
엄마는 우리를 돌볼 여력도 없었다. 엄마는 너무 화가나 있던 거였다.
맞고 학대당하고 아무도 돌와주지 않는 여자는 분노하다가 무기력했다가 밖을 나돌다가, 서글퍼졌을 것이다.
엄마의 모든 분노가 서글픔이었단 생각이 든다.
나의 남편에 대한 분노 역시 서글프다는 의미란 생각이 든다.
글을 새롭게 잘 쓰고 싶다.
너무 오래 못 썼다. 엄마와 나의 그 후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써봐야겠다.
부디 내가 너무 분노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 분노하더라고 잘 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