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끝물 아줌마의 도쿄 전직 일기(19)

믿을 게 없는 사람들

by 김민정

김멜라 작가님이 일본에 오셨다. 번역가 키라 가나에 님이 위스퍼링 통역을 맡아달라기에, 아이 입시를 앞두고, 더불어 갱년기로 인해 침대에서 나올 겨를을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평소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이 오시는데, 그것도 통역이라는데, 아니 돈도 생긴다는데 침대에서 안 나올 방도가 없지 않은가. 하여, 나는 진보초로 향했다. 사전에 들은 얘기는 눈곱만큼도 없는(?), 용감한 편집자님이 기획한 행사를 찾아갔다.


김멜라 작가님은 어떤 사람일까. 외모가 아무것도 아니라지만 궁금해서 검색도 해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김멜라 작가님의 <내 꿈 꾸세요>일본어판 출간 기념 행사는 진보초와 미타카에서 열렸고, 나는 통역으로 이야기를 들으면서 괜히 울 뻔 했다. 진정 갱년기란 무엇인가. 왜 눈물이 나는가.


지난 1월 나는 여러모로 힘든 한달을 보냈다.

방송 피디이던 남편은 어쩌다가 사장이 되었고, 그건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이었고, 자기 회사를 꾸린다며 한껏 어깨가 부풀었으나 생각처럼 되지 않는 남편은(어쩌면 남편도 갱년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는 무던하고 무난한 사람이다. 그는 여유로운 사람이다. 내가 외모도 안 보고 결혼한 유일한 이유는 그가 진심으로 침착하고 감정기복이 없는 사람이어서였다.

엄마는 너무나 재밌고 흥이 많고 끼가 많은 사람이었고, 당연히(?) 감정기복이 심했다.

엄마랑 같이 사는 동안 나는 사람은 감정을 표현하는 동물이라고 배웠다. 자기의 의견은 물론이로서니와, 감정을 표현해야만 남들이 그 감정까지 알아주는 것이라고 배우면서 컸다.

근데 나는 늘 거기서 어떤 위화감을 느꼈는데 남편을 만나고 나서 아, 사람이 감정을 100% 다 표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된 후엔, 엄마의 부정적 감정은 너무나 쉽게 가정을 갉아 먹는다는 사실을 체감하면서, 실로 겉으로라도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맛있게 웃는다고 엄마가 나에게 그랬다. 맛있게 웃으라고 엄마가 내게 그랬다.


오랜 강사일을 그만두려고 했다. 학생들과의 연대감을 매년 가진다는 부담감도 있었고, 대학에 자리가 나지 않으면 위로 올라갈 수 없는데, 나는 조교일을 거절한지 오래이며, 아이를 셋 낳은 바람에 어느새, 김민정 선생님은 상근을 안 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 울고 싶다. 지방 대학으로 가야할까도 너무나 오래 고민했다.

강사를 그만두면 글로만 먹고 살까. 나는 글을 썼다. 진짜 많이도 썼다. 일본에서 모 경제신문에 기사를 쓰고 에세이를 7년 연재하고, 그리고 그 경제신문은 얼마전 폐간되었다. 서평도 썼다. 한국의 신문에도 연재를 했다. 써도 써도 먹을만큼 벌기는 힘들다. 에세이도 냈다. 하나도 히트하지 않았다. <엄마의 도쿄>만 간신히 2쇄를 찍었고, 엄마의 도쿄2를 써달라는 제안은 여러번 받았고 초반은 썼지만 그후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아, 그래 하면 되겠지. 번역도 했다. 한국어로도 하고 일본어로도 했다. 서유미 작가님을 일본에 소개하고, 후카자와 우시오 작가님의 고통스러운 동포들의 이야기도 한국에 소개했다. 그걸로 내가 먹고 살긴 했지만, 지속성을 내가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뭐, 프리랜서가 그렇지,로 퉁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살면서 사실 하나도 불안하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언어를 다루는 재주가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한국어능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3년 후를 생각하니 까마득해졌다. 써야할 것은 많은데 쓸 시간만 없는 게 아니라, 글쓸 나를 유지해줄 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니, 실로 침대에 일어나기보다 이대로 세상아 무너져라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김멜라 작가님은 나에게 쓰라고 하셨고, 호시노 도모유키 작가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키라 번역가님도 나에게 글을 써야지 딴데 가려고 하지 말라고, 사람에겐 모두 자신의 길이(어쩌면 글이) 있는 거라 하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쓰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런데 최근 일본 사회의 흐름을 보면, 나는 이러다 쫓겨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국적이 최후의 보루인 시대가 오다니, 얼마나 궁핍한 시대란 말인가.


키라 작가님은 일본 사는 일본인이지만, 나는 한국인이라, 일본에서 쫓겨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런 불안한 상태로 글을 쓸 수도 있겠으나 일단 뭔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올해는 전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내 맘에 쏙 드는 곳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하여, 오늘 모 자격증 설명회에 등록을 했다.


쓰고 번역하고 안정된 직업도 가져야겠다는 게, 부디 욕심이 아니길 바라며, 쓰고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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