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자, 도쿄 여자 #06
도쿄 여자, 김민정 작가님!
‘저요? 전 지금 사람을 죽이러 갑니다’ 너무 놀라진 마세요. 제가 한 말은 아니고 일본 작가이자 소설가인 ‘가쿠다 미쓰요’의 단편집 ⌜죽이러 갑니다⌟의 소설 속 문장입니다. ‘가쿠다 미쓰요’는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여성작가에요. 그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그러나 잔잔한 일상 이면에 숨겨진 섬뜩한 감정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을 많이 선보인 작가에요. 영화로 각색되어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작품도 있죠. ⌜종이달⌟ 행복을 추구할 방법 자체를 잃어버린 한 여인에 대한 슬픈, 그리고 쓸쓸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네요. 저는 영화도 좋았지만 솔직히 책을 더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아요. 물론 미야자와 리에는 여전히 예쁘더군요.
오늘 왜 갑자기 ‘죽이러 갑니라’라는 소설이 떠올랐을까요? 비가 축축이 내리는 서늘한 날씨라서 그럴까요? 걱정하진 마세요.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혹은 사랑)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죽이고 싶을 정도는 아니지만 미움과 파멸의 중간쯤에 위치한 감정을 갖게 한 사람들, 한번쯤 찾아가서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요?’ 라고 묻고 싶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에요. 어떤 영화에서도 그런 대사가 있었어요.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그래요, 나에게 모욕감을 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작가님도 그런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대처할 겨를도 없이 모욕감이라는 그물에 걸려 옴짝달싹 못했던 그런 경험 말이에요. 저는 그 소설을 읽다가 곰곰이 생각해 본 기억이 있어요. 물론 단박에 ‘그 사람이야!’ 라고 떠오르진 않았지만요. 그 사람이 누구냐고요? 바로, 고등학교 때 어떤 과목을 담당하는 선생님이었어요. 사실 모욕감이란 게 정체가 좀 불분명하긴 하죠. 준 사람은 없는데 받은 사람만 있을 수도 있고요. 대체 모욕감이란 어떤 걸까요?
1993년, 딱 지금처럼 6월의 장미가 시들어가던 그런 시기였어요. 수업 시간이었는데 나른하고 무거운 공기가 교실을 가득 메운 그런 시간이었고요. 당시 저는 학교란 무엇인가, 공부에 딱히 관심도 없고 재능도 없는 내가 왜 여기 앉아 있어야 하는가? 그런 학생답지 않은 질문만 가득 품고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던 다소 삐뚤어진 아이였어요. 지금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분위기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던데.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왜 학교란 일반적이지 않은 아이들이 마음 붙이고 다니기 힘든 구조여야만 할까요? 사실 그런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은 한 가지에요. 어디 한번 눌러보시지? 그럴수록 우린 더 삐뚤어질 테다! 네 작가님. 저도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렇게 동그란 눈이 아닌 뾰족한 눈으로 십대의 절정인 열일곱 살을 보내던 제게 유일한 즐거움은 글을 쓰는 것이었어요. 물론 쓴다고 해봐야 빤한 것들이겠죠. 고작해야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흉내 낸다거나 그 장면 속 묘사를 응용하는 정도. 가끔은 문학 작품을 교재로 선택하기도 했어요.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나중에 ‘차타레 부인’이라는 이상한 제목으로 영화가 나와서 좀 당황스러웠어요)이나 김승옥 선생님의 ‘무진 기행’ 등을 노트에 옮겨 필사하기도 했죠. 그러다 어느 순간,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반 친구와 소설 돌려쓰기를 하는 것. 여기까지는 좋았어요. 어차피 공부를 안 할 바에야 다른 소일거리라도 있으면 좋잖아요. 그런데 수업시간에 딴 짓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어요. 선생님께 딱 걸리고 만 거죠. 열일곱 살의 저는 그날 어떻게 되었을까요?
선생님은 순식간에 노트를 빼앗더니 반 친구들 앞에서 특정 부분을 발췌해 읽기 시작했어요. 여기까지 들으면 와- 하고 감탄하실 수도 있겠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해요. 발췌한 내용은 그 소설에서 가장 유치한 부분(전봇대 키스신이었던 것 같아요^^;)이었어요. 선생님은 곧장 웃음이 터지고 말았는데 문제는 그냥 웃음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조롱이 담긴 웃음이었거든요. 결국 수업이 끝나고 저는 교무실에 불려가 엄청 혼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엄마가 학교로 불려오셨어요. 청소년답지 않은 글을 썼기 때문이라는 이유라고 하더군요. 청소년다운 글은 어떤 걸까요? 아직까지도 교무실 밖에 숨어서 본 엄마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며칠이 가도 엄마가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거예요. 날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어요. 엄마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죠. 그런데 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요. 지금까지도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죠. 언젠가 한번 묻고 싶긴 해요. 엄마도 그날 학교에서 모욕감을 느꼈어? 라고 말이죠.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네요. 이제와 그 사건을 떠올린 이유가 그 선생님을 찾아가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솔직히 한번 만나고 싶긴 해요. 그리고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묻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그날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마흔도 넘은 분이 열일곱 살 아이에게 왜 모욕감을 주셨어요? 라고 말이죠. 하지만 이제와 그 선생님을 만난다고 한들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당사자가 그날의 일 자체를 기억하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는 거예요. 살면서 상처는 피할 수 없는 일이고 다만 내가 상처를 받지 않으면 되는 일인데, 그게 또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에요. 가만히 세월을 헤아려 보니 그날 저에게 모욕감을 준 그 분은 아마도 예순이 훨씬 넘은 나이겠군요. 머리가 하얗게 세었을 테고 기력이 떨어져 이제 누군가를 모욕할 힘도 없을지도 몰라요. 그래요 작가님. 우리 복수 따위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해요. 인간이 이렇게 변질되기 쉬운 시시한 존재라니, 어쩐지 그 사실이 통쾌하기도 하고 좀 쓸쓸하기도 합니다.
서울 여자, 김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