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도쿄(2)

동상이몽적 노고

by 김민정

딸아이는 학교에 간다. 댄스 레슨을 받는다. 어릴 적부터 발레를 해서 춤을 잘 추는 편이다. 한편으론 선천적으로 타고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어제는 댄스 레슨을 받고 밤 늦게 돌아왔다. 결국 오늘 학교에 가지 못했다.

나는 당연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너의 본분은 학업"이라고 외쳐보나 그런 건 통하지 않는다.

아이는 운다. 자기는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이다.

어제는 밤에 들어와 학교 과제까지 다 해놓고 잤다고 말이다.

엄마가 말했지. 일단 매일 2시간 공부할 시간부터 챙겨놓고 댄스를 생각하라고.

너는 왜 공부보다 댄스가 먼저니?

그건 네가 성인이 되어서 집에서 독립해서 나간 이후에 그렇게 하라고 말야.

지금은 내가 보호자야.

아이는 더욱 서럽게 운다.

엄마는 왜 내가 열심히 하는 걸 몰라주냐고 말이다.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해봐,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냥 그런 노고를 정말이지 하나도 어여삐 봐 줄 수가 없었다.


노고의 동상이몽이다.

부모가 생각하는 노고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밥을 잘 먹는 것.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그게 다가 아닐까. 지각하지 않는 것. 결석하지 않는 것.


그러나 아이의 입장에선 저런 기본적인 것들 중 하나도 제대로 하고 싶은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 기본에 일절 관심이 없으니까 말이다.


아이의 관심은 오로지 댄스일 뿐이다. 그래서 어떻게 먹고 살려고? 라는 생각이 들지만 예술가들은 예술가들이 길을 걸어가게 된다. 나는 보통사람이어서 그걸 알지 못할 뿐이다.


우리의 본분은 무얼까. 아니 상대가 나에게 기대하는 본분은 무얼까.

그걸 자꾸 놓치니까 입시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회사 면접에서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되는 게 아닐까.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평범하게 커주길 바란다. 앞서 말한 기본적 기대치에만 맞춰주는 걸 바란다.

그게 부모가 아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다르다. 세상은 변했고 그들만의 세상이 있기 때문이다.

양육이라는 거대만 문 앞에서. 나는 도대체 어떤 표정으로 어디에 서 있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먹고 사는 건 쉽지가 않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것이 있고 안 될 때가 있다.

그건 불가항력적이다. 나이가 들고 병들고 죽어갈 사람보다 아무래도 젊고 활기차고 몇 십년은 회사를 위해서 일해줄 사람을 기업은 바랄 것이다. 요즘 전직 활동을 하면서, 서운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조금 일찍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치만 아이를 키우느라 쉽게 전직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강사라는 일이 적성에 맞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 크니 생각보다 경제적인 부분들이 많이 부족하여, 전직을 고려하게 되었다. 하지만 쉽지 않다. 당연하다. 나이가 있고 일본에는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서 그게 특별한 경쟁력이 되지는 않는다.


얼마전 어느분이 나의 전직일기에 해외에까지 이력서를 보냈다는 댓글을 달아주셨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항상 누군가를 구한다. 나는 누군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나의 글을 읽고 나를 위해 댓글을 달아주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마웠다. 세상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고,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미워하려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나는 나이 들어 알게 되었다.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클까. 아이는 그냥 아이대로 자신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를 대학에 보낼 수 있을까. 일본의 입시의 절반은 내신으로 통한 추천지원(수시)이 된지 오래다.

나는 전직을 하거나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고민을 하기보다 일단 여러 회사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한다.


길은 원래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으로써 생기는 것이라고 고 이외수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과거의 나는 젊었고 그래왔고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길을 잘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적어도 나만의 장편 소설은 꼭 남기고 가고 싶다.

원래 죽음이란 게 두려웠는데, 요즘은 내가 죽어야 다 끝난다는 생각도 든다. 죽음은 구원일까. 궁극적으론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는 것, 그것만이 구원이다. 삶에서 구원을 찾아내기를 나는 바란다. 나도 아이도.

매거진의 이전글엄마의 도쿄(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