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게 산다는 것, 마흔 생일 아침에>

서울여자 도쿄여자 #01

by 김민정

서울 여자 김경희 작가님,


마흔 생일 아침입니다.

마흔의 생일은 무슨 수가 있어도 쿠바에서 보내겠다고 결심했었어요. 나홀로 쿠바 여행을!


쿠바 아바나의 호텔에서 눈을 뜨는 하루를 꿈꿨습니다. 아침부터 맥주를 들이키며, 라디오를 켜고 책을 한 권 손에 들고 여전히 침대에서 뒹구는 그런 아침 말입니다. 햇살은 무거울 정도로 뜨겁고, 물 흐르듯 흐르면서 묘하게 영혼을 홀리는 쿠바의 음악이 가득한 그런 방 안에서 맞이하는 그런 아침 말이죠.


언제부터 그렇게 쿠바에 가고 싶었는지 모르겠어요. 동경의 나라가 미국에서 이탈리아로 그리고 쿠바로 바뀐 것이.


일본 여자들은 80년대엔 영국의 런던을 동경했습니다. 그 시절 패션지에는 영국의 여고생들의 교복 패션이눈길을 끌었고, 컨서버티브(보수적) 패션이 활기를 띄었던 시절이라고 합니다. 일본사람들은 참 이상한 구석이 있어요. 미국문화가 만연해 있음에도 미국보다 영국을 또는 프랑스를 동경합니다. 일본에선 프랑스 앞에 존칭 접두사인 ‘오’를 붙여 ‘오후랑스’(후랑스;일본어의 프랑스 발음)라고 부릅니다. 40여년 전 오소마츠-상에서 나온 단어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자존심 높은 프랑스를 비꼰 단어였다고 하는데, 요즘도 프랑스의 우아함, 독특함,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흔히 쓰는 단어입니다.


네, 그래요. 쿠바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체 게바라가 시작입니다. 수염을 기르고 모자를 쓴 그 남자는 장난스런 웃음을 띄고 있었습니다. 영화 배우 뺨치게 잘 생긴 그 남자는 직업이 ‘혁명가’였다고 합니다. 혁명가? 아니 그런 직업이 지구상에 있는 걸까요? 대체 그건 월급을 얼마나 주는 직업일까요?(전 역시나 속물입니다) 그 혁명가는 젊은 나이에 혁명을 위해서,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투쟁하다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 혁명가의 동지가 세운 나라가 현실 속에 존재한다니! 하지만 꼭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 건 서른이 넘어서예요. 미국으로부터 경제 제제를 받은 쿠바는 독자적인 유기농 농업으로 다양한 농산물을 키워내고 있었고, 오래된 클래식 카의 천국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쿠바 사람들이 살사라는 춤을 즐긴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지식이란 건 이럴 때 참 좋은 것 같아요. 멀게만 느껴지던, 이름만 알던, 혁명가의 나라가, 갑자기 피부에 와 닿기 시작했어요. 저에게 마구 손짓하는 쿠바의 엉덩이가 큰 여인들, 까무잡집하고 탄탄한 팔뚝을 가진 남자들, 모자를 쓰고 앉아서 상반신을 흔드는 흥이 넘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두가 저에게 웰컴이라며 눈을 찡긋해주는 상상 속의 쿠바에 저는 푹 빠져 있었습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흘러나오던 아득한 음악을 들으며, 살사를 출 수 있다면. 아니 그저 몸을 흔들 수 있다면. 아니 그저 바라볼 수만이라도 있다면. 그렇게 쿠바를 꿈꿨습니다. 아직 열리지 않은 나라. 거기엔 무엇이 있을까? 괜한 낭만이 심금을 울렸습니다.


마흔. 불혹의 나이 마흔. 그 불혹의 나이를 맞이하는 아침을 아바나의 호텔에서 맞이하는 꿈. 맥주를 들이키거나 쿠바의 커피를 마시며 여는 아침을.


그리고 저는 실제로 오늘 마흔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지금 쿠바에 있냐고요? 쿠바는커녕, 석달 전에 태어난 막내아이 수유를 하며 마흔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마흔에 아이를 낳다니! 솔직히 너무나 막막한 심정입니다. 앞으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말합니다. 누구나가 자기 먹을 걸 가지고 태어난다고. 그건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위로하기 위한 말일까요. 하지만, 어쩜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요? 자기 먹을 걸 가지고 태어난다니, 굶는 아이들에게는 가혹한 문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아이가 자기 먹을 걸 가지고 태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만일에 그랬다면 게바라가 그렇게 죽음을 당할 이유가 없었을 거예요. 누구나가 먹을 것을 가지고 태어난 사회였다면 게바라는 그저 의사로 한 평생을 보내다가 지금쯤 트위터를 두드리고 있을지도 모르죠. 아니면 배우가 되었거나 카사노바가 되었거나 농부가 되었거나 장인이나 공장의 근로자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에게는 조금 더 자유롭게 삶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겠죠. 세상 모든 아이가 자기 먹을 걸 가지고 태어나서 평생을 평탄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아무도 혁명을 일으키지 않아도 좋을 사회를 말이죠.


마흔의 아침입니다.

제가 열 살 때, 저는 도쿄에 오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제가 스무살 때 마흔에 아이를 낳으리란 상상도 못했죠. 삶의 수많은 복병을 겪으며 마흔이 되었고, 앞으로도 수많은 복병들과 만나며 살아가겠죠?


마흔 생일에는 몰랐을, 쉰을 맞이하는 날은 쿠바의 아바나에 있기를 다시금 꿈꿔봅니다. 쉰이 아니면 예순을 꿈꿔봐야겠어요. 저는 커피를 마시고 미소를 짓고, 맥주를 마시고 살사를 추고 있을 거예요. 그게 몇 살이든. 그런데, 그때까지 쿠바가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을까요?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미역국도 못 끓인 마흔의 아침에, 도쿄여자 김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