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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Jun 17. 2016

아이는 누구를 닮았을까

서울여자 도쿄여자 #02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어릴 때 말이죠.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사람들이 묻잖아요. 고리타분한 성격이어서 둘 중 하나를 꼭 택해야만 하는 줄 알았어요. 엄마를 택하면 아빠가 서운해할 것 같고 아빠를 택하면 엄마가 한숨을 쉴 것 같았어요. 하지만 저는 엄마를 택했습니다. 매번 엄마를 택했어요. 엄마가 전업주부였거든요. 그래서 엄마를 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아니면 엄마의 고초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테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리 짖궂은 질문을 하는 걸까요? 왜 그 시절의 저는 “둘 다 좋아”라거나 “둘 다 좋아하지 않아.” 또는 “그딴 질문은 왜 하세요?” “알아서 국이라고 끓여드시게요?”라고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왜 이렇게 저를 곤란하게 하세요?”라고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두고두고 후회가 됩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누군가를 곤란하게 하고 즐거워할까요? 특히나 어른들은 말이죠.


제가 싫어하는 게 또 하나 있었는데, 너는 엄마를 닮았냐 아빠를 닮았냐였죠. 외모는 아빠를 쏙 빼닮았어요.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홀꺼풀의 눈에 곱슬머리, 그리고 짱구 머리통에 약간 휜 다리까지 모두. 엄마의 친척들은 저를 보고, 아빠를 닮았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젊었을 때 서울 시내를 다니면 하루에서 서너번모델 스카웃을 제의받는 사람이었어요. 굵게 진 쌍꺼풀 오똑한 콧날 길게 뻗은 두 다리. 엄마의 친척 뿐만 아니라 엄마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미모의 지인의 딸의 외모는 어떨까를 궁금해했고, 저를 보고 짓는 그 실망한 표정을 보면, 괜히 제가 미안해지기까지 했습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빠의 가족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를 닮아 얼굴이 작다고, 아빠를 닮아 머리가 좋다고. 니 아빠를 닮아서 니가 그렇게 문학적이구나라고.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안경을 처음 쓴 날 할아버지는 대뜸 “니 엄마가 눈이 나쁘냐? 니 엄마를 닮았나 보다.”라고 하셨어요. 제 다리가 무 다리인 걸 안 할머니는 “니 엄마 다리가 그렇든?”이라고 돌직구를 날리셨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제 앞니가 토끼를 닮은 것도 제가 뚱한 표정인 것도모두 엄마를 닮아서라고 아빠의 가족들은 말했습니다.


저는 누구를 닮았을까요? 엄마도 닮고 아빠도 닮았겠지요.


아이를 낳고 아이가 누구를 닮았을까란 생각을 해보지도 못할 만큼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있습니다. 너무나 바빠서 밥을 챙겨 먹기도 쉽지 않아요. 남편과 저를 닮았음에 틀림없다고만 생각하고 키웁니다.

하지만 조금 불안하기도 해요. 아이가 저를 닮아서 성격이 급하지는 않을지. 저를 닮아서 다리가 휜 건 아닌지. 저를 닮아 나중에 여드름이 나면 어쩌지? 저를 닮아 명랑하지도 않고 그저 뚱하게 살면 어쩌지? 그런 불안감이 문득문득 다가옵니다. 어릴 적에 날씬해서 운동을 잘하는 편이었는데 사춘기가지나면서 운동과는 남이 되었고, 저는 아직도 철봉과 뜀틀을 못하며, 자전거도 타지 못하고 수영도 못합니다.


우리 딸이 철봉과 뜀틀로 마음고생을 하지는 않을까? 자전거는? 수영은? 다행히도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더니 매일처럼 철봉 연습을 해서 한 달만에 드디어 철봉을 넘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뜀틀도 한 시간쯤 연습하더니 이제는 신나게 뛰어넘습니다. 자전거도 알아서 타고 다니고, 요즘은 학교에서 수영을 배우고 있어요.


철봉, 뜀틀, 자건거, 수영. 운동 음치인 저를 닮으면 큰일이란 생각에 아이를 키우면서 가슴 졸였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이 “체육 시간이 제일 즐겁다!”라고 말할 때 저는 쓴 웃음을 지었습니다. 제가 못하는 걸 해야하는 한 시간은 수학이나 물리시간보다저를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아이가 체육음치인 저를 닮지 않아 다행입니다. 하지만, 저를 닮지 않아서는 아니겠지요. 아이의 노력이 아이의 하루하루를, 아이의 가능성을 만들고 있는 거겠죠. 여하튼 저는 아이가 체육을 좋아해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숨을 내쉽니다.


도쿄여자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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