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끝물 아줌마의 도쿄 전직 일기(18)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by 김민정

살다보면 후회되는 일이 정말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은 어떤 기회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는 게 아닐까.

예를 들어 나는 서른에 대학원에 입학했는데 사회학부가 아니라 차라리 교원자격증을 얻을 수 있는 야간대학이나 대학원, 또는 커리어 컨설턴트 같은 국가자격증을 딸 수 있는 수업을 듣거나, 보조간호사 또는 변호사 자격증을 딸 수 있는 로스쿨 등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게 더 내 꿈과 직결된 선택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냥 회사에서 도망치려고 쉽게 사회학부를 선택한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나는 대학시절부터 영화와 여성과 같은 사회문제와 대중문화를 겹친 학문에 관심이 많았고, 한국의 금지곡은 일제시절 금지곡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제대로 연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대학원에 입학했고 아이를 낳고 석사학위를 땄다.

그렇다 아이가 셋이 되면서, 온몸이 너무 힘들고 머리를 학문에 다 쓰지 못해서 결국 박사과정은 수업만 수료하고 논문을 쓰지 못했고 석사 논문을 내주겠다는 일본 출판사가 있었는데, 셋째를 임신하면서 결국 쓰지 못했다. 임신해서라는 건 그냥 뭐, 나의 변명일지도 모른다. 근데 어린 애 둘을 키우면서 임신한 상태로 책을 쓴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그 책을 썼으면 나는 지금쯤 교수는 못되어도 조교쯤은 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조교 일에 서명을 한 직후에 임신한 것이 밝혀지면서 교수를 도울 수 없게 되어 그 조교가 물건너간 적도 있다. 그냥 할 수 있다고 한 마디만 하면 되었는데, 애 둘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왔다 갔다 하면서 교수를 돕는 게 물리적으로 어렵기도 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남편 하나였는데, 그게 또 쉽지가 않더라. 나에게도 우리엄마나 아빠 그렇게 도와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미 다 돌아가셨고, 또 외부 사람을 부르기도 했는데 밤에 아이를 돌봐준다는 사람은 없어서, 대학원 마치자마자 아이들을 어린이집으로 데리러 가야 했다. 내가 더 많은 제도나 더 많은 서비스를 찾아봤다 한들, 개인 육아 도우미의 도움을 받기에는 우리집 자금이 부족했을 것이다.


300개쯤 원서를 넣었고 10개쯤 면접을 봤다. 최종면접까지 간 곳은 3곳이니, 100개 서류를 넣으면 1개쯤이란 계산이다.

하나는 인재컨설턴트(주로 여성) 회사이고, 또하나는 지역 잡지회사이고, 또하나는 미용관련회사다.

그 외에 호텔, 보험사, 건축사, 웹디자이너, 특수잡지, 엔터 등등 여러 회사가 있었는데, 나이며 애가 있다, 밤에 일 못한다 등등 여러 잡음들이랄까, 나와 회사의 조건이 맞지 않아 2차면접에서 떨어지거나 거절하거나 했다.


인재컨설턴트 회사의 사장을 만나 마지막 면접을 봤는데, 지금까지의 경력을 버리기엔 너무 아깝지 않느냐. 지금 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네 회사랑 업무 계약을 맺고, 사장의 일을 보필하는 건 어떠냐고 했다. 사장은 환경관련회사도 경영하는데, 그 회사의 신규사업을 홍보해주는 일과 대학과 기업간의 연결통로를 맡아주면 어떻겠냐는 제안이다. 제안은 훌륭하다. 근데 나는 이미 비슷한 일을 두 번했다. 20대에 한국 모 대기업의 일본지사의 외부직원으로, 그 대기업 부장님이 일본에서 성과를 내고자 하는 일들 위해 기획서를 만들고 등등의 일을 했다. 그리고 모 일본 제약회사에서 약국 체인점을 통해 판매하는 영양제 개발을 위해 도쿄대학과 같이 연구하는 일과 홍보를 담당했다. 그런데 이게 지금와서 나에게 뭔가 큰 도움이 되느냐면 사실 전직에서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경력으로 남았다. 무려 연구해서 영양제를 판매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결국 나의 경력 중 전직에서 가장 도움이 된 것은 기자일이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내가 일본의 교원자격증이 없으면 결국 별로 의미가 없었다. 내가 취재하고 기사를 쓴 일들이 그나마 일본의 다양한 잡지 등 출판사에서 경력으로 쳐주었다.


나는 앞으로 한 15년은 더 일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격증을 따야할 것 같다. 내가 해볼 수 있는 자격증과 현실성에 대해 따져보자. 시험 난이도가 높은 것부터 보자.


-사법시험:일본의 로스쿨이 많이 없어져서 로스쿨 들어가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혼자 공부한다면 대체 언제 딸 수 있을까. 인공지능 시대에도 변호사나 검사는 필요하겠지. 하지만 현실성이 가장 큰 벽이다.


-행정서서:혼자 1년쯤 공부하면 딸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이 나이에 경력이 없어서 취업이 가능할까.


-교원자격증:4년제 대학을 나왔으니 이제 시험만 보면 되는데, 일단 이 나이면 공무원은 할 수가 없어서 임시직이 된다. 도쿄의 구에서 하는 임시직으로 근무하게 될 것이다. 공부가 어려운 것에 비하면, 임시직이니 월급은 별로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가장 현실적이지 않을까. 지금 강사도 하고 있는데, 강사하면서 올해 시험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인재컨설턴트:국가자격증이다. 역시나 문제는 이 나이에 경력이 없어서 취업이 가능할까.


-사회복지사:국가자격증인데 일단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 나이에 경력이 없으니 혹시 따게 되어서 병원에 취직을 못하면 복지기관에 취업을 하게 되는데 시급이 1300엔 정도로 경력이 없을 때는 몹시 싸다는 것. 하지만 이걸 따면 내가 모자보호기관에서 일할 수 있고 이미 그 현장도 보고 왔다. 그리고 내동생이 쓰러져서 길거리에서 발견되었을 때 실려간 병원의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는데, 그게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진짜 일 잘하는 게 무엇인지 나라의 복지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줌.


-개호보호사(간병사):국가자격증인데 수업도 듣고 현장경험이 무려 3년이 필요하다고. 모 회사에서 자격증 딸 때까지 모든 비용을 부담해준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도 일단 취직 자리는 있는데 월급이 적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다. 하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돈 벌면서 딸 수 있는 자격증이다. 내가 과연 육체노동을 잘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회사가 간병, 어린이집, 부동산, 엔터테이먼트까지 진짜 다양한 그룹이어서. 3년 일해서 자격증 따면 타부서로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마도.


뭐가 됐든 나는 다음주까지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아이고 머리가 복잡하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길을 가겠습니까. 댓글 달아주세요.


그리고 요 몇 년 일본에 배외주의적인 정당이 너무 많이 생겨서 나는 올해 안에 일본에 노동당이나 여성당 같은 당을 창당하고 싶다 아니 할 것이다. 그리고 복지업을 3년쯤 경험하고 국회에 나가든 지역의원이든에 도전할 것이고, 10년후에는 일본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요양소 같은 것을 짓고 싶다.


근데 그게 뭐가 되었든 모두 나의 콘텐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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