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자 도쿄여자 #11
중1이었습니다. 모든 게 어색했어요. 우리가 교복 세대는 아니잖아요. 서울에 온 이후, 그러니까 중1 때 살이 붙기 시작했어요. 엉덩이가 커져서 뭘 입어도 태가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패션에 민감했어요. 물론 제 체형에도 민감했고요. 당시는 아직 조다시 청바지가 인기였습니다. 일명 디스코 바지라고 불리우는 허벅지가 약간 부푼 타입의 청바지를 입었어요. 베네통의 라운드 니트 스웨터를 즐겨입었습니다. 유행은 어느새 나팔 바지로 바뀌었고, 게스와 같은 브랜드가 들어와 한국의 청소년을 가슴을 흔들었습니다. 신발은 늘상 운동화였고, 그 운동화는 대부분 나이키였지요. 그게 가장 멋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학교는 일본어가 쓰여있거나 영어가 쓰여있는 옷을 입지 말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 시절, 영어가 적히지 않은 티셔츠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주문을 했을까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주문이에요. 영어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온 아이는 교문 앞에서 적발되었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돌거나, 나뭇잎을 열 장 주워야만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김광석의 팬입니다. 오석준의 팬이기도 합니다. 오석준이 롯데월드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하는 날, 중학생인 저는 거기 있었습니다. 우연입니다. 저는 오석준이 누군지도 몰랐어요. 그날 우연히 롯데월드에 있었고 '콘서트'를 백과사전에만 봤던 저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엄마는 흔쾌히 허락했고, 저와 사촌언니는 오석준의 맑은 목소리를 들으며, 음악의 세계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드라이 아이스에 감싸인 오석준은, 천상의 목소리로 우리를 유혹했습니다. 저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오석준을 좋아했고, 오석준이 영화 <내일이 찾아오면>의 작업에 참여한 앨범을 생일 선물로 사촌언니로부터 받았습니다. 라디오를 듣다가 김광석의 팬이 된 이후로는 혼자 콘서트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김광석을 좋아하는 중학생은 흔하지 않았어요. 변진섭이나 신승훈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저는 방학에 혼자 김광석의 콘서트를 보러 갔습니다. 대학로 학전으로요. 때로는 명동의 롯데 호텔로요. 잡지에 실려있던 연극란을 보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보러 갔습니다. 그게 제가 처음 본 연극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조숙했어요. 그때도 그렇게 혼자 좋아하는 것을 찾아 다녔고, 연극과 콘서트를 즐겼습니다.
무한궤도 1집. 학원에서 교실에 들어가기 전, 줄을 서서 무한궤도를 들었어요. 김광석은 집에서 저 혼자 듣는 음악이었고, 무한궤도는 어디서 들어도 창피하지 않은 음악이었습니다. 네 저는 김광석을 좋아한다고 쉽게 말하지 못했어요. 김광석을 아는 사람이 드물어서 설명을 해야했고, 제가 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 된 것 같아서요. 그럴 땐 무한궤도를 좋아한다고 하면, 조금 세련된 사람이 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여름날 햇빛 속에 옛동네를 걸어가다
건널목 앞에 있는 그녀를 보았지
조금은 변한듯한 모습 아쉽긴 했어도
햇살에 찌푸린 얼굴은 아름다웠지
아시죠? 네 '여름 이야기'예요. 무한궤도 1집의 A면 두번째 곡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예요. 눈 앞에 풍경이 그려지지요? 신해철은 꼭 소설가 같았습니다. 눈 앞에 그려지는 가사, 정곡을 찌르는 가사를 그는 노래했습니다. 그때는 씨디가 아니라 테이프였어요. 한 면을 들으면 빼서 반대면으로 돌려서 넣어야 하는. 워크맨이 필수였던 시절입니다. '여름이야기'의 그녀가 누군지 너무나 궁금했고, '햇살에 찌푸린 얼굴'까지 아름다운 그녀가 되고 싶었어요. 제가 그 시절 가장 동경했던 여인이 바로 '여름 이야기'의 그녀입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름다운, 모두의 동경의 여인.
'비를 맞은 천사처럼'에는 빗소리가 담겨있고, '조금더 가까이'에는 손뼉을 치는 소리가 담겨있습니다. 이렇게 실험적인 음악은 처음이었습니다. 게다가 가사까지 예뻤어요. 그리고 동경해 마지않는 대학생 밴드였습니다. 그것도 서울의 알아주는 대학에 다니는. 그때는 그랬잖아요. 가장 멋있고 훌륭한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대학생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요.
제가 다니던 서울의 중학교 옆에는 대학교가 있었습니다. 아직 많은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던 시절입니다. 민주주의가 무언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그 시절 젊은이들은 무언가를 위해, 자유와 민주와 같은 걸 위해 싸웠습니다. 데모가 시작되면 늘 그렇듯 최루탄이 날아들었고, 그런 날은 학교가 일찍 파했습니다. 중학교 교문 앞, 그리고 저희집 근처에는 늘상 전경들의 차가 세워져 있었고, 대학생이거나 또래의 나이의 젊은이들이 이번엔 눈에 불을 켜고 데모에 대비하고자 땡볕에 마냥 앉아있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간 사람들, 그 사람들이 외치는 자유와 평화와 민주주의. 제가 아는 대학생은 그런 사람들이었어요. 불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최루탄을 맞고 죽어간 젊은이. 취조로 인해 목숨을 다한 젊은이.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저는 늘 궁금했고, 같이 아팠습니다.
무한궤도는 제가 알던 대학생과는 또 다른 대학생들이었어요. 신해철은, 그때 잠실에 살았습니다. 롯데월드가 있던 잠실이지요. 올림픽 공원이 있는 그곳. 잘 사는 동네. 그 동네의 대학생. 그런데 음악적 재능까지 있는. 대학가요제에서 무한궤도가 상을 탄 건 너무나도 당연했습니다. 신해철은 신선했고, 그 음악은 미치도록 젊었으니까요. 민주화 투쟁과 포크송의 시절에 안녕을 고한 게 신해철과 그의 음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그건 조금더 개인적인 삶과 그 개인의 행복을 인정하는 세상이라는, 그런 희망을 그의 음악들은 담고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희생으로 만든 새로운 세상에서, 더 신나게 살아가겠다고 외치는 것 같았어요.
무한궤도 1집의 테이프. 저는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뒷껍질에는 청바지를 입고, 셔츠에 마이(아직도 이런 단어를 쓰나요?)를 입고 있는 6명의 젊은 남자들의 사진이 담겨 있습니다. 남편은 방송일을 해서, 오디션도 자주 보는데, "잘 생기고 예쁜 것과는 또 다르게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신해철에게는 그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걸 카리스마라 말합니다. 그의 젊음과 신선함의 최고조에서 나온 음악이 무한궤도 1집입니다. '재즈카페'의 어른스러움 이전의, 넥스트의 실험 정신 이전의, 젊음의 폭발적인 부분을 단 하나의 앨범으로 표출한 것이, 무한궤도 1집이지요.
저희집에 테이프 레코더가 없어서 다시 들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 무한궤도 1집을 버릴 생각은 없어요. 바라만 봐도, 중학교 시절의 풋풋함이 떠오르는 보물입니다. 저는 그렇게나 동경하던 대학생이 되었고, 이미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황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대학이 다가 아니었는데, 중학교 시절에는 대학생만 되면 세상 모든 고민을 다 떨쳐버릴 수 있으며, 삶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리라 믿었어요. 마흔의 나이의 저는, 피지 못하고 지는 꽃이 아닌지 늘 두렵습니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회는 없노라고, 그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