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그해 겨울 자주 꿈에 엄마가 나왔다. 엄마는 흰색과 검정색 체크 무늬의 반코트를 입고 있었다. 우리는 전쟁이 일어난 후 피난을 가던 중이었다. 엄마는 초췌해 보였다. 나는 엄마 손을 꼭 잡고 가다가 그 손을 놓쳤다. 그해 겨울,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나는 거의 매일 그런 악몽을 꿨다. 엄마가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가장 큰 공포였다.
그리고 실제로 엄마가 사라졌다. 엄마는 예순 하나였다.
젊은 날의 엄마는 말했다. 얘, 예순까지만 살면 되지. 뭘 더 바라겠니.
하지만 암 선고를 받고 엄마는 예순이 아직 젊은 나이란 걸 처음 알았을 것이다.
암의 진행은 너무 빨랐고 엄마는 너무 금세 수척해졌고 내가 어릴 적 악몽에서 나온 젊고 초췌하면서 어디 하나 기댈 곳 없는 표정으로 서 있던 그떄와 같은 모습이 되어 버렸다.
암으로 수척해져 가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어릴 적 꿈에 나온 엄마를 여러 번 떠올렸다.
엄마에겐 말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 아이였다.
굳이 말해봤자 서로에게 민망할 뿐인 이야기들은 그렇게 내 안에 쌓여갔고 그래서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되었나 보다 싶다.
아빠방이자 우리집 서재는 겨울에 무척 추웠다. 아무도 쓰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보일러가 꺼진 방에서도 나는 책을 읽었다.
나는 한글을 좀 독특하게 뗐는데 엄마가 매일밤 책을 읽어주면, 다음날 아침 그 책을 들고 엄마처럼 읽는 시늉을 했다. 밤에 엄마가 읽어주고 내가 그걸 아침에 일어나 떠올리며 다시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글을 읽고 있는 나를 우리 엄마가 발견한 것이다.
엄마는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모든 아이가 그렇게 큰다고 믿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사촌이 있는데 그 사촌이 한글을 일찍 뗐을 때 친척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걔는 역시 천재라고 했다. 나는 그후로도 걔는 역시 천재라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 나와 그 사촌은 성적도 비슷했다.
전교 1-2등에 전국에서 100위권 이내. 하지만 친척들은 단 한번도 나에게 천재라고 불러준 적이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따르던 이모가 나에게 "너는 노력형이지"라고 했을 때 나는 왜 그리 서운했을까. 노력형이면 어떤가. 하지만 왜인지 그 말투가 너는 머리는 별로인데 독하게 공부만 해서(그럼 또 어딴가)라는 뉘앙스로 들려 왜인지 서글퍼졌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나는 아주 조금 깨닫게 되었다.
천재는 여자아이가 아니라 남자아이에게 붙여주는 찬사였다는 것을. 그 사촌남자아이는 늘 천재였고 나는 늘 노력형이라 천재를 못 따라가 독하게 사는 애로 각인되어 있었다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나에게 깍쟁이라고 불렀다. 똑순이라고도. 왜 천재가 아니라 똑순이에 멈춰야 했는지 이젠 이모들도 돌아가셔 나는 누구에게도 물을 곳이 없다.
어린 나는 금세 자라 2026년 1월을 맞이했다. 춥다. 엄마가 없어서 서럽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쉴 틈이 없다. 입시를 시작하면 각 학교 원서를 넣는 일도 내 일이 된다. 남편은 내가 시키기까지 관심도 없다. 그리고 그는 진짜로 나에게 하나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대체 왜일까.
여하튼 2026년의 겨울도 춥다. 어쩌다 보니 전직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마음에 들고 라디오에 출연해 일본 뉴스를 전하는 일도 좋아한다. 그런데,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고 들어가는 돈은 점점 많아져서 연봉이 더 좋은 곳으로 가보자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곳 컨택을 했고 면접을 봤다. 이 나이쯤 되면 면접에서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도 절로 알게 된다. 긍정적인 것, 남 탓을 하지 않는 것, 눈을 보는 것, 가능하면 그 자리를 즐기고 그 회사를 알고 싶어서 왔다는 진심을 보일 것. 나이가 허들이 되기도 하지만 오늘 면접관에 따르면 "이제 젊은 사람들이 없어요."라고 한다.
겨울은 춥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나는 아직도 종종 악몽에 나온 엄마를 떠올린다. 한때 모델이었던 엄마는 옷을 참 감각적으로 입었다. 블랙 화이트의 체크무늬 코트를 입고 피난을 가는 엄마는 어딘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보였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었던 엄마가 없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지 누구에게 의논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다. 나는 혼자다.
태어날 때 혼자였고 지금도 그렇다. 가족이 있지만 그래도 사람은 혼자라는 그 화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악몽에서 엄마 손을 놓쳐버린 나는 지금도 엄마 손을 찾는다.
이젠 정말 엄마 손이 없다. 아무 것도 쥐지 않고 태어나, 아무 것도 쥘 것이 없는 인생은 이제 어디로 흘러갈까. 부디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후회하고 아프면서도 가끔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무 많이 바라지 말고 일상을 살자. 엄마 손을 놓쳐버려도 씩씩하게 살고 있다고 나중에 엄마에게 말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