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프롤로그
엄마가 죽었다. 엄마는 영영 행방불명되었다. 이승의 어디에도 엄마는 없고 이승의 모든 곳에 엄마가 있다. 엄마가 죽었다. 엄마가 우리 곁을 영영 떠났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에게? 그랬으면 좋겠지만 엄마는 개를 더 좋아했으니 어릴 적 우리집 앞 개집에서 개밥을 먹던 잘생긴 셔퍼드 케리에게 부탁하기로 한다. 케리는 어느날, 양계장에 갔다가 쥐약을 먹고 날뛰다가 죽었다. 우리는 그가 날뛰던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집 마당을 신나게 뛰돌던 그 아이는 붉은 눈을 하고 그야말로 날뛰었다. 누군가 밖에 나갔다간 물려죽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조용히 지켜봤다. 그야말로 숨을 죽이고, 조용히. 나는 지켜보지 않았다. 아니 지켜보지 못했다. 우린 왜 그를 구할 수 없을까. 그래서 울었다.
서울에서 시골마을로 이사를 와 친구가 없던 엄마에게 케리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때론 남편보다 정답고 아이들보다 살가운 존재였을 것이다.
엄마는 케리를 묻었다. 아무도 모르게 살짝. 비밀요원이라도 된 듯, 우리집에서 일하던 S네 엄마랑 같이 말이다.
하지만 케리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무덤이 파인 흔적만 남았다. 그들은 결국 그 무덤을 파헤쳐 케리를 보신탕해 먹으며 “시골에선 다 이런 거”라고 입맛을 다셨다. 정말 먹고 싶어서 그랬던 건지, 젊어서 시집온 우리 엄마를 주눅들게 하려고 자신들의 야만성을 남성성이라 믿어의심치 않으며 과시하려 했던 건지, 이제 와선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들이 지금쯤이라고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엄마의 절망에 반성하기를, 한 개의 죽음을 온전히 애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를, 바람이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바라본다.
엄마가 죽었다. 케리야, 엄마를 부탁한다.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이 너밖에 없구나.
엄마는 아빠를 만났을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우리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났을까
부디 우리 증조할머니가 나와서 얘기야 왜 이렇게 일찍 왔니, 너는 참 성미가 급하구나. 죽을 땐 좀 더뎌도 되는 거야, 하며 등짝을 스매싱한 후 꼭 안아주었으면 한다.
엄마가 그토록 사랑했던 우리 외할아버지가 나와 혼자서 애들까지 키워며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한국어로 영어로 일본어로 중국어로 그리고 독일어까지 쓰며 과찬을 해줬으면 좋겠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통역사였으니까 그쯤은 충분히 소화해내 줄 것이다.
항상 우리 엄마를 못마땅해했던 우리 외할머니도 엄마를 반갑게 맞아주며 그때는 우리가 가난해서 그랬다고 딱 한 마디만 해줬으면 좋겠다. 대학에 보내주지 못해 미안하다까지는 아니어도 대학에 가고 싶었지라고 꺼내주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그 모든 사람들도 반갑겠지만 케리를 가장 반가워할 것이다. 케리는 분명이 꼬리를 흔들 것이다. 머리를 숙일 것이다. 배를 드러내 보일 것이다.
엄마가 죽고 나는 울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그 가을에 불꽃놀이를 보러 갔다.
단숨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터져버리는 불꽃, 사람들은 그걸 인생이라 부른다. 우리네 인생은 그렇게 하늘로 쏘아올려진 불꽃놀이처럼 금세 소멸되는 것이다. 꼭 화려한 불꽃이 되라는 법도 없다. 누군가는 불발탄이 된다. 누군가는 그냥 어마어마하게 큰 버들나무 같은 불꽃의 들러리가 되기도 한다. 원래는 하늘에서 스마일을 지어보일 예정이었는데 각도에 따라 찌그러진 스마일이 되기도 한다. 참으로 인생같지 않은가. 그 다양성이 그리하다. 여하튼 우리는 엄마를 기리고, 나를 위로하기 위해 불꽃놀이를 보러 갔다.
엄마는 죽었다. 그리고 나는 남았다.
사람은 어차피 죽는다.
어차피 죽으니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은 엄마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가 아닐까.
어차피 죽는데 대충 살아 뭐하나. 열심히 살아야지.
어차피 죽는다면 하는데까지 해봐야 하지 않을까.
걸어서 하늘이라도 가봐야 하지 않을까.
엄마가 죽었다. 그리고 내가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