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자, 도쿄 여자 #05
도쿄 여자, 김민정 작가님!
왜 하필 저를 닮았을까요? 누구 이야기겠습니까. 하나 뿐인 제 아들이야기죠.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엉겁결에 낳은 아이가 벌써 열두 살. 누구를 위해 희생이라고는 해본 적 없던 이기적인 서울여자가 날마다 깨지고 하염없이 부서지는 과정이 저에겐 아이를 키우는 일이었어요. 매일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나는 모성이 부족한 게 아닐까. 왜 다른 엄마들처럼 희생이 안 되는 걸까? 저는 아이를 낳아도 여전히 제 자신이 중요했습니다. 일을 놓고 싶지도 않았고, 아이만 바라보며 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제 삶이 있는 거고, 아이는 또 자기대로의 삶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제가 출판을 했을지언정 저작권은 그 녀석 본인에게 있다는 거죠.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아이가 엄마의 뱃속을 걷어차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남이 된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제가 엄청 냉정한 사람처럼 느껴지네요. 하지만 저는 그다지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못됩니다. 혈액형을 꼭 믿는 건 아니지만 저는 어쩔 수 없이 A형의 특성을 가진 사람이거든요. 평소 남들의 상황을 다 살피는 편입니다. 뒤돌아서 밤새 고민하는 그런 사람이기도 하고요. 내 말에 상처받은 건 아닐까? 내가 좀 더 따뜻하게 대해줄 걸 그랬나?...그런데 말이에요. 모두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건 환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네 그래요 작가님. 인간은 참 이상한 존재입니다. 한없이 배려하고 따뜻하게 대하면, 그 사람을 존중하기는커녕 살짝 낮춰보지요. 그러지 말아야 인간인데요, 그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간인가 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시시한 존재입니까. 저는 요즘 따뜻한 사람이고자 하는 생각을 좀 버리려고 노력중이에요. 그런 걸 노력씩이나 해야 하다니, 그래서 저는 할 말 잘하는 사람, 이성적인 사람, 냉정한 사람이 항상 부럽습니다. 물론 좋아하는 인간의 유형은 별개지요. 사람은 역시 따뜻한 사람이 짱이에요!
따뜻함이란 뭘까요? 따뜻함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무엇이)쾌적한 느낌이 들만큼 온도가 알맞게 높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맞아요. 따뜻함이란 지나치게 뜨거워서는 안 되는 거였어요. 그러니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엄마의 사랑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제가 모든 걸 다줘야 한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는 조금씩 멀어지는 것, 온도를 약간 낮춰 주는 것이 필요하더라고요. 가끔 동네에서 아이 친구의 엄마와 차를 마시곤 하는데(일본도 그런 문화가 있나요?)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 힘들다는 고민을 토로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한걸음 뒤에서 그 엄마가 힘든 이유를 들여다보면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아이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게 보였어요. 엄마는 널 사랑해, 그러니까 넌 내 말을 잘 들어야해, 아! 이건 너무 끔찍한 것 아닌가요?
세상 모든 것은 변해갑니다. 작가님은 사랑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지나가는 시간, 변해가는 모든 것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자식은 너무 좋지만 그 끔찍하게 좋은 마음을 조금씩 줄여가지 않는다면 이후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저는 그 끝이 파국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너무 완벽한 사랑, 너무 완벽한 삶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것 같아요. 조금 결핍된 삶, 부족한 듯 적절한 사랑, 조금 덜 사랑하고 조금 덜 행복한 상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정답이라고 말하는 건(학교 선생님들이나 부모님이 가르쳐준 것들) 하나도 맞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장 만족스러운 상태는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하는 것이라고 들었어요. 나도 좋고 상대도 좋은 사랑. 네 그래요. 저는 사랑이라는 말로 아이의 삶을 구속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게 다 너를 위한거야, 라고 확신에 차서 말하지만 사실 우리도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꼼수라는 걸 말이죠. 저는 요즘 열두 살 아이와 멀어지는 연습, 사랑을 좀 덜어내는 연습을 하는 중입니다. 막내 하쿠가 이제 5개월인 작가님에겐 아직 먼 이야기겠지요?
서울 여자, 김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